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함평 이씨(咸平李氏)-125,419명
(68)함평 이씨(咸平李氏)-125,419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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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 언(李彦)은 고려 광종 때에 신무위 대장군으로 봉해졌다. 이어 충숙왕때 그의 고손 이광봉(李光逢)이 좌명공신으로 함풍(咸豊.함평의 옛이름) 부원군에 봉해졌다. 함풍은 함평의 옛 이름이다. 그 뒤 여러 대에 걸쳐 함평에 살면서 후손들이 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함평 이씨는 대장군을 지낸 4세손 이순지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한다. 특히 조선 초기에 가문을 일으켜 조선시대에만 70여 명의 문신과 무신을 배출했다. 중시조는 시조의 10대손인 이종생(李從生)이다. 그는 세조 때의 무장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야인 정벌 등에 용맹을 떨쳤으며 각 도의 병마절도사를 두루 역임했다. 함평이씨의 뛰어난 인물은 대부분 그의 후손이다.

이종생의 아들 이 양(李良) 장군 또한 연산군 대부터 중종 대를 거치면서 전라, 충청 수군절도사, 함경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52세 때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면서 배로 돌을 실어다 전남 여수에 있는 장군도 동쪽에서부터 돌산도 북쪽에 이르는 바다에 제방을 쌓아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때부터 이 섬은 장군도라 불리게 된다. 이곳에는 장군성이라는 비석과 방왜 축제비가 있다.

이대원(李大源)은 선조 16년 무과에 급제하고 남해안에 출몰한 왜적을 추격하여 적장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 흥양지방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1백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3일간의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패해 포로가 됐으나 항복을 거부하고 순국했다. 그의 충정을 기리는 뜻에서 쌍충사(雙忠祠)가 건립되었다.

이덕일(李德一.1561〜1622)은 선조 때 증광시에 급제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해 싸웠고 이정귀의 천거로 절충장군이 되었다. 그는 화살 하나로 두 명의 적을 쓰러트릴 만큼 활솜씨가 뛰어났다. 이 같은 용맹이 알려져 이순신 장군의 참모로 기용되어 임진왜란을 종결시키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현대 인물은 이건주(해양대총장), 이호범(국회의원), 이계순(농림부장관), 이계철(미얀마대사, 순국), 이성우(국회의원), 이병헌(국회의원, 독립운동가), 이우헌(국회의원), 이준범(고려대총장), 이상구(내외통신이사장), 이계수(이학박사, 전남대교수), 이자헌(체신부장관), 이재근(국회의원), 이원범(국회의원), 이영일(국회의원), 이길범(국회의원), 이기수(경남지사), 이정행(농학박사, 단국대교수, 한국마사회장), 이건영(육군중장, 한국마사회회장), 이돈명(경희대총장), 이석범(변호사), 이용섭(행정자치부장관), 이계안(국회의원), 이치범(환경부장관), 이계경(여 국회의원), 이석범(변호사), 이상범(변호사), 이재인(변호사), 이준범(판사), 이재곤(판사), 이재철(판사), 이건웅(판사), 이재환(판사), 이철(검사), 이현범(검사), 이철한(판사), 이방헌(한양대교수), 이사헌(서울대교수), 이계준(서울대교수), 이계탁(경희대교수), 이계홍(성균관대교수), 이재만(서울대교수), 이재룡(숭실대교수), 이영범(전북대교수), 이주범(신성여객 회장), 이서행(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이재화(공인회계사), 이경훈(세무서장), 이제헌(경기도건설국장), 이계승(법무부북부지청사무국장), 이재선(성동우체국장), 이계은(건설부낙동강사무소장), 이균범(감사원감사위원), 이계목(재무부이사관), 이재철(의학박사, 치과병원장), 이건태(육군준장), 이재흥(육군준장, 국방연구위원), 이계완(충남지사, 육군준장), 이중범(법학박사, 단국대교수), 이재두(성균관대교수), 이정행(농학박사), 이공범(성균관대교수), 이장범(단국대교수), 이도헌(원호처차장), 이동헌(군수), 이계찬(지방국세청장, 세무사), 이계익(한국관광공사사장), 이은범(범양사 사장), 이계찬(강릉상공회의소회장), 이관범(농수산부국장), 이성범(범양사 회장), 이징범(의학박사, 병원장), 이규범(의학박사, 병원장), 이계홍(한국경제신문경제부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3世 유(儒) ○,24世 ○ 서(緖), 25世 민(敏) ○,26世 ○ 헌(憲), 27世 계(啓) ○,28世 ○ 범(範), 29世 재(載) ○, 30世 ○ 행(行), 31世 건(建) ○, 32世 ○ 성(聖), 33世 규(奎) ○, 34世 ○ 선(善), 35世 원(源) ○, 36世 ○ 식(植), 37世 희(熙) ○, 38世 ○ 기(基), 39世 진(鎭)○, 40世 ○ 수(洙), 41世 병(秉) ○, 42世 ○ 열(烈)이다.

주요파는 감정공파, 진사공파, 운봉공파, 현감공파, 교수공파, 함성군파, 참판공파, 시교공파, 지평공파, 부사공파, 종성군파, 기성군파, 효우공파, 현령공파, 목사공파, 판관공파, 기설공파, 사직공파 등이다.

본관 함평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지명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개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선사시대에는 진국,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백제 때 굴내현, 다지현에 속했다. 1409년(태종 9) 모평현과 합하여 함평현으로 개편하였으며 기성(箕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다가,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이 되었다.

집성촌은 전북 정읍시 송산동, 전남 함평군 함평읍 함평리, 전남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충남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대양리, 평택시 현덕면 운정리, 전북 고창군 해리면 왕촌리 등이다.

전남 함평은 함평이씨의 아성이다. 지금도 함평군 일대에는 756가구,1,897명이 살고 있다. 특히 본관 함평이 있는 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는 함평이씨의 오랜 텃밭이다. 이곳은 마을 전체 1백여 가구 500여 명이 모두 함평이씨였다. 초포리에 처음 뿌리를 내린 조상은 조선 초기에 수사(水使)를 지냈던 이춘수(李春秀)다. 그는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함평에 정착하여 후학들을 양성했다. 세종 때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지낸 이긍(李兢)은 그의 아들이다. 함평은 일제 때 전남지방 항일운동의 산실로 유명하다. 호남사람들이 강골촌(剛骨村)으로 꼽는 3성(장성, 곡성, 보성)과 3평(함평, 남평, 창평)가운데 함평이 끼어있다.

함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함평김씨(咸平金氏), 함평노씨(咸平魯氏), 함평노씨(咸平盧氏), 함평모씨(咸平牟氏), 함평문씨(咸平文氏), 함평서씨(咸平徐氏), 함평오씨(咸平吳氏), 함평윤씨(咸平尹氏), 함평이씨(咸平李氏), 함평장씨(咸平張氏), 함평정씨(咸平鄭氏), 함평조씨(咸平趙氏), 함평조씨(咸平曺氏), 함평함씨(咸平咸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만영(李萬榮) : 문과(文科) 중종 33년(1538)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장영(李長榮) : 문과(文科) 선조 19년(158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휘항(李彙恒, 1695 乙亥生) : 문과(文科) 영조 2년(1726)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희겸(李喜謙, 1707 丁亥生) : 문과(文科) 영조 15년(1739)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윤신(李潤身, 1707 丁亥生) : 문과(文科) 영조 22년(174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293명이 있다. 문과 78명, 무과 14명, 사마시 199명, 의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함평이씨는 1985년에는 총 24,776가구 103,697명, 2000년에는 총 38,852가구 125,41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4천여 가구,2만2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1,480명, 부산 2,754명, 대구 618명, 인천 3,382명, 경기 16,554명, 강원 3,219명, 충북 1,015명, 충남 8,791명, 전북 5,778명, 전남 26,940명, 경북 761명, 경남 2,196명, 제주 208명이다. 서울과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5,707명, 부산 2,893명, 대구 787명, 인천 7,196명, 광주 14,177명, 대전 3,677명, 울산 875명, 경기 31,455명, 강원 3,093명, 충북 1,510명, 충남 5,959명, 전북 5,059명, 전남 9,814명, 경북 982명, 경남 1,826명, 제주 409명이다. 서울, 경기, 광주, 전남, 인천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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