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단상(斷想)
아시안게임 단상(斷想)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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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어 대회 반납한 지 45년..눈물 흘리던 체육선생님

 
필자가 중학교 3학년 때이었으니까. 아마 1969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체육수업 시간-. 이날은 실내 수업이었다. 근엄한 표정의 체육선생님께서 마지막 수업임을 알리는 말씀을 한 뒤 곧바로 서울 아시안 게임(당시엔 아시아경기대회) 얘기를 꺼내셨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유치한 아시안게임이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1970년 아시안 게임이 화두였다. 원래는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됐으나 우리나라가 과도한 대회개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대회를 반납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신념과 소신이 크게 작용했다. 개최비용이 막대하게 드는 바람에 이대로 대회가 열리면 그만큼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발전이 늦어진다는 논리였다. 이윽고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과 국가 경제발전을 이유로 우리나라는 거액의 벌금을 물고 개최권을 반납하고 만다. 그래서 당시 오일달러가 풍부한 중동국가들을 중심으로 10개국에서 지원한 끝에 직전 대회 개최지 였던 태국 방콕에서 또 다시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지금 회고하면 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 국제대회를 유치하고도 돈이 없어서 이를 반납하다니..이야말로 국격과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인 줄을 알면서도 대회를 반납해야 했던 위정자들과 국민들은 얼마나 창피하고 속이 탔을까. 이날 체육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는 단순히 체육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외치는 고함‘과 같은 것이었다. 이를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참담한 표정이 굳어지다 못해 안경 너머로 이슬이 보이는 듯 했다. 통상적인 체육선생님의 수업이 아니라 시국강연회같은 감동적인 내용이 이어지자 교실은 숙연해지고 한동안 정적이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한 개도 따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올림픽 개최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런 마당에 우리나라가 모처럼 유치한 아시안게임을 정부가 반납하게 되자 체육선생님으로서는 당시 현실이 무척 실망스럽고 안타깝고 슬펐던 것 같다. 필자같은 학생들의 어린 마음에 도대체 아시안게임 얼마나 돈이 많이 들기에 선생님께서 저리도 통한스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에 덩달아 애달픈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45년-.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리나라는 1986 아시아 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잇달아 유치, 성공적으로 치러낸 국가가 됐다. 올림픽에 나가면 세계 10위권 안팎의 스포츠 강국 대열에 올라섰다. 그 뒤로도 아시안게임은 2002년 부산에서 다시 한번 유치했고, 같은 해 월드컵축구대회까지 한일 공동으로 열었다. 오는 2018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도 자랑스럽게 치르는 나라가 됐다.
 
지금 인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 째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한테는 솔직히 아시안게임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눈치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가운데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GDP)은 2만달러를 넘어섰다. 1960년대 당시엔 자동차도 겨우 조립생산에 그쳤으나 지금은 국산자동차가 세계에 수출되지 않는 나라가 별로 없을 정도이고, 휴대폰은 물론 HDTV, 첨단 냉장고 등 국산 전자제품이 5대양 6대주를 휩쓸고 있다.
 
그때 체육선생님께서 ‘독일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n Nation)’을 인용하셨던 기억이 난다.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J.G.피히테가 적군의 점령아래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행한 우국 대강연 내용이다. 1807년 12월에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에 있었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일 국민의 분기(奮起)에 커다란 힘이 됐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하셨다. 어제 TV 생중계로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문득 그 은사님을 떠올렸다. 그분께서 아직까지 살아계셨다면 이 광경을 보며 과연 뭐라고 말씀을 하셨을까. 그토록 염원하던 아시안게임이 이 땅에서 한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 째로 열리고 있는데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작고한 체육선생님의 유지(遺志)를 희미하나마 엿보고 싶다. 그분이 말씀하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서 후세에는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를 유치해도 반납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말씀이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귓가를 때린다.
 
더욱이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 정세가 나폴레옹에게 짓밟힌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인 ‘독일국민에게 고함‘-당시 유럽의 정세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러시아는 1806년 나폴레옹에게 먼저 선전 포고를 했으나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예나를 점령, 그해 10월 14일에는 베를린에 입성했다. 1807년 6월, 프러시아의 빌헬름 3세는 프랑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화 조약을 맺었다. 나폴레옹은 이 조약에 의해 프러시아를 예속시켜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프러시아는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 이러한 절망적인 시기에 피히테는 수도 베를린에서 이 강연을 한 것이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글을 읽는 시각에 따라 풍부한 각성과 시사점을 제공한다. 비록 나폴레옹에게 짓밟힌 19세기의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감동을 안겨 준다. 우리가 나폴레옹 군이 점령한 베를린에서 점령군과 맞서 조국의 패망이라는 치욕과 비운을 딛고 일어나 세계사의 지도적 국가로 재생할 길을 절규한 피히테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그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 우리는 경제발전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어디를 가든 메이드인 코리아제품을 팔며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부(富)의 편중현상’이나 사회 양극화같은 파생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성장에 따른 분배문제와 중산층 실종,그리고 정신세계의 황폐화와 같은 새로운 경제사회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문제는 사실상 고속성장과 '대충대충 습성’ 또는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다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을 통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진정한 조국애(祖國愛)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배우고 일깨울 수 있으면 대단히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극도로 물질문명과 배금주의가 만연한 2014년 한국에서 자기 민족과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무한한 발전과 개선에 대한 신념이 참된 조국애라고 외치는 피히테의 사상을 되새겨 볼 만 하다. 아울러 우리나라 교육의 올바른 방향, 즉 국적 있는 교육, 또는 주체적인 교육의 방향을 어디에 설정해야 하는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주체성, 특히 민족적 주체성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물론 피히테가 말하는 민족적 주체성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지향점 만은 아직도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피히테의 거시적인 안목과 그의 인내심은 우리들에게 각별한 감동을 준다. 독일 국민의 철저한 개선을 통해서만 진정한 부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국가개조'에 해당한다. 따라서 서두르지 말고 확고하게 교육에 의해 최종 목적에 도달하자고 설득하는 피히테의 태도를 우리들은 귀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영어 속담에도 있지만 ‘세월은 화살처럼 흐른다(time flows like an arrow)’-. 이미 45년이 지난 이 가을날 하늘나라로 가신 중학교 때 체육은사님을 뒤늦게 기억하고 흠모하는 것은 필자 자신이 이 땅에서 지성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괴심 때문이다. 피히테는 특히 조국이 패망의 길을 달릴 때에는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하거나 침묵을 지켰던 지식인들이 일단 권세 있는 자가 실각하자 모든 허물이 그에게 있었던 것처럼 비난하는 지성인의 태도를 준엄하게 비탄했다.이 대목에 이르면 우리도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때의 독일이나 근세의 한국이나 세태가 별반 다르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45년 전 은사님으로부터 가슴떨리는 가르침을 받았던 필자의 경우에도 그동안 후학들에게 과연 조국애나 민족적 주체성같은 교육을 제대로 시켰는가를 자성해 본다. 교육혼을 제자들에게 불어넣고 돌아가신 체육선생님의 얼굴과 이름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인천아시안게임의 성공을 충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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