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분성 배씨(盆城裵氏)-71,268명
(105)분성 배씨(盆城裵氏)-71,268명
  • 정복규
  • 승인 2014.10.1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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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모든 배씨(裵氏)의 시조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하나인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지타공(只他公)이다. 그는 다른 5부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했다. 그 뒤 유리왕 9년에 배씨로 사성(賜姓)하게 되면서 배씨(경주배씨)가 시작된다.

배씨는 그 때 함께 성을 받은 경주이씨, 경주최씨, 경주설씨, 경주정씨, 경주손씨 등과 함께 오래된 성씨의 하나다. 그 뒤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경주 본을 중심으로 성주(성산), 분성(김해), 달성, 흥해 등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2000년 현재 ▲성주배씨가 90,239명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는 분성배씨로 71,268명이다. 그 다음 ▲달성배씨 61,104명 ▲성산배씨 36,164명 ▲흥해배씨 29,210명 ▲경주배씨 22,069명 순이다.

분성배씨(盆城裵氏)는 고려 창업의 일등원훈 배현경의 6세손인 배원룡(裵元龍)을 1세조로 받들고 있다.‘분성배씨대동보’에 의하면 그는 고려 때 가락군에 봉해진 배사혁(裵斯革)의 아들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공민왕때 병부상서 겸 도원수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분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분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분성배씨는 배원용의 증손자 대에서 4파로 갈라진다. 한편 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분성배씨를 김해배씨라고도 한다.

배원룡(裵元龍)의 장남 배서(裵署)는 고려조에서 감무어사와 전객령을 지냈으며, 손자 배단(裵端)은 평장사를 역임하여 세도가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배윤검(裵允儉)의 아들 배극부(裵克富)는 학문으로 명성을 떨쳐 도덕과 문장의 가통을 세웠다. 배상금(裵尙錦)의 장남인 배문보(裵文甫)는 중종 때 고성 군수를 지내고 청백리로 명성을 떨쳐 그가 죽자 왕이 제문을 내려 공적을 치하했다.

1462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배맹후는 사간원 정언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이조참의가 되어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아 왕으로부터 포상이 내려졌다. 그의 아우 배중후(裵仲厚)는 문장과 도학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배숙후(裵叔厚)는 연산군 때 이조정랑을 지냈고, 배계후(裵季厚)는 경주 판관과 칠원 현감을 거쳐 선산 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문무를 겸비한 배철중(裵鐵重)은 아산 현감을 거쳐 홍주 영장을 지냈고, 손가락을 잘라 모친의 병환에 수혈하여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병마단련사를 지낸 배담(裵湛)은 청백리로 명성을 떨쳤고 학행으로 좌찬성에 추증되었던 배영(裵渶)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광해군 때 병조참의를 지낸 배대유(裵大維)는 문장과 글씨로 명망이 높았다. 배응남(裵應男)은 임진왜란에 공을 세워 숙부 배원우(裵元佑)와 함께 하양사에 배향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배양호(裵養浩, 18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배석주(裵碩柱, 1855 乙卯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배정모(裵廷模, 18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28년(1891) 증광시 삼등(三等) 등 사마시 3명이 있다.

현대인물은 배정현(대법원장서리), 배영호(법무부장관), 배상욱(체신부장관), 배덕진(체신부장관), 배의환(한은총재, 주영대사), 배상명(상명여대이사장), 배철세(동아대부총장), 배병주(적십자병원장), 배무(이화여대 생물학과교수), 배종열(한양그룹회장), 배동조((주)한국통신기술사장), 배기은(동양나일론사장), 배영환(삼화교통사장), 배현규(한일투자금융회장), 배정도(육군소장), 배광석(육군소장), 배원식(육군소장), 배병로(육군소장), 배성동(국회의원), 배길기(서예가), 배좌식(부산가평국교장), 배염(동양화가), 배융(서양화가) 등이 있다. 육사 14기로 국회의원을 지낸 배명국은 배명인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친동생이다. 목수일로 문화재 지정을 받은 배희한은 고건축계의 1인자로 경회루 등 고궁건물의 수리 복원은 물론 진해의 호국사 등을 지었다. (무순, 전 현직 및 본관별 구분 안 됨)

항렬표는 24세 종(鍾) 용(鏞), 25세 한(漢) 순(淳), 26세 병(炳) 병(秉), 27세 렬(烈) 환(煥), 28세 재(在) 규(圭), 29세 용(鎔) 호(鎬), 30세 홍(洪) 문(汶), 31세 표(杓) 근(根), 32세 병(炳) 형(炯), 33세 배(培) 곤(坤), 34세 은(銀) 진(鎭), 35세 락(洛) 우(雨), 36세 상(相) 락(樂), 37 세 훈(薰) 섭(燮)이다. 주요파는 ▲구연공파 ▲진사공파 ▲목사공파 등이다.

본관 분성(盆城)은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가락국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梁山)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분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분성김씨(盆城金氏)와 분성배씨(盆城裵氏)가 있다. 분성배씨(盆城裵氏)의 집성촌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선창리, 경남 남해군 창선면 부윤리,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상촌리, 경남 산청군 생초면 구평리, 경남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경남 창녕군 도천면 덕곡리, 경남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경남 함안군 칠북면 가연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분성배씨는 1985년에 53,568명이다. 이 숫자는 분성배씨 김해관(金海貫) 12,936명과 분성배씨 금성관(金城貫) 40,632명이 합쳐진 숫자이다.(중앙일보 성씨의 고향 853페이지 게재)

여기서 분성배씨 김해관(金海貫)은 이해가 된다. 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으로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왜 금성관(金城貫)이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금성(金城)이라는 지명은 분성(盆城)이나 김해(金海)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에 분성배씨(盆城裵氏)는 총 22,564가구 71,26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이 때에는 분성배씨(盆城裵氏)와 김해배씨(金海裵氏)를 함께 묶어서 조사했다. 당시 조사 때에는‘금성배씨’가 별도로 조사됐으며 인구는 1,146명으로 나타났다. 금성의 한자 표기가 없어 1985년 당시 등장했던 분성배씨 금성관(金城貫)과의 관계는 알 수가 없다.

한편 2000년 당시 분성배씨(김해배씨 포함) 71,268명의 전국의 지역별 인구분포는 서울 8,225명, 부산 17,951명, 대구 5,502명, 인천 1,395명, 광주 424명, 대전 755명, 울산 3,293명, 경기 5,922명, 강원 549명, 충북 825명, 충남 716명, 전북 1,210명, 전남 847명, 경북 4,368명, 경남 19,020명, 제주 266명이다. 경남과 부산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다음 대구, 울산, 경북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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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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