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전의 이씨(全義李氏)-133,237명
(64)전의 이씨(全義李氏)-133,237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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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 도(李棹)의 처음 이름은 이 치(李齒)였다. 공주 출신으로 왕 건이 후백제의 견 훤 정벌에 나섰으나 금강 홍수로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이 치가 묘책을 찾아 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이에 왕 건이 그에게 ‘배를 젓는다’는 뜻의 노도(棹)자를 사명(賜名)했다.

이 도는 말년에 군사 요충지인 전의현(全義縣)에 산성을 쌓고 이곳에서 살았다. 그 뒤 후손들이 전의를 본관으로 삼았다. 전의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을 가리킨다. 시조 이 도의 9대손에서 예안이씨가 분적하였기 때문에, 두 성씨를 합쳐서 전의·예안 이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기군 전의면 시조 묘 근처에는 ‘개바위(狗岩)’라는 바위와 ‘구암사적(狗岩事蹟)’이라는 표석이 있다. 표석에는 전의이씨 화수회 본부에서 세운 것이다. 엎드린 호랑이 형상의 명당인 시조 묘 인근에 있는 개 모양의 바위를 보존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의이씨 문중에서는 개바위 보존을 위해 철도와 도로의 노선도 바꾸게 하였다.

전의이씨는 이언충, 이정간, 이 혼의 후손에서 큰 인물들이 나와 3대 산맥을 이룬다. 이언충은 고려 충열왕 때 관직에 올라 지춘추관사를 지낼 때까지 충선. 충숙. 충혜왕의 4대를 거쳐 왕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시조의 11대손인 효정공 이정간은 사헌부 등 요직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노모의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퇴했다.

그 뒤 그의 나이 80이고 노모는 1백세 때 효정공은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희롱하여 노모를 즐겁게 했다. 세종은 궤장(고관이나 중신이 은퇴할 때 임금이 내리는 지팡이)을 하사하고 친필로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을 내렸다. 후손들은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전하고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기 반년 전 나라 잃은 절망감에 영국 땅에서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다. 30대 초반의 젊은 외교관 이한응이 바로 그 사람이다. 국은(菊隱) 이한응(李漢應)은 영국에서 대일외교로 고군분투하다 32세의 나이에 끝내 자결했다. 그는 고종 38년 3등 참사관에 임명되어 런던에 부임했다. 그때 나이 28세였다. 3년만인 1904년 공사 민영돈이 귀국하고 대리공사의 직책을 맡은 그는 한국의 외교권을 반신불수로 만든 한·일의정서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각국 사신들을 상대로 호소한다.

그러나 약소국의 호소를 들어줄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1905년 이한응은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인 영국이 일본에 동의한다는 것을 탐지한다. 그 뒤 피나는 호소와 항변을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약소국 외교관의 무력, 갖은 굴욕,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그는 하나밖에 택할 길이 없었다. 1905년 5월12일 그는 형과 부인 강씨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조용히 음독 자결했다. 그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광성리 금원부락 뒷산에 있다. 전의이씨인 이희승 박사가 비문을 지었다.

충효와 인경(仁敬)을 가헌(家憲)으로 이어온 전의이씨는 현대에서도 숱한 인재들을 냈다. 국문학계의 태두인 이희승 박사는 조선조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을 지냈던 이문형의 13대손이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어 해방되던 해까지 옥고를 치렀던 이 박사는‘국어대사전’과 시집‘박꽃’, 수필집‘벙어리 냉가슴’등 저서를 냈다. 초. 중. 고등문법을 정리했으며 92세의 고령에 수필집‘메아리 없는 넋두리’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영로 박사(이화여대 평생교육원 강사)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화본과(禾本科 : 볏과식물) 식물학자다. 쌀, 보리, 밀 등 주식류와 가축들이 상용하는 볏과식물을 최초로 연구, 종합 보고한 식물 생태학의 권위자다.

이강로 단국대 교수는 일찍이 한학을 배운 뒤 한글학회 사전편찬에 기여,1970년 경기도문화상,197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1977년 단국대교수로 있으면서 ‘한한(漢韓)대사전’편찬실장직을 함께 맡아 사전 편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신구전문대 재단이사장도 역임했다. 법조계의 거목은 대법원장을 지낸 이영섭(변호사)이다. 1945년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출발,1979년 사법부 수장에 오르기까지 일생을 오로지 법관으로 일관해왔다. 야당 총수를 지냈던 이철승 씨는 문의공파의 후손이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이준승(대법원판사), 이종찬(판사). 이종왕(검사), 이원형(국회의원), 이종성(국회의원), 이헌기(국회의원), 이상일(도규계·刀圭界 1인자), 이상현(상경물산 사장), 이광로(육군준장, 국회의원), 이구호(육군중장), 이종환(육군준장), 이성호(해군참모총장, 예비역대장), 이우세(언론회관이사장), 이광훈(경향신문논설위원), 이진섭(KBS상임심사위원), 이정식(연합통신전무), 이영세(풍산금속 사장), 이기춘(농학박사, 전북대교수), 이낙선(상공부장관), 이종근(국회의원), 이창승(전주시장), 이문세(연예인, 가수), 이윤호(지식경제부장관, 러시아주재 대사), 이주호(가수, 그룹해바라기리더), 이상(가수), 이상희(국방부 장관), 이기형(인터파크 회장), 이경실(연예인), 이시종(국회의원, 충청북도지사), 이현세(만화가), 이원종(탤런트), 이정웅(탤런트), 이홍섭(한국정보보호진흥원 원장), 이응로(화가), 이병렬(우석대교수)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백제의 구지현(仇知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금지현(金地縣)으로 개칭하였고, 고려에 들어 전의현으로 고쳐 청주목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縣監)을 두었으며,1414년(태종 14) 연기현(燕岐縣)과 합하여 전기현(全岐縣)이라 하다가 뒤에 다시 분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의군으로 승격하였으나 1914년 연기군에 합병되었고 일부는 전의면(全義面)으로 남아 있다.

주요파는 대사성공파, 문장공파, 전서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전북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전남 영광군 대마면 복평리,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충북 충주시 이류면 검단리, 충북 청원군 오창읍 학소리, 전북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전북 완주군 봉동읍 낙평리, 전남 나주시 세지면 교산리, 경북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등이다.

전의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전의김씨(全義金氏)와 전의이씨(全義李氏)가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부(문과(文科) 연산군 7년(1501)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효충(李效忠, 1484 甲辰生) : 문과(文科) 중종 19년(1524)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명준(李命俊, 1572 壬申生) : 문과(文科) 선조 36년(1603)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운근(李雲根, 1620 庚申生) : 문과(文科) 효종 1년(1650)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정작(李庭綽, 1620 庚申生) : 문과(文科) 영조 3년(172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기경(李基敬, 1713 癸巳生) : 문과(文科) 영조 15년(1739)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기경(李基敬, 1713 癸巳生) : 문과(文科) 영조 33년(175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665명이 있다. 문과 188명, 무과 44명, 사마시 433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전의이씨는 1985년에는 총 26,970가구 112,088명, 2000년에는 총 41,071가구 133,23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 4천여 가구,2만1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1,923명, 부산 5,162명, 대구 4,969명, 인천 4,596명, 경기 16,332명, 강원 3,580명, 충북 8,593명, 충남 10,750명, 전북 10,934명, 전남 4,739명, 경북 5,361명, 경남 4,979명, 제주 169명이다. 전북과 충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3,313명, 부산 5,466명, 대구 6,047명, 인천 8,579명, 광주 3,174명, 대전 4,662명, 울산 1,642명, 경기 30,246명, 강원 3,580명, 충북 8,448명, 충남 6,945명, 전북 9,258명, 전남 2,166명, 경북 4,918명, 경남 4,465명, 제주 328명 등이다. 전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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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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