(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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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박응주(朴應珠)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반남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지명이다. 이곳에는 시조의 묘소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한다.

박응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박 의는 어느 지관에게 명당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지관은 자미산에 올라 흥덕리 동쪽에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러나 박 의가 보기에는 지관이 잡아준 자리보다 그 아래쪽이 더 좋을 듯싶었다. 결국 지관의 뒤를 밟아 지관이 집에서 부인에게 “기막힌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를 가르쳐 줬다가는 천기를 누설한 죄로 화를 입을 것 같아 다른 자리를 잡아주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박 의는 이튿날 지관이 숨겼던 천하의 명당에 무덤을 쓰기로 하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자 지관이 깜짝 놀랐다.

이에 지관은 “이것은 모두 운명일세. 내가 화를 입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는데 자네가 알아냈으니 그것도 자네 가문의 복이네”라고 말한 후 떠나버렸다. 그런데 지관이 떠나자마자 구덩이에서 큰 벌이 나와 지관의 뒤통수를 쏘아 지관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 반남박씨는 박응주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 대에 와서 가세가 크게 번성하여 명문으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이를 두고 후손들은 명당의 발복이라고 말한다. 지관이 벌에 쏘여 죽은 고개는 ‘벌고개’, 박응주의 묏자리는 '벌명당'이라고 부른다.

반남박씨 문중에서는 지금도 매년 지관의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연산군 때 좌의정을 지낸 박숭질은 연산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어느 날 등청 길에 말에서 일부러 떨어져 자동 면직되었다. 이 같은 선견지명으로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 때의 인물 숙청에서 제외된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다.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과 사귀고 서양의 신학문에 접했다. 1777년(정조 1) 권신 홍국영에 의해 벽파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금천으로 이사했다. 벽파란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 또는 사도세자라고도 불리는 영조의 세자가 폐위, 아사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당파싸움에서 세자를 배척한 당파를 말한다.

연암은 1780년(정조 4) 친족형 박명원이 진하사 겸 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했다. 랴오둥(요동), 러허(열하), 베이징(북경)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 여겨 보고 귀국했다.

고종 10년 영의정을 지낸 박규수(1807~1877)는 연암의 손자로 서울 계동 출생이다. 그는 할아버지의‘연암집’을 읽고 실학의 학풍에 눈을 떴다. 1861년(철종 12) 연행사절(燕行使節)의 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때 처음으로 당시 국제정세의 흐름과 제국주의 침략의 실상을 접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실학적 학풍을 전하고 중국에서의 견문과 국제정세를 가르치며 개화파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영효(1861~1939)는 노론의 실력자인 박원양의 아들로 수원에서 태어났다. 1872년 13세 때 선왕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혼인했으나 3개월 만에 사별하고 금릉위에 책봉된다. 그는 1870년대 중반 형 박영교를 따라 재동 박규수의 사랑방에 드나들면서 개화사상을 익히기 시작했다. 유대치를 중심으로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 개화당 요인들과 결속, 정치적 혁신을 주창했다.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삼일천하로 그쳤다. 박영효에게는 여러 부인이 있었다. 셋째 부인 범(范) 씨와 사이에서 태어난 박흥원은 서울 봉원사 주지로 있었다. 박흥원의 아들 역시 승려다.

현대 인물은 박영준(육군소장, 한국전력사장), 박도언(농림부차관, 삼성물산사장), 박승호(서울고법부장판사, 변호사), 박정서(변호사), 박준양(대구고검검사장, 변호사), 박승서(서울변호사회부회장), 박승만(농학박사, 동국대농대학장), 박준서(서울고법부장판사), 박광서(법학박사, 중앙대학원장), 박동서(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 박찬기(문학박사, 고려대교수), 박찬웅(의학박사, 서울대교수), 박찬계(중앙대경상대학장), 박원서(서울변호사회부회장, 변호사), 박현서(국회의원), 박찬무(의학박사, 을지병원장), 박응서(산업은행부총재, 국제금융종합금융사장), 박정서(충북은행장), 박완서(여류소설가), 박태서(삼성그룹비서실장, 신세계백화점사장), 박제혁(부천·성남시장), 박찬긍(총무처장관), 박찬모(미국케로릭대교수), 박승문(중앙대교수), 박승만(육군소장), 박승백(건설부이사관), 박승하(국회의원), 박승유(강원대교수), 박승진(예술원회원), 박승준(금융통화위원), 박우서(상업은행이사), 박정서(광주박외과원장), 박원서(변호사), 박웅서(속초도립병원장), 박돈서(아주공대교수), 박현서(언론인), 박영서(변리사), 박홍서(한국신문편집인협회사무국장), 박홍서(한일은행상무), 박찬호(영남대교수), 박찬웅(인하대교수), 박찬형(미국캔사스주립대교수), 박순정(미국미시간대교수), 박찬일(서울대교수), 박찬영(전남대교수), 박찬세(국토통일원연구소장), 박찬진(전남대교수), 박제흥(한일운수 회장), 박제현(용인교육장), 박찬보(육군준장), 박찬동(수원산부인과원장), 박혜건(검사), 박장우(변호사), 박홍우(판사), 박영우(충남대교수), 박평우(성균관대교수), 박천욱(단국대교수), 박승옥(육군준장), 박승두(충주시장), 박갑서(중앙일보부국장), 박준서(국민리스 부사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5世 ○서(緖), 26世 찬(贊)○,27世 ○우(雨) ○하(夏) ○준(儁), 28世 천(天) ○인(仁) ○지(持)○,29世 ○춘(春) ○승(承), 30世 헌(憲) ○녕(寧)○, 31世 ○오(吾) ○오(五), 32世 장(章)○ 재(宰)○, 33世○호(虎) ○순(純), 34世 겸(謙)○ 선(善)○, 35世 ○구(旭), ○구(九), 36世 평(平)○ 두(斗)○ 이다.

본관 반남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지명이다. 고려시대에 현으로 강등되어 1018년(현종 9)에 나주에 속하였다. 1995년에 나주군과 통합된 나주시의 반남면(潘南面)이 되었다. 현재 나주시 반남면은 대안리, 덕산리, 석천리, 성계리, 신촌리, 청송리, 흥덕리 등 7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집성촌은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평리,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전북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경북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경북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 경북 영주시 가흥2동, 경남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박소(朴紹,1493 癸丑生) : 문과(文科) 중종 14년(1519)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박동열(朴東說,1564 甲子生) : 문과(文科) 선조27년(1594)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박세모(朴世模,1610 庚戌生) : 문과(文科) 효종5년(1654)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박세당(朴世堂,1629 己巳生) : 문과(文科) 현종1년(1660)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464명이 있다. 문과 180명, 사마시 283명, 의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반남박씨는 1985년에는 총 28,400가구 118,847명, 2000년에는 총 43,300가구 139,43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5천여 가구,2만1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2,775명, 부산 5,897명, 대구 4,579명, 인천 4,811명, 경기 17,023명, 강원 3,286명, 충북 4,110명, 충남 15,061명, 전북 7,054명, 전남 7,419명, 경북 11,130명, 경남 5,536명, 제주 157명이다. 충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4,164명, 부산 6,800명, 대구 5,920명, 인천 8,886명, 광주 3,298명, 대전 8,461명, 울산 1,824명, 경기 31,462명, 강원 3,100명, 충북 4,686명, 충남 6,896명, 전북 6,209명, 전남 3,501명, 경북 8,936명, 경남 5,000명, 제주 295명이다.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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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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