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고령 신씨(高靈申氏)-116,966명
(75)고령 신씨(高靈申氏)-116,966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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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신성용(申成用)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했다. 그의 선조는 신라의 선비로 대대로 고령에 살면서 호장을 지내왔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신성용의 8세손 신숙주도 익재좌리공신으로 고령 부원군에 봉해졌다.

시조의 6세손 신 장, 신 평, 신 제 3형제의 후대에서 크게 번성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특히 신 장의 다섯 아들이 뛰어났다. 그 중 셋째 아들 신숙주(1417-1475)는 조선조 고령신씨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성삼문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세종의 명으로 성삼문과 함께 13번이나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 찬을 찾아가 음운에 관한 것을 의논하였다. 경국대전,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단종 원년 부승지에 올라 계유정난에 참여, 정난공신이 되었다. 다음해 도승지에 올라 세조가 즉위하자 그를 적극 보좌하여 좌익공신이 되고 고령군에 봉해진다. 신숙주는 그러나 계유정난 때 가장 가까운 성삼문과는 등을 돌려야 했다. 그는 세조 때 좌익공신, 예종 때 익대공신, 성종 때 좌리공신 등 4대에 걸쳐 공신에 올랐다.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신숙주의 아들 8형제도 모두 명성을 떨쳐 가문을 빛냈다. 그 중에서 넷째 신 정은 성종 때 좌리공신으로 이조참판을 역임했고, 다섯째 신 준은 대사헌과 우참찬 등을 거쳐 좌참찬에 올라 고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숙주의 손자 신종호는 성종 때 부제학, 이조참판, 경기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그는 일찍이 진사시(進士試), 문과, 중시 등에 모두 장원으로 급제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신종호의 아들 신 항은 성종의 부마가 되었다.

신 잠은 간성 군수를 역임한 후 상주 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관찰사 신면의 아들 신용개는 당대에 이름난 학자 김종직에게 글을 배워 직제학, 도승지 등에 기용되었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이 연산군의 비위에 거슬려 갑자사화 때 영광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대제학과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호당을 거친 신광한은 조광조 등과 함께 신진사류로서 벼슬이 대사성에 올랐으나 을묘사화에 연루되어 삭직되었다. 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우참찬으로 윤원형과 함께 소윤(少尹)에 속하여 윤 임 등 대윤(大尹)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우찬성에 올라 영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그 뒤 좌찬성을 역임한 후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한편 신숙주의 동생 귀래정 신말주(申末舟)는 세조가 즉위하자 원종공신에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순창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성종 때 전주 부윤과 진주 목사를 거쳤으며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그는 활을 잘 쏘는 등 무술에도 능했다. 그의 손자 신공제는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고 창원 부사를 역임했다. 지리학을 개척한 실학자 신경준은 음률, 의복, 법률, 기서에 이르기까지 통달했다. 그는 영조 때 정언(正言), 장령 등을 거쳐 서산 군수를 지냈다.

풍속화로 유명한 혜원 신윤복도 고령신씨의 후손이다. 그는 화원(畵員)으로서 벼슬은 첨정에 올랐다. 신윤복은 시정 촌락의 풍속도 중에서도 기녀, 무속, 주점의 색정적인 면을 많이 그린 풍속화가다.

신홍식(1872-1937)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 충북 청주 출신이다. 역시 충북 청주 출신인 신규식(1879-1922)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음독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눈만 사팔뜨기가 됐다. 대한자강협회에서 활약하다 1911년 중국에 망명, 손 문의 신해혁명에 가담한다. 단재 신채호(1880-1936)도 충북 청주 출신으로 민족주의 사관을 개척한 사학자다. 그는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 구한말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독사여론(讀史餘論)’‘대동사천년사’‘이순신전’등을 연재하면서 날카로운 논설을 폈다. 그 후 상해로 건너가 박은식. 문일평 등 문인동지들과 협력하여 박달학원을 창립, 교포 청년들의 교육에 종사했다.

현대 인물은 신흥우(주일대표부대사, 대한체육회장), 신성모(국방장관, 내무장관, 국무총리), 신각휴(국회의원), 신형식(국회의원, 건설부장관), 신범식(국회의원, 문화공보부장관), 신태호(상공회의소부회장), 신기수(경남기업사장), 신선호(율산그룹회장), 신찬우(숙명여대교수), 신홍수(고려대병원의료원장), 신춘호(고려대교수), 신원식(미펜실베이니아대교수), 신용순(동아일보편집국장), 신영수(한국일보부회장), 신우식(스포츠서울편집인), 신상호(도예가, 홍익대교수), 신수정(피아니스트, 서울대음대교수), 신응식(시인), 신정식(소록도국립나병원장), 신인우(국회의원), 신정호(국회의원), 신규식(국회의원), 신원식(육군소장, 극동건설사장), 신준우(조폐공사부사장), 신영우(전남도지사, 변호사), 신동우(육군준장), 신면우(의학박사), 신재휴(국회의원), 신찬수(공인중개사), 신관우(중앙일보논설위원), 신관우(국회위원), 신양식(국립보건원장), 신인수(변호사), 신완수(전북병무청장), 신석구 진일주택사장), 신하식(대한방직부회장), 신형식(충청일보논설위원), 신집호(서울시부교육감), 신준우(MBC편성부국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357명이다. 문과 87명, 무과 27명, 사마시 192명, 역과 32명, 의과 13명, 음양과 2명, 율과 4명이다. 항렬자는 19世 권(權), 20世 록(錄), 21世 모(模), 22世 구(求), 23世 휴(休) 빈(彬), 24世 우(雨), 25世 식(植), 26世 호(浩), 27世 수(秀), 28世희(熙), 29世 규(圭), 30世 종(鍾), 31世 영(永), 32世 상(相), 33世 섭(燮), 34世 재(在), 35世 용(鎔), 36世 태(泰), 37世 근(根)이다.

본관 고령은 경상북도 고령군의 지명이다. 대가야국의 중심지로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 : 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을 계승해 오다가 562년(신라 진흥왕 23) 신라에 병합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영천현(靈川縣)으로 개편되어 경산부(京山府 : 星州)에 속하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재정 개정으로 성주군(星州郡)과 현풍군(玄風郡)의 일부를 통합한 고령군이 되었다. 고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고령고씨(高靈高氏), 고령김씨(高靈金氏), 고령남씨(高靈南氏), 고령류씨(高靈柳氏), 고령박씨(高靈朴氏), 고령배씨(高靈裵氏), 고령신씨(高靈申氏), 고령유씨(高靈兪氏), 고령이씨(高靈李氏), 고령전씨(高靈全氏), 고령정씨(高靈鄭氏), 고령차씨(高靈車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충북 청원군 가덕면 청용리, 충북 청원군 가덕면 행정리,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 전남 여수시 해산동, 전남 여수시 화정면 적금리, 전남 고흥군 점암면 대룡리, 전남 고흥군 남양면 망주리 등이다. 주요파는 암헌공파, 정은공파, 감찰공파, 시중공파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고령신씨는 1985년에는 총 27,330가구 117,362명, 2000년에는 총 36,250가구 116,96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천여 가구가 늘어났다. 반면 인구는 4백여 명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0,121명, 부산 6,105명, 대구 2,881명, 인천 3,216명, 경기 14,338명, 강원 1,874명, 충북 11,124명, 충남 8,955명, 전북 5,765명, 전남 24,937명, 경북 3,227명, 경남 4,300명, 제주 490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7,420명, 부산 5,232명, 대구 3,086명, 인천 5,497명, 광주 6,227명, 대전 4,229명, 울산 1,063명, 경기 23,554명, 강원 1,507명, 충북 10,468명, 충남 4,801명, 전북 4,194명, 전남 13,781명, 경북 2,597명, 경남 3,020명, 제주 290명이다. 충북과 전남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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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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