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양천 허씨(陽川許氏)-130,286명
(66)양천 허씨(陽川許氏)-130,286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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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許) 씨는 김해김씨와 뿌리가 같은 성씨이다. 김해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은 배를 타고 우리나라 김해에 온 아유타국(오늘날 인도 부근)의 공주와 결혼해서 열 명의 아들을 낳는다.

그 중 둘째 아들에게 허씨로 사성(賜姓)한다. 왕비의 본성이 허씨라 자기 성이 이어지기를 바란 왕비의 간청 때문이었다. 그 뒤 김수로왕의 10세손 구해왕이 신라에게 항복하자 그 자손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갔다. 이때 허씨 후손들은 여러 개의 본관으로 갈라진다.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후(許黃后)의 30세손으로 고려시대 대광공(大匡公)이었다. 대대로 공암촌(孔巖村, 김포군 양천)에 살면서 농사에 힘써 거부가 되었다. 마침 고려 태조 왕 건이 후백제의 견 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보급해 준 공으로 공암촌주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양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양천(陽川)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의 옛 지명이다.

허선문의 손자 허 원은 고려 목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내사사인, 지제고, 태자사의 등을 지냈다. 증손 허 정은 예부상서를 지낸 후 태자재보에 이르렀다. 허 정의 아들 허 재는 병마사에 재임시 여진의 정세를 파악하여 변경 수비의 방책을 왕에게 올려 채택됐다. 후손 허 공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284년(충렬왕 10) 수국사를 겸하여‘고금록(古今錄)’을 지었으며 첨의중찬에 올랐다.

조선조에 와서는 재령 군수 허 손의 아들로 우의정에 오른 허 종과 좌의정을 지낸 허 침 형제가 뛰어났다. 허 종은 세조 때 이시애의 난과 도적 장영기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올랐다. 특히 허 종은 장신(長身)으로 궁마에 뛰어났고 문명(文名)이 높아 문무를 겸비한 명신으로 이름났다.

허 종의 동생 허 침은 1475년(성종 6)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며‘삼강행실(三綱行實)’을 새롭게 정리했다. 이조판서, 우참찬, 우의정을 거친 그는 좌의정 때 연산군의 폭정을 잡는 데 앞장 섰다. 상신(相臣)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난한 선비 생활로 칭송을 받았으며 후에 청백리에 올랐다.

허난설헌과 허 균 남매는 조선조에서 양천허씨 가문이 낳은 천재들이다. 허 균은 1569년(선조 3) 강릉 초당동에서 군수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초당 허 엽과 허 엽의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 예조참판 김광철의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다. 허 엽은 한때 강릉의 맑은 물로 초당 두부를 만들어 그 명성이 한성부까지 전래되었으나 관료로서 장사를 한다 하여 탄핵을 받기도 했다.

허 균은 유성룡에게 학문을 배우다가 나중에 둘째 형의 친구인 손곡 이 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서자 출신으로 출세가 어려웠던 이 달의 처지에 비애를 느낀 허 균은 훗날‘홍길동전’을 지었다. 자신도 재취 부인의 소생으로 서자와 다름없는 처지라 그의 불우함에 깊이 공감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은밀히 동지들을 규합해 두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시도한다. 끝내는 이 같은 기도가 발각되어 1618년(광해군 10) 49세 때 능지처참의 혹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허 균은 벼슬에서 여러 번 쫓겨나는 등 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벼슬길에 있을 때도 자유분방한 사상과 행동으로 당시 보수적인 유림들로부터 미치광이, 패륜아, 부도덕자로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선구적 사상가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허 준, 허 자, 허 목, 허 적 등은 그의 먼 친족이다. 이들은 모두 허 균의 5대조 허 추(許樞)의 형 허 비(許)의 후손들이다. 허 비의 차남 허 훈(許薰)의 손자가 허 자이고, 허 목은 5대손이다. 허 비의 3남 허 지(許芝)의 손자 허 론의 서자는‘동의보감’의 저자 허 준이다. 허 비의 넷째 아들 허 형의 증손이 허 잠이고,5대손이 허 적이다.

27세로 요절한 허난설헌은 규원(閨怨), 추한(秋恨), 유선사(遊仙詞) 등 주옥같은 시들을 남겨 여류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명나라 시인에게 건네주어 중국에서도 격찬을 받았다. 송시열의 서인과 맞섰던 남인의 영수 허 목, 허 적은 모두 조선 중기 당쟁의 거두들이다.

현대 인물은 허백련(동양화가), 허 길(국회의원), 허 혁(국회의원), 허무인(여, 국회의원), 허봉암(성리학연구회회장), 허문회(서울대교수), 허문강(고려대교수), 허 위(동국대경영대학원장), 허세욱(외국어대교수), 허 규(부장판사, 변호사), 허 강(화가), 허경만(국회의원), 허 건(화가), 허남전(서예가), 허 민(화가), 허 섭(수원시장), 허 휘(충북대교수), 허 형(중앙대교수), 허 련(전남도지사), 허유(시인), 허 유(서예가), 허장협(변호사), 허 정(서울대보건대학장), 허진득(광주기독병원장), 허진명(변호사), 허 척(서예가), 허창성(삼립식품공업 회장), 허철종(광명인쇄 사장), 허 향(변호사), 허 합(경기신문 사장), 허 억(대구시장), 허 즙(동아연필 사장), 허명회(대원관광사장), 허 선(대구상고 교장), 허성준(노동청차장), 허신득(광주대동고등학교장), 허석락(한국수출포장 회장), 허충무(육군준장), 허영선(삼립식품공업 부회장), 허영인(삼립식품공업 대표이사), 허용삼(한국수출포장공업 대표이사), 허평만(동부산업 대표이사), 허윤식(조종사), 허 율(우일홍보 대표이사), 허 웅(한글학회 이사장), 허 발(고려대독문학과 교수), 허 련(영풍건설 회장), 허 용(삼일제약 사장), 허평만(한국자동차보험 사장), 허 규(국립극장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양천(陽川)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의 옛 지명이다.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되어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양천군(陽川郡)으로 개편되었으나 1914년 경기도 김포군에 흡수되었고,1979년 양천군 관할이었던 양동면과 양서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양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양천최씨(陽川崔氏)와 양천허씨(陽川許氏) 등 2개가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허 관(許寬) : 문과(文科) 중종 12년(1517)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경(許坰) : 문과(文科) 중종 31년(1536) 친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균(許筠) : 문과(文科) 선조30년(159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직(許稷,1590 庚寅生) : 문과(文科) 광해군 9년(1617)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색(許穡,1586 丙戌生) : 문과(文科) 인조 5년(1627) 정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허윤(許玧,1645 乙酉生) : 문과(文科) 숙종 9년(1683)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365명이 있다. 문과 95명, 무과 27명, 사마시 233명, 역과 3명, 의과 4명, 주학 3명이다.

주요파는 동주사공파, 판도좌랑공파, 대제학공파가 있다. 집성촌은 전북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상삼리,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쌍동리, 전남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전북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양천허씨는 1985년에는 총 27,338가구 114,866명, 2000년에는 총 40,260가구 130,28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3천여 가구,1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2,618명, 부산 6,489명, 대구 2,124명, 인천 5,239명, 경기 19,164명, 강원 4,946명, 충북 5,092명, 충남 9,366명, 전북 5,016명, 전남 10,559명, 경북 3,734명, 경남 5,503명, 제주 4,413명이다. 서울, 경기, 전남, 제주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2,105명, 부산 6,662명, 대구 2,473명, 인천 9,140명, 광주 3,346명, 대전 3,700명, 울산 1,591명, 경기 31,720명, 강원 4,418명, 충북 5,624명, 충남 6,273명, 전북 4,383명, 전남 5,808명, 경북 3,543명, 경남 4,967명, 제주 4,533명이다. 서울, 인천, 경기, 제주 지역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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