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경제'의 비극
'관피아 경제'의 비극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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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남긴 KB사태…'MOFIA 목장’의 혈투와 책임론

 
일파만파(一波萬波)-.

주전산기 교체 갈등으로부터 시작된 KB금융의 내분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금융당국과 임영록 KB금융지주회장 간에 연일 ‘강(强) 대 강(强)’의 초강수가 나오고 있다. 중징계를 받은 임 회장이 사퇴를 거부, 소송 불사 방침을 밝히자 금융위원회는 휴일 긴급 회의를 열어 임 회장을 검찰에 추가 고발키로 했다.

KB내분 사태는 앞으로 검찰의 수사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이에 임 회장도 행정소송이나 또 다른 법리공방으로 맞설 태세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정까지 갈 공산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더라도 감독당국을 향한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에 대해선 문책론이 나돈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검사요청이 접수된 이후 5개월 가까이 사실상 KB사태를 방조해 위기를 키웠다는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엇갈린 목소리는 사태 초기부터 나왔다. 금감원의 수뇌부들은 '무관용 원칙 적용'을 강조하며 중징계 불가피론을 펼쳤지만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 내부에서는 '금감원이 무리하게 움직인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은 혼란스러워 했고, 감사원이 갑작스레 중징계 사안에 제동을 걸면서 상황이 더욱 꼬였다.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은 로비전으로 대응했다. 온갖 설이 나도는 가운데 제재심의위원회는 두달간 징계수위를 결정하지 못해 혼란을 더했다. 제재심은 표결로 두 사람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지만 내분사태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격화했다. 최 원장은 2주간 최종결정을 늦추다 제재심 결과를 뒤집었다.
 
금융위는 12일 전체회의에서 최 원장이 건의한 문책경고보다 한단계 높은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금융당국이 같은 사안을 놓고 3개의 엇갈린 판단을 내린데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금감원 제재심 위원에는 금융위 간부도 포함돼 있다. 금융위가 자기 손으로 한 결정을 스스로 번복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번 KB사태가 줄곧 정부와 친분이 있는 낙하산 인사 간의 ‘파워게임’의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해묵은 종기인 관치금융의 문제가 마침내 곪아터진 것이다. 이번 사태에 등장하는 핵심인물 세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두 모피아 출신이다. 임 회장에게 중징계를 확정한 금융위 전체회의 때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했다. 심판관의 자격이다. 임영록 회장도 회의에 직접 참석해 적극 소명했다.
 
세 사람은 이른바 모피아 출신 3인방이다. 모피아(MOFIA)란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다. 과거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의 금융관료 출신이 산하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임영록 회장은 1955년 강원도 영월 출생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73학번이다.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재정경제부에서 자금시장과장, 은행제도과장을 거쳐 금융정책국장으로 근무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1955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75학번이다. 임 회장과 동갑내기지만 서울대 입학은 2년 늦어 대학으로 후배다. 행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1983년부터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에서 근무한 정통 재무관료다. 신제윤 위원장은 1958년 서울 출생으로 임 회장과 최 금감원장보다 세 살 아래다.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으로 임 회장의 대학 4년 후배, 최 금감원장의 2년 후배다. 24회 행시에서 수석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부터 1997년까지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과장 등으로 근무했다.
 
임 회장은 최 금감원장과 동갑이지만 대학입학과 행시기수로 최 금감원장의 선배다. 신 위원장은 임 회장에 비해 나이, 대학입학, 행시기수에서 후배다. 신 위원장은 최 금감원장보다 나이는 세 살 적고 대학입학도 아래지만 행시합격은 1년 빠른 선배다. 임 회장은 재무부 시절 최 금감원장과 가깝게 지냈고 친분 또한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행시 출신인 데다 재무부 관료로 드물게 서울대 사대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금융정책국장, 차관보, 정책홍보관리실장, 2차관까지 역임하며 재무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고 KB금융의 회장까지 올랐지만 KB사태를 겪으며 처지가 역전됐다. 대학과 행시, 직장의 후배였던 최 금감원장과 신 위원장 앞에서 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최 금감원장도 곤혹스러운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금융감독 최고수장으로서 임 회장에게 중징계를 통보하고 제재심위의 경징계 결정을 번복해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선배인 임 회장을 두 번 죽인 꼴이 됐다. 한때 재무부와 기획재정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세 사람 관계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칼날을 겨눠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KB금융사태로 얽혀 엇갈린 운명을 맞은 세 사람이지만 금융권에서 이런 상황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모피아 출신 인사가 금융권 전체에 포진해 있는 만큼 이런 상황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4월 말 기준으로 금융지주사와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37개 금융사와 10개 금융관련 기관 및 협회의 임원급 가운데 74명이 기재부(옛 재무부, 재경부 포함), 금융위, 금감원 출신이다. 모피아로 분류되는 재무관료 출신은 이 가운데 39명이다. 기재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감독권한을 갖고 있는 부서 출신 인사들이 금융기관의 요직을 독식하는 셈이다.
 
이번 KB사태의 경우처럼 금융관련 사고나 징계 건이 터졌을 때 봐주기 의혹 등도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은 현재 모피아 세력이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다. 금융업계에 진출한 노년 모피아를 현직에 있는 청년 모피아가 배려하는 모피아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사태에서 최 원장이 차일피일 세월을 끌면서 제재 결정을 수 차례나 오락가락하고, 신 위원장이 제대로 된 금융위의 권한을 적절히 행사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닌 것도 모두 임 회장과의 ‘모피아 공생관계’에 얽힌 탓으로 돌린다.
 
모피아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생사여탈권을 쥔 금융당국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한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KB금융사태를 계기로 금융권 내에 선후배로 연결된 집단 관료인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모피아 출신이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금융위와 금감원 역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이제 금융권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끈끈한 관료집단, 즉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연결고리를 끓어야 한다. 금감원을 민간으로 완전히 독립시키고 금융위는 감독에 연연하지 말고 금융정책만 전담하도록 해야 하는 개혁방안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지난 봄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관료출신들이 퇴직후 민간에 낙하산으로 진출해서 온갖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일삼는 관피아의 실상과 폐해를 여실히 보았다. 금융계 모피아는 관피아 중에서도 가장 끈끈하고, ‘의리’있고, 조직적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다. 이번 KB사태도 따지고 보면 적게는 모피아, 넓게는 관피아 집단의  곪아있던 종기가 결국 터진 것이다. 우리 경제에 만연한 ‘관피아 경제’의 속살과 폐해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한국금융의 낙후성은 외부 평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내놓은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1위로 가나(52위), 캄보디아(65위) 등에도 밀린다. 은행 건전성 순위는 122위로 작년 113위보다 추락했다. 은행의 살림살이도 쪼그라들었다. 외형은 커졌지만 2004년 9조원에 육박했던 은행 순이익은 작년에 4조원 규모로 반토막이 났고 금융권 인력은 구조조정에 떠밀려 종사자 수가 7월말 84만5천명으로 1년전보다 5.4% 감소했다. 무사안일은 숱한 금융사고를 불러왔다. 올초 터진 카드 3사의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국민은행의 도쿄지점 부당대출, 본사와 지점 직원이 공모한 110억원대 국민주택채권 위조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은행을 정책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같은 현실에서 은행 내부의 능력있는 인사가 육성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은행에 대한 정부 입김을 최소화하고 은행들은 내부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금융기관이 보신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금융은 정말로 도약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 증권, 보험, 은행, 신용카드를 아우를 수 있는 선진형 종합금사 육성을 위해 지주사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한국금융의 경쟁력이 도약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당국을 활용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곳곳에 배치하는 관행과 눈칫밥 속에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은행의 나태함은 한국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이미 금융당국의 위상과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모피아 출신으로 관료사회를 잘 아는 임 회장이 온갖 비난을 각오하고 징계내용에 불복하겠다는 것 자체가 금융당국 판단의 적합성과 타당성에 대한 법리 공방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리 금융계를 안팎에서 쥐락펴락한 모피아들은 이제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주물러온 관치금융의 폐해가 KB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셈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뒷걸음치는 한국금융의 경쟁력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은행권의 관치금융과  금융감독 시스템 등을 마침내 대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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