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나주 나씨(羅州羅氏)-108,139명
(82)나주 나씨(羅州羅氏)-108,139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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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나 부(羅富)는 고려 때 중국에서 건너와 정의대부, 감문위상장군을 지낸 뒤 나주에 눌러 살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나 부를 시조로 하고 여황나씨로 하였다. 그 뒤 고려 성종 때 여황이 나주로 바뀌면서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나주의 다른 이름인 금성을 본관으로 한 금성나씨는 나주나씨와는 그 뿌리가 다르다. 구분하기 쉽게 나주나씨를 당라(唐羅), 금성나씨를 토라(土羅)라고 한다.

1세조는 나득규이다. 고려 때 진사를 지낸 4세조 나수영의 아들 나 위, 나 계, 나 석, 나 세, 나 원 대에서 전서공파, 시랑공파, 금양군파, 연안군파, 직장공파 등 5개 파로 갈라진다.

나중소는 한일합방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한 인물이다. 1919년 김좌진, 서 일 등과 북로군정서를 창설하여 참모장이 되었고 독립군의 양성을 위해 사관양성소를 설치했다.

대종교의 초대 교주인 나 철(羅喆)(1863-1916)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부락에서 태어났다. 1891년 29세에 문과에 장원하여 승정원가주서가 되었으나 일본의 침략이 점차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호남 출신의 우국지사들을 모았다. 그 뒤 1904년 유신회(維新會)라는 비밀 단체를 조직해 구국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1월 15일 경성 재동 취운정에서 수십 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군대황 조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행한 뒤 단군 교포명서를 공포하였다.

이때부터 이 날을 중광절(重光節)이라고 부른다. 그 뒤 교세가 확장되어 교도수가 2만여 명에 달하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대종교를 종교가 아닌 항일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남도 본사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뒤 나 철은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유서를 남기고 순국한다.

나혜석은 화가, 소설가로 이름이 난 인물이다. 1921년에는 한국 여류화가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1918년‘경희’, ‘정순’등의 단편소설을 발표, 여류 소설가로도 등장했다. 개화기 대표적인 여성 인물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나세찬(羅世纘) : 문과(文科) 중종33년(1538) 탁영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나만영(羅晩榮,1652 壬辰生) : 문과(文科) 숙종19년(1693)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나사선(1652 壬辰生) : 문과(文科) 중종 29년(1534) 별시 병과(丙科), 나신국(羅藎國,1524 甲申生) : 문과(文科) 명종 21년(1566) 별시 병과(丙科), 나순영(羅純榮,1857 丁巳生) : 문과(文科) 고종 28년(1891) 별시2 병과(丙科) 등 모두 159명이 있다. 문과 28명, 무과 29명, 사마시 102명이다.

현대 인물은 나웅배(부총리, 국회의원), 나중배(육군대장), 나도석(서울농대교수), 나운영(연세대학장, 작곡가), 나종일(문학박사, 서울대교수), 나길조(대법원판사, 변호사), 나천수(서울고법판사), 나이수(민의원), 나창수(한국기계공업진흥회부회장), 나준수(정치학박사, 독일대교수), 나종수(판사), 나도성(재무부이사관), 나용수(국방대교수), 나갑수(국방대교수), 나성수(곡물검사소전남도지부장), 나민수(국세청국장), 나귀영(쌍용투자 광주지점장), 나복규(한일서예문화진흥회장), 나정웅(교수), 나상동(조선대교수), 나종주(동남사무기기 대표이사), 나채규(판사), 나금만(총경), 나영옥(총경), 나익진(상공부장관서리), 나호진(검찰지청장, 변호사), 나형수(검사), 나용주(전북도노동국장), 나상목(동양화가, 동국대교수), 나상균(이학박사, 울산대교수), 나종훈(판사), 나교희(단양군수, 중원군수), 나종일(문학박사, 교수), 나영균(문학박사, 이화여대교수), 나형수(검사), 나진선(한학자), 나제윤(한학자), 나병직(대통령비서관), 나종열(정보부비서관), 나명원(교수), 나필열(정치학박사, 교수), 나형열(신학박사, 교수), 나숭열(검사), 나도헌(의학박사, 보사부차관), 나도영(공주대교수), 나도상(조달청국장), 나항윤(대법원판사, 변호사), 나종오(국민대교수), 나규환(약학박사, 성균관대교수), 나병선(육군소장), 나상무(이학박사, 아주대교수), 나희필(육군중장), 나기봉(삼중교역사장), 나주택(익산군수), 나상윤(서울역장), 나지수(보해양조사장), 나선수(판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3세 集(집), 24세 燾(도), 25세 均(균) 圭(규) 基(기), 26세 鍾(종) 鈺(옥) 錠(정), 27세 永(영) 洙(수) 澈(철), 28세 相(상) 榮(영) 植(식), 29세 燁(엽) 熙(희) 然(연), 30세 重(중) 玹(현) 在(재), 31세 善(선) 鐸(탁) 鎰(일), 32세 汶(문) 浩(호) 洪(홍), 33세 杓(표) 根(근) 柱 ,34세 容(용) 燦(찬), 35세 培(배) 坤(곤) 起(기), 36세 銀(은) 鐵(철) 鎔(용), 37세 泳(영) 泰(태) 湜(식), 38세 炳(병) 枰(평) 采(채), 39세 烋(휴) 烈(렬) 杰(걸)이다.

본관 나주는 전라남도 나주시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불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나주 본관 성씨는 나주강씨(羅州姜氏), 나주김씨(羅州金氏), 나주나씨(羅州羅氏), 나주내씨(羅州奈氏), 나주노씨(羅州盧氏), 나주독고씨(羅州獨孤), 나주류씨(羅州柳氏), 나주문씨(羅州文氏), 나주박씨(羅州朴氏), 나주방씨(羅州方氏), 나주배씨(羅州裵氏), 나주백씨(羅州白氏), 나주서씨(羅州徐氏), 나주성씨(羅州成氏), 나주손씨(羅州孫氏), 나주송씨(羅州宋氏), 나주신씨(羅州申氏), 나주아씨(羅州阿氏), 나주양씨(羅州梁氏), 나주엄씨(羅州嚴氏), 나주염씨(羅州廉氏), 나주오씨(羅州吳氏), 나주이씨(羅州李氏), 나주임씨(羅州林氏), 나주임씨(羅州任氏), 나주장씨(羅州張氏), 나주전씨(羅州全氏), 나주정씨(羅州鄭氏), 나주정씨(羅州丁氏), 나주조씨(羅州趙氏), 나주주씨(羅州朱氏), 나주진씨(羅州陳氏), 나주차씨(羅州車氏), 나주추씨(羅州秋氏), 나주한씨(羅州韓氏), 나주호씨(羅州扈氏), 나주홍씨(羅州洪氏), 나주황씨(羅州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전북 김제시 용동, 전북 정읍시 소성면 주천리, 전북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전남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전남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용곡리, 전남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전남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전남 무안군 삼향면 임성리, 전남 나주시 삼영동, 전남 나주시 노안면 장동리, 전남 나주시 석현동, 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충남 서천군 마서면 옥산리, 전북 김제시 명덕동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나주나씨는 1985년에는 총 23,284가구 99,090명, 2000년에는 총 33,600가구 108,13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여 가구,9천여 명이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6,712명, 부산 4,432명, 대구 2,453명, 인천 4,071명, 경기 12,934명, 강원 2,824명, 충북 2,321명, 충남 8,623명, 전북 9,333명, 전남 17,150명, 경북 3,747명, 경남 3,773명, 제주 716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7,202명, 부산 4,303명, 대구 2,854명, 인천 7,534명, 광주 7,138명, 대전 3,291명, 울산 1,088명, 경기 23,046명, 강원 2,103명, 충북 2,421명, 충남 5,013명, 전북 7,505명, 전남 7,644명, 경북 3,116명, 경남 3,111명, 제주 770명이다. 광주, 전남, 전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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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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