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신퇴(功成身退)의 지혜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지혜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4.10.0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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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하영구 회장 "퇴임하고 도전해야"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세워서 이룬 뒤에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공을 이루고도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저 머무르지 않기에 공도 떠나지 않는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와 '공성명수신퇴' 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유방이 서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나라를 건국한 데에는 3명의 큰 참모가 있었다. 전쟁에 나가 싸우기만 하면 승리로 이끄는 한신(韓信), 지혜와 책략으로 완벽한 전략을 세운 정책 전문가 장량(張良), 후방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시에 보급물자를 조달하는 소하(蕭荷)가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로는 달랐다. 장량은 아무런 공을 주장하지 않고 낙향해 천수를 누렸다. 그러나 한신과 소하는 공을 누리려다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영구 씨티은행장은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은행권 최장수 CEO다. 2001년 한미은행장에 발탁된 이후 한미은행이 씨티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국내 은행권 CEO 중에서는 처음으로 은행장으로서 5번 연임했다.

그러 그가 현직 은행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쟁그룹인 KB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능력있는 경영인이라면 타 은행 행장이라도 공정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도 있지만 '국내 정서상 맞지 않는 행보'라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퇴임을 하고 도전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하 행장은 6일 직원메시지를 통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KB금융지주 회장 추천위가 후보에 올린 것은 2일 이지만 연휴여서 주주와 이사회·직원에게 뜻을 알릴 시간이 필요해 공식화가 늦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하 행장은 KB회장 도전의사를 밝히면서도 당락에 관계없이 퇴임하겠다는 점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이같은 행보에 NH농협금융 관계자는 "하 행장이 씨티은행에서 행장을 오래 했고 게다가 현직인데, 갑자기 KB금융 회장에 도전하는 것은 국내 정서상 맞지 않다"며 "KB금융 회장에 도전하려면 사표를 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도 "하 행장의 행보는 선장이 배를 버리고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우리나라 기업 문화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데, 하 행장의 도전은 이런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한 지점장은 "하 행장이 KB금융 회장에 도전했다 실패했을 때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하 행장이 KB금융 회장에 선출되지 못하면 결국 씨티은행 행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며 "하 행장은 KB금융 도전에 실패했을 때 씨티은행장의 남은 임기를 모두 채울 것인지도 확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행장의 임기는 오는 2016년 3월까지다.

물론 현직 행장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직 행장이 경쟁사 CEO에 도전하는 사례가 없긴 했지만, 현직이 아닌 금융 인사가 경쟁사 CEO로 옮겨가는 건 금융권에서 비일비재하다"며 "경영능력만 인정받는다면 현직 행장이라는 이유로 회장 후보 자격을 박탈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하 행장은 오랜기간 행장직에 재직하며 국내 은행권 사정에 정통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씨티그룹 본사 경영방침에 충실했다는 비판이 있다. 최근 외형과 실적이 크게 위축돼 조직과 경영을 정상화시켜야할 짐을 안고 있는 거대 그룹 수장으로 맞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공성신퇴는 정치권이나 관료 사회에서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공을 이루었다고 보상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공이 아니란 의미로 받아 들여 진다. 종종 관료사회에선 현직에서 퇴진한 후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기웃거리는 관료들을 많이 볼수 있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는 관료의 모습에서 종종 공성신퇴의 모습을 발견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선거가 끝난 후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공성신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이전투구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무릇 공인은 들어올 때와 물러갈  때와 잘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진퇴를 분명히 할 때 뒷모습이 아름답고 빛나는 법이다.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치고 이곳 저곳을 집적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동안의 명예로운 금융인 일생에 흠을 남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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