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안동 장씨(安東長氏)-83,961명
(93)안동 장씨(安東長氏)-83,961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14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장군인 장 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5살 되던 892년(신라 진성여왕 4) 나라 정치가 문란하자 이를 피해 아버지가 신라에 망명 할 때에 따라 들어와서 강릉에 살다가 경북 노전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18세 때에 중국으로 파견하는 정조사를 따라 다시 중국에 들어가 24세 때 문과에 장원 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제자를 가르쳤다.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명성이 천자에게 알려져서 한때 벼슬이 이부상서에 올랐다. 그러나 벼슬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와 경북 인동 노전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930년(경순왕 4년)에 김선평, 권 행과 함께 향병을 모아 고려 태조를 도왔다.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그 공으로 고창(안동)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다. 경북 안동 노산서원과 안동시 북문동 삼태사묘에서 제향한다.

장사길(張思吉)은 의주의 토호로서 이지란과 함께 왜구를 토벌한 뒤 동지밀직사사가 되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 밀직부사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워 회군공신이 되었다. 조선 개국에도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으로 중추원지사에 올랐다. 그의 아들 장 철(張哲)도 고려 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1388년(우왕 14) 아버지와 함께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웠고 첨절제사, 영흥부사 등을 지냈다. 그 밖에 학자로는 장세량(世良) 등이 있으며, 홍경래의 난 때 크게 공을 세운 장몽열, 장낙현 부자도 있다.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는 김성일, 류성룡에게서 배웠으며 퇴계학에 뛰어났다. 후세에 부덕의 귀감으로 일컬어지는 정부인(貞夫人) 안동장씨는 장흥효의 딸이다. 정부인 장씨는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초의 한글 음식조리서‘음식디미방’을 썼다. 이 책에는 만두법, 상화법, 빈자법, 박산법 등 약 146개 항목에 달하는 각종 음식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다. 붕어찜, 족탕법, 연계찜, 개장국, 누른 개 삶는 법 등 흥미로운 조리법도 나온다. 그는 19세에 재령이씨 집안의 이시명과 혼인하였는데, 장씨 부인이 살았던 집은 현재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두들마을)의 석계고택으로 보존되어 있다. 장씨는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나 열다섯 살에 지은‘학발시(鶴髮詩)’등이 있다.

의사와 사회사업가로 평생을 살았던 장기려(張起呂, 1909~1995)는 평북 용천 출신이다. 평양의과대학 외과 교수와 평양도립병원장을 지냈다. 1·4 후퇴 때 평양에 부인과 2남 3녀를 남겨둔 채 차남만을 데리고 피난하여 이산가족이 되었다. 월남한 뒤 6·25전쟁 중 발생한 전상자와 극빈환자에 대한 무료치료를 시작으로 인술을 통한 인간애를 실천해왔다. 부산에 정착한 그는 1951년에 피난민들을 위해 영도에 복음병원을,1958년에는 행려병자를 위해 토성동에 행려병자 진료소를 차려 무료진료를 했다. 그의 인술활동이 전 세계로 알려져 1979년에는 필리핀 정부가 주는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장정식(張正植,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식년시 병과(丙科), 장세량(張世良,1627 丁卯生) : 문과(文科) 효종2년(1651) 식년시 병과(丙科), 장중인(張仲仁,1594 甲午生) : 문과(文科) 인조13년(1635) 증광시 병과(丙科), 장제한(張齊翰,1862 壬戌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병과(丙科), 장경남(張景男,1862 壬戌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장성길(張成吉,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51명이 있다. 분야별로는 문과 4명, 무과 10명, 사마시 20명, 역과 16명, 의과 1명 등이다.

현대 인물은 장명기(안동장씨중앙대종회회장), 장주해(가톨릭의대교수, 의학박사), 장석종(충남대의대교수, 의학박사), 장규섭(유광광업 , 동명내화공업 회장), 장인섭(동원토질대표이사), 장하구(종로서적회장), 장하린(종로서적사장), 장하일(외국어대교수), 장기봉(신아일보사장), 장원석(덕수물산 회장), 장상훈(대성산업 전무이사), 장영근(사단법인 한국문화재보전수리기능인협회회장), 장상섭(한성여대교수), 장병태(덕수물산 전무), 장기윤(초등학교교장) 씨 등이 있다. 지난 1989년 현재 종친회 회장은 장인섭, 부회장은 장규섭, 장이섭, 장영근, 감사는 장명기, 장세연, 사무국장은 장범진, 고문은 장민수, 장덕희, 장명신, 장석기, 장기원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재(載), 32世 선(善), 33世 태(泰), 34世 주(柱), 35世 훈(勳), 36世 현(玹), 37世 용(鎔), 38世 수(洙), 39世 래(來), 40世 엽(燁), 41世 효(孝), 42世 철(鐵), 43世 영(永), 44世 상(相), 45世 환(煥), 46世기(基), 47世 호(鎬)이다.

본관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에는 창녕국(昌寧國)인 소국이었다. 신라가 이곳에 진출하여 고타야국(古陀倻國)으로 불렀고,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하고, 직령현·일계현·고구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동부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영가군으로 강등되었고,995년(성종 14) 행정구역 개편 때 길주로 승격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년(명종 27)에 도호부로 개칭되었고,1204년(신종 7)에 대도호부로,1308년(충선왕 즉위)에 복주목(福州牧)으로 계속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慶尙左道)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경상북도의 중심지 도시 역할을 했던 안동에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매우 많다. 안동강씨(安東姜氏), 안동고씨(安東高氏), 안동권씨(安東權氏), 안동김씨(安東金氏.구파), 안동김씨(安東金氏.신파), 안동남씨(安東南氏), 안동노씨(安東盧氏), 안동류씨(安東柳氏), 안동문씨(安東文氏), 안동박씨(安東朴氏), 안동배씨(安東裵氏), 안동서씨(安東徐氏), 안동안씨(安東安氏), 안동우씨(安東禹氏), 안동유씨(安東劉氏), 안동이씨(安東李氏), 안동임씨(安東林氏), 안동임씨(安東任氏), 안동장씨(安東張氏), 안동전씨(安東全氏), 안동정씨(安東鄭氏), 안동조씨(安東曺氏), 안동천씨(安東千氏), 안동최씨(安東崔氏), 안동추씨(安東秋氏), 안동허씨(安東許氏), 안동황씨(安東黃氏) 등 무려 30여 개 성씨가 안동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주요파는 화산군파, 부안군파, 예산군파, 청송군파, 지예백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궁천리, 충남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입석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안동장씨는 1985년에는 총 15,086가구 64,814명, 2000년에는 총 25,552가구 83,96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여 가구,9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8,550명, 부산 5,694명, 대구 1,608명, 인천 2,815명, 경기 9,719명, 강원 2,855명, 충북 1,887명, 충남 7,623명, 전북 2,140명, 전남 3,007명, 경북 3,987명, 경남 4,563명, 제주 366명이다. 충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다음 서울, 경기, 부산과 경남 지역에도 많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0,784명, 부산 6,752명, 대구 2,542명, 인천 5,806명, 광주 1,252명, 대전 2,272명, 울산 1,600명, 경기 18,225명, 강원 2,979명, 충북 2,391명, 충남 5,278명, 전북 2,271명, 전남 2,043명, 경북 4,287명, 경남 5,045명, 제주 434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충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