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망명-표현의 자유
사이버 망명-표현의 자유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0.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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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메신저 이용 급증..'1984-빅 브라더' 안돼야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카카오톡은 생활의 ‘필수품(must-have)’이 됐다. 동창생이나 직장동료, 가족, 친지끼리 터놓고 대화하는 카톡방은 인터넷 시대를 실감케 하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도 카톡방 말고도 네이버 밴드까지 가입, 서투른 실력이나마 지인들과 사이버 대화를 주고 받곤 한다.

그런데 최근 ‘사이버 망명(Cyber Asylum)’이 세간의 화두로 등장했다. 사이버 망명이란 정치적인 사유 등으로 인해 자국 내 서버에서의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에 제한을 받는 사용자가 이메일, 블로그 등 인터넷 서비스의 주 사용무대를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 서버로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사이버 망명을 한 사람들을 사이버 난민(Cyber Refugee)이라고 부른다.
 
사이버 망명이 늘어나면서 국내 메신저가 급격한 위상의 변화를 겪고 있다. 국산 메신저에서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탓이다. 독일에 기반을 둔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의 국내 다운로드 순위(애플 앱스토어 기준)는 최근 일주일 만에 1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보안’이 필요한 대화가 잦은 이들은 해외 메신저를 일종의 ‘해방구’로 이용한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해외 메신저를 가장 애용한다. 최근엔 민감한 주제의 첩보와 대화를 나누는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까지 속속 ‘사이버 망명’ 대열에 합류중이다. 국내 메신저는 누군가 다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쓰기가 꺼려지는 탓일 것이다.
 
심지어 검찰과 경찰에서도 텔레그램 사용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검찰 내 텔레그램 사용은 일부 특수부 검사들과 홍보라인 검사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보안 문제 때문에 평소 카카오톡은 물론 문자메시지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그들도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해외 메신저 가입이 부쩍 늘었다. 야당가에서 초선·중진을 막론하고 텔레그램을 깔고 있다고 한다. 해외 메신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건 수사 당국이 해외 IT업체 서버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된 것은 지난 달 검찰의 사이버 허위사실유포 전담수사팀이 신설된 뒤의 일이다. 경찰의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사이버 검열’ 논란이 불거지기까지 했다. 지금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평소엔 국내 메신저를 쓰고, 비밀스러운 대화는 해외 메신저를 쓰는 식으로 이용 패턴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문제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주권까지 선언하면서 국가권력의 개입을 배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사실상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상의 불법적인 표현도 오프라인과 같은 기준으로 규제돼야 한다는 반론도 팽팽했다.
 
인터넷 실명제 등 논란이 계속되는 분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프라인에서 허위의 사실로 명예를 훼손한 것은 불법이지만, 온라인상에서 똑같은 행위를 한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과거 온라인상의 부적절한 표현, 불법적 표현이 문제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음란물, 폭력물 등은 물론이고 각종 악플의 문제로 야기된 피해사례들과 온라인을 이용한 각종 사기사건 등은 여전히 증가추세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 만을 이유로 명백한 허위사실의 유포까지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든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당연히 철폐되고 규제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준과 한계일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권리는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정권을 비판할 수 있다. 별다른 두려움 없이 정부정책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 국가와 독재 국가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의 대처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까. 이 물음에 서울중앙지검 담당 차장검사는 ‘왜 위축되냐.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공연히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일삼지 않는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은 위축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어떤 표현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에 무심코 한 말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는 일은 지금도 무수히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한 수사가 강화된다면, 일반 국민들은 그저 침묵하는 편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처벌될 수도 있다는 추상적 가능성 만으로 입을 다무는 것은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른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로 나타난다면 이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중요한 기본권인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앞으로 검찰의 명예훼손 전담팀과 충돌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아무리 정보통신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이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를 항상 감시하고 있다면('Somebody watching me!')"-.  과연 당신은 어떨 것인가?
 
1949년에 발표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가 있다. 오웰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소설 중의 하나다. 전체주의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 작품이다. 그가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인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창안했다. 빅브라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관찰자로서 그의 냉혹한 눈과 귀들 동원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듣는다.
 
오웰의 빅 브라더는 전체주의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기관이다. 그는 비밀스런 감시를 행하는 유령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불안을 살피는 정신이며, 당신을 고문실이나 수용소로 보내기 위하여 새벽 4시 정각에 집 문 앞에 서 있는 비밀경찰의 괴수로 나온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런던에 살고 있는 집권당의 하급 간부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조리 TV 스크린으로 감시당한다. 그가 어디를 가든 전지전능한 당수 빅 브라더는 그를 지켜본다. 당에서는 정치적 반란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모든 단어를 아예 언어에서 말살하는 대신 정치적으로 무해한 “뉴스피크(newspeak)”를 만들어낸다.
 
‘생각범죄(thoughtcrime/반동적인 생각을 하는 것)’ 또한 불법이다. 당에 유리하도록 역사를 조작하는 정부 부처인 ‘진실부’에서 일하는 윈스턴은 자유로운 사고, 섹스, 그리고 개인성에 대한 온갖 금지와 제한 때문에 좌절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법으로 금지된 일기장을 사고, 저녁마다 ‘무산자(無産者)’들이 사는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빈민가는 비교적 감시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당 동지인 줄리아와 불법적인 관계를 시작하지만, 당 간첩으로 붙잡힌다. 101호실에서 자신이 두려워했던 가장 끔찍한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공포에 질린 윈스턴은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풀려난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부서졌고, 당에 대한 충성심 만을 강요당한다.
 
핵(核)시대의 서막이자 텔레비전이 아직 문화의 주류가 되기 이전인 1949년, 오웰이 한 세대 앞이라고 예언한 TV 스크린에 의해 감시당하는 세계는 무시무시했다. 이 소설은 권력의 남용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던져줬다. 그리고 현대 TV 콘텐츠에 상당히 아이러니한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언어, 역사, 그리고 공포와 제어의 심리를 조작하는 권력에 대한 통찰을 해 준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슈들이 어쩌면 오웰이 이 작품을 쓴 시대보다 오늘날에 더 절실한 문제로 떠오른다는 점이다. 오웰은 이 소설을 쓰면서 1984년 무렵 자신의 글처럼 그런 일들이 실재할 것이라 믿었을까. 누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 무척 섬뜩하면서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누군가 지켜보는 세상,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거대한 감시국가를 생각하기 싫기 때문이다.
 
시점을 우리 현실로 돌려보자. 우리는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스스로 알려주지 않았어도 보험사 차량서비스나 견인차회사들이 내가 어디 있는 지를 알려고만 하면 곧바로 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나 하루종일 움직이는 동선이 어디든 맘만 먹으면 추적이 가능하다. 휴대폰에서부터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하면 하루동안의 생활궤적이 그대로 나온다.
 
전국 방방곡곡 수십만 대의 CCTV가 거미줄처럼 설치돼 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 덕분에 범죄율이 떨어지고 뺑소니사고의 경우는 거의 100% 해결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감시세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빅 브라더'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카드사에서는 고객의 정보유출로 엄청난 질타를 받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주민등록번호부터 주소, 이메일, 신용등급까지 몽땅 털린 끝에 발가벗겨져 거리에 서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결국 우리 현대인은 이제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감시의 꼬리는 길게 내려져 있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인 ‘21세기 빅 브라더'는 제도상 없으면서도 실생활에서 작동하는 묘한 '야누스의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매우 씁쓸하면서도 섬뜩한 기분이 든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검찰의 '사이버 검열' 발표 이후 뭔가 모르게 ‘사이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메신저는 사적이고 내밀한 대화를 하는 창구이다. 누군가 이것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누구나 불안감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당국이 허위사실의 유포를 막되, 국민들의 사이버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 땅에 헌법상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 없는가를 고민하며 연구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미 국내 메신저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다음카카오 측은 “카카오톡 사용자 정보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대화 보관 기관을 기존 5~7일에서 2~3일로 축소하겠다”고 서둘러 대응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잘 나가던 IT(정보기술) 산업에도 큰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도,감청이나 감시를 완화하고 철폐하는 추세다. 얼마 전 오마바 미국 대통령도 더 이상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를 도청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그런 일들이 버젓이 진행돼 왔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도 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이 다른 비밀문서에서 확인 된 바가 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본질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의 성격상 제한의 기준이나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위사실인 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부터 가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 또한 가벼운 농담이나 악의 없는 장난까지도 범죄로 취급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앞으로 허위사실의 유포를 이유로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연 허위사실인지 명확한 검증을 전제로 표현행위의 전후 맥락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규제의 내용과 방법 및 정도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변에 지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우리 사회에서 '빅 브라더'의 실체를 믿는가?”라고. 그랬더니 상당수 사람들로부터 “(나는) 믿는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1984'년 그 소설 속의 인간들의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2014년에 만난 '1984'!-. 바로 등 뒤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만 같다.
 
우리 정부가 소설 '1984'의 '빅브라더' 시대로 돌아간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 전부터 가까운 지인들이 카톡방 이용을 꺼리는 조짐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검찰의 사이버사찰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제약을 받은 것은 아닐까 싶다. 그들도 곧 해외 메신저로 갈아타고 거기에서 ’디지털 지진아‘인 필자와 사이버 대화를 하자고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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