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순천 박씨(順天朴氏)-87,631명
(91)순천 박씨(順天朴氏)-87,631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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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박영규(朴英規)는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후손 박란봉(朴蘭鳳)이 순천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는 원래 순천 사람으로 견 훤의 사위다. 그는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고려 왕 건에게 도피하자 고려에 귀순하여 공을 세운다. 그 뒤 박영규는 왕 건과 사돈을 맺는다. 큰 딸은 태조의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이 되었고 나머지 두 딸은 정종의 문공왕후, 문성왕후가 된다.

1세이며 중시조인 박숙정(朴淑貞)은 고려 때 보문각대제학의 벼슬에 오른다. 충숙왕 13년(1326년)에 국자제주(國子祭酒)로서 관동존무사가 되었다. 고성의 사선정, 강릉의 경호정, 울진의 취운루를 모두 그가 창건했다.

단종의 양위와 세조의 즉위를 둘러싼 정치 변동 속에서 순천박씨 후손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당시 순천박씨 후손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사람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이다. 박팽년의 아버지 박중림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성삼문, 하위지는 그의 문인이다. 박중림은 세조 2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박팽년, 박인년, 박기년, 박대년, 박영년의 다섯 아들 및 손자와 함께 처형된다.

박팽년에게는 박 헌, 박 순 등 두 아들이 있었다. 모두 함께 처형되었으므로 후손이 끊어질 뻔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속칭 묫골마을에는 박팽년의 후손이 사는 마을이다. 묫골은 마을이 묘하게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밖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고, 마을에서 보면 밖이 보이는 독특한 지형에서 나온 말이다. ‘묫골 박씨’(순천 박씨 충정공파)의 파조는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이다. 박팽년이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발각된 뒤 그의 둘째 며느리 성주이씨가 낳은 아들이다. 당시 이씨는 한양에서 쫓겨나 친정인 묫골에 있었다. 조정에선 이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관비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아들을 낳았는데, 마침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 아이를 바꿨다. 이렇게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 박 비(朴婢)다. 비는 노비(奴婢)라는 뜻이다. 성종 즉위 후 박 비는 상경하여 자신의 신분을 고한다. 성종은 특사령을 내리고 이름을 그때 일산(一珊)으로 고쳐 주었다. 이처럼 간신히 이어진 그 일족을 ‘묫골박씨’라고 한다. 박일산은 이곳에 종택을 짓고 대를 이었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1467-1510)은 병조판서를 지낸 박중선의 아들이며 조부는 영의정 심온의 사위로 세종과 동서였던 박거소이다. 증조부는 태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박석명이다. 박석명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조카 사위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 허균의 딸이다. 조부인 박거소는 세종의 동서로 문종과 세조의 이모부다. 부친 박중선의 이모부였던 세종은 그를 각별히 아꼈으며 무인의 자질이 뛰어났던 박중선은 무과에 장원급제하면서 관직에 나갔고 무과출신으로는 드물게 판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박원종도 무과에 장원급제한 뒤 평안도병마절도사,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39세에 경기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연산군의 미움으로 삭직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척들이었던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반정을 모의하여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을 옹립하여 중종으로 즉위 시켰다. 그 뒤 영의정에 오른 이듬해 44세의 짧은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현대 인물은 박준규(국회의원, 민주공화당의장), 박재우(국회위원), 박종남(국회의원), 박규명(독립운동가), 박인환(독립운동가), 박노창(독립운동가), 박해봉(친우문화사장, 순천박씨종친회 초대회장), 박황(성균관고문, 도산서원장), 박만규(식물학자, 고려대교수), 박창준(흥사단이사장, 서울대교수), 박정수(철도대교수), 박노욱(충주대교수), 박종민(숭전대부총장), 박종철(경희대교수), 박종삼(충북대교수), 박명순(청주사대교수), 박상일(충북대교수), 박노성(제일은행장, 대우그룹이사회장, 종친회장), 박종호(변호사), 박노현(변호사), 박송규(법제처법제관), 박종철(대구지검장), 박관수(변호사), 박완동(광주고검국장), 박경구(대구고법판사), 박경태(변호사), 박경(한의사, 원광대교수), 박진동(전남일보부사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19世 ○현(鉉), 20世 해(海)○,21世 ○동(東), 22世 노(魯)○,23世 ○규(圭), 24世 종(鍾)○,25世 ○순(淳), 26世 상(相)○,27世 ○환(煥), 28世 재(在)○,29世 ○선(善), 30世 승(承)○, 31世 ○식(植), 32世병(炳)○, 33世 ○균(均), 34世 정(正)○, 35世 ○원(源)이다.

본관 순천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지명이다. 백제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다. 983년(고려 성종 2) 지명을 순주(順州)·자주(慈州)·은주(殷州)로 고치고 각 주마다 방어사를 두었다. 1036년(정종 2) 다시 승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으며 부유현(富有縣)·돌산현(突山縣)·여수현(麗水縣)·광양현(光陽縣)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1309년 승주목(昇州牧), 1310년 순천부(順天府)가 되었다. 조선시대 동안 순천도호부는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순천의 별호는 평양(平陽)이었다. 1949년 8월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 해룡면 일부를 합하여 순천시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의 새로운 순천시가 되었다.

순천 본관 성씨는 순천김씨(順天金氏), 순천도씨(順天陶氏), 순천박씨(順天朴氏), 순천설씨(順天薛氏), 순천심씨(順天沈氏), 순천안씨(順天安氏), 순천이씨(順天李氏), 순천임씨(順天林氏), 순천장씨(順天張氏), 순천정씨(順天鄭氏), 순천조씨(順天趙氏), 순천최씨(順天崔氏), 순천포씨(順天包氏), 순천현씨(順天玄氏) 등이다.

주요파는 원파, 문숙공파, 군수공파, 부정공파, 의주목사공파, 진사공파, 승지공파, 경력공파, 생원공파, 제주목사공파, 판관공파, 감사공파, 충정공파, 교리공파, 수찬공파, 박사공파, 검열공파, 전직공파, 인의공파, 부위공파 등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일대 집성촌의 입향조는 중시조 박숙정의 손자 이조판서 박장생이다. 그는 단종 때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바랑골에 와서 살았다. 그 뒤 박세림의 원남면 덕정리파, 박세겸의 음성읍 한벌리파, 박세감의 음성읍 초천리파, 박세번의 음성읍 용산리 백동파 등 박장생의 7세손 네 형제가 네 파를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 음성군 원남면 덕정리 속칭 독징이에 12호가 살고 있고, 음성읍 한벌리에 8가구, 초천리에 6가구, 용산리에 10여 가구, 평곡리 덕골에 6가구 정도가 세거하고 있다.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바랑골에 입향조 박장생의 묘가 있으며 덕정리에 재실(齋室)이 있다.

그 밖에 집성촌은 충북 청원군 미원면 가양리,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충북 청원군 오창읍 각리, 전북 정읍시 북면 장학리,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경북 군위군 고로면 인곡리,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134명이 있다. 문과 34명, 무과 13명, 사마시 85명, 역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순천박씨는 1985년에는 총 18,296가구 75,888명, 2000년에는 총 27,209가구 87,63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천여 가구,1만2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7,042명, 부산 4,316명, 대구 8,721명, 인천 1,700명, 경기 6,743명, 강원 2,506명, 충북 9,507명, 충남 4,780명, 전북 3,468명, 전남 7,950명, 경북 5,609명, 경남 3,426명, 제주 120명이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7,900명, 부산 4,318명, 대구 10,301명, 인천 3,306명, 광주 4,624명, 대전 2,947명, 울산 1,329명, 경기 14,709명, 강원 1,993명, 충북 9,056명, 충남 2,844명, 전북 2,941명, 전남 3,270명, 경북 4,975명, 경남 2,932명, 제주 186명이다. 충북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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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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