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영월 신씨(寧越辛氏)-67,489명
(110)영월 신씨(寧越辛氏)-67,489명
  • 정복규
  • 승인 2014.10.1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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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辛氏)의 신(辛)은 < 매울 신 >이며 경주, 고산, 김해, 부안, 수주, 양산, 영광, 영산, 영월, 영주, 평창 등 11개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167,621명이다. 우리나라 모든 신씨(辛氏)의 시조는 신경(辛鏡)이다.

그는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 온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고려 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그 뒤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터를 잡았다. 신씨(辛氏)는 영월신씨와 영산신씨가 모두 합해 약 15만 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신씨(辛氏)는 9세손 때 영월(寧越)과 영산(靈山)으로 본관이 갈라진다. 영월은 강원도 영월군의 지명이고, 영산은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의 지명이다. 한글로는 동일한 영 자를 쓰지만 한자로도 다르다. 영월(寧越)의 영(寧)은 < 편안할 녕(寧) >이고, 영산의 영(靈)은 < 신령 령(靈) >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영월신씨 67,489명, 영산신씨 83,798명으로 영산신씨 가 더 많다. 한편 최근에 발견한 신경의 4세손인 신몽삼의 묘비에 "태사공영주신지묘"라고 되어 있어서 원래는‘영주신씨’였음을 알게 되었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때 신부(辛富)와 신순(辛珣) 등 충신이 있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신천도 빼어났다. 신천은 안향의 문인으로 사상 최초의 서원(書院)을 세웠으며 동국공맹(東國孔孟)의 학자 17인 중의 하나다. 수군절도사 신식, 병마절제사 신을화(辛乙和)도 후손이다.

신씨는 여말 풍운의 정치승려 신돈을 배출한다. 그는 공민왕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정치. 종교의 대권을 장악했다. 공민왕 15년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하여 자신이 판사에 취임해 문란한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농민의 권익옹호와 국가재정의 충실을 꾀했다. 그러나 끝내 권력 남용으로 인망을 잃고 역사에 부정적 인물로 기록된다.

조선조에 들어 신(辛)씨 인물로는 태종 때 지중추부사를 지낸 신균(辛均)과 정용호군(精勇護軍)으로 25차례나 왜구와 싸운 신유정(辛有定)이 있다.

세종 때 집현전학사에 등용된 신석조(辛碩祖)는‘세종실록’‘경국대전’ ‘의방유취’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신인손(辛引孫)은 사관(史官)으로 여러 대군(大君)들과 서사(書史)를 강론해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형조판서 예문관대제학을 지냈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신영희(辛永禧)는 김종직의 문인(文人)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남효온, 홍유손 등과 죽림의 벗이 되어 학문에 정진했다. 명종 때의 신륜(辛崙), 신응시(辛應時)와 선조 때의 신경진(辛慶晋), 광해군 때의 신광업(辛光業), 신경연(辛景衍) 등도 뛰어났다.

신계영은 외교관으로 뛰어난 솜씨를 보여 인조 2년 임란(壬亂)때 포로로 일본에 붙잡혀간 1백46명의 동포를 데려왔다. 그는 인조 17년 볼모로 잡혀갔던 세자를 맞으러 심양에 갔으며 효종 3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신태악(辛泰嶽)은 이승만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신공제(辛公濟)는 3 1운동 후 일경(日警)에 쫓겨 중국으로 망명했다. 신영락(辛泳洛)은 3.1운동 당시 경남 창녕에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유명한 목가시인 신석정은 1907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했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경을 연구한다. 1931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한다. 신석정은 당시‘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봄의 유혹’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그의 시풍은 잔잔하고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낸다.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영월신씨(寧越辛氏)는 조선시대에 신계거(문과(文科) 성종8년(1477)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신희계(辛喜季) : 문과(文科) 인조14년(163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신응시(辛應時, 1532 壬辰生) : 문과(文科) 명종14년(1559) 정시 병과(丙科), 신함(辛涵, 1800 庚申生) : 문과(文科) 순조27년(1827) 정시 병과(丙科), 신중거(1800 庚申生) : 문과(文科) 세조11년(1465) 춘당대시 정과(丁科), 신응시(辛應時, 1532 壬辰生) : 문과(文科) 명종21년(1566) 중시 병과(丙科), 신홍립(辛弘立, 1558 戊午生) : 문과(文科) 광해군4년(1612) 증광시 을과(乙科), 신성묵(辛成默, 1850 庚戌生) : 문과(文科) 고종27년(1890) 별시 을과(乙科), 신필형(辛必馨, 1645 乙酉生) : 문과(文科) 숙종1년(1675) 식년시 병과(丙科), 신경연(辛慶衍, 1570 庚午生) : 문과(文科) 광해군5년(1613) 증광시 을과(乙科) 등 모두 87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18명, 무과 12명, 사마시 51명, 의과 5명, 율과 1명이다.

현대 인물로는 신상학(국회의원), 심용훈(국회의원), 신석빈(국회의원), 신영주(국회의원), 신상우(국회의원), 신경식(국회의원), 신건(국회의원), 신광옥(부장검사), 신교준(변호사), 신성국(판사), 신석봉(마산크리스탈호텔사장), 신봉주(변호사), 신영무(변호사), 신재송(변호사), 진주근(변호사), 신형조(변호사), 신호양(변호사), 신기남(국회의원), 신기하(국회의원), 신도환(국회의원), 신봉승(극작가), 신격호(롯데그룹회장), 신용태(계명대부총장), 신홍기(한양대교수), 신순기(동아대부총장), 신민교(해양대교수), 신건식(부산MBC상무이사), 신민선(국회의원), 신병열(국회의원), 신재식(육군중장), 신일(경제학박사), 신남대(해군준장), 신상대(해군소장), 신용균(교육감), 신선열(부산동구청장), 신태곤(경제학박사, 부산대교수), 신흥일(부산수산대교수), 신병호(롯데제과고문), 신용해(종친회장), 신갑득(부산일신여객사장), 신춘호((주)농심대표이사), 신문석((주)농심부사장), 신영섭(대한잉크페인트제조(주)부사장), 신재기(대한수협중앙회전무), 신해성(한국후지칼라사장), 신건호(농수산부농지국장), 신화식(부산서구청장), 신상기(부산시건설국장), 신용옥(서예가), 신달수(국회의원)씨 등이 있다. (무순, 전 현직과 영산신씨-영월신씨 구분 안 됨)

본관 영월(寧越)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영월군 일대의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내생군(奈生郡)이라 불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내성군(奈城郡)으로 바꾸고, 자춘현(子春縣: 永春)·백오현(白烏縣: 平昌)·주천현(酒泉縣) 등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월로 개칭했고, 1018년(현종 9)에 원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영월군으로 승격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이 고장 청령포(淸怜浦)에 단종(端宗)이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한 곳이라 해서 노산군(魯山君)을 단종으로, 능을 장릉(莊陵)으로 추존함에 따라 영월군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영월군이 되었고, 1986년에는 강원도 영월군이 되었다. 1937년에 군내면이 영월면으로 개칭되었고, 1960년에는 읍으로 승격하였다.

주요파는 ▲부원군파 ▲판서공파 등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월신씨는 1985년에는 총 11,963가구 49,681명, 2000년에는 총 20,902가구 67,48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천여 가구, 1만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692명, 부산 2,708명, 대구 1,447명, 인천 1,599명, 경기 6,248명, 강원 10,419명, 충북 3,124명, 충남 1,900명, 전북 2,100명, 전남 1,892명, 경북 3,951명, 경남 1,543명, 제주 53명이다. 강원도에 많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5,085명, 부산 3,883명, 대구 2,145명, 인천 3,624명, 광주 1,200명, 대전 1,276명, 울산 1,835명, 경기 14,797명, 강원 9,486명, 충북 3,727명, 충남 1,474명, 전북 2,069명, 전남 1,104명, 경북 4,400명, 경남 1,252명, 제주 132명이다. 수도권과 강원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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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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