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연금' 시대의 도래
'자식연금' 시대의 도래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1.09 23:06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구나 늙으면 비육지탄(髀肉之嘆)..낀 세대들의 고뇌와 번민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빚진 아들은 내 아들..(중략)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군대에 가면 손님-장가가면 사돈이 된다..(중략)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중략)

얼마 전부터 시중에 유행하는 ‘자식타령’ 시리즈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부모의 노후 생활에 대해서 아들을 둔 엄마는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이집 저집 다니다가 길에서 사망하고, 딸 둘 가진 엄마는 해외여행하고, 딸 하나 가진 엄마는 딸집에서 설거지하느라 싱크대 앞에서 사망하고,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양로원에서 사망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 떠돌고 있다고 한다.
 
다소 웃기면서도 이런 얘기를 듣는 마음은 솔직히 좀 언짢다. 우리가 이런 세대에 살고 있는 ‘낀 세대’인 까닭이다. 요즘 무상급식, 무상보육 대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모두 자식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식을 낳아서 가르치고 키우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최소한 나서부터 25년을 투자해야 하고,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도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서 항상 노심초사한다, 자식들은 심심하면 목돈을 달라, 결혼 후엔 나 몰라라, 그리고는 때론 서로 안모시겠다고 배신을 한다. 살아가면서도 간헐적으로 용돈을 달라고 하고, 그러다가 정작 부모가 아프면 찬밥 대우를 한다, 나중에 부모가 죽을 때는 오직 눈물 한방울로 때우고.. 자식이 많을 수록 부담이 간다는 것이 요즘 노인들의 일상적인 넋두리이다.
 
자식이 부모의 집을 받는 대가로 생활비를 주면 증여세 면제 사유가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증여가 아닌 매매로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상속세를 면제받는 효과가 나온다. 지난 주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고영한)는 허모(49·여)씨가 성동세무서를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부모가 생활비를 받는 대가로 집을 물려줄 때 증여세 면제 사유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이나 세간에서 “자식연금, 자식보험보다 부동산 연금에 가입하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자식연금'은 법률용어도 아니고 대법원이 판시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앞으로 자식연금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쓰일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주택연금 대신 자식연금 계약을 맺고 머리를 맞댄 채 노후대책을 설계하게 될 지도 모른다.
 
비육지탄(髀肉之嘆)이란 옛 말이 있다.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을 비유한다. 원래 할 일이 없어 가만히 놀고 먹는 바람에 넓적다리에 살만 찌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劉備)가 한 말이다. 유비는 한때 조조(曹操)와 협력해 여포(呂布)를 하비(下邳)에서 격파하고 임시 수도였던 허창(許昌)으로 올라와서 조조의 주선으로 헌제(獻帝)를 배알하고 좌장군에 임명된다. 그러나 조조 밑에 있는 것이 싫어 허창을 탈출해 같은 황족인 형주의 유표에게 의지했다. 유비의 부하들은 이 땅을 은근히 넘보고 있었다.
 
유비가 형주(荊州) 땅 유표에게 의지하고 있을 때, 유표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변소에 다녀오다 넓적다리에 살이 붙은 것을 느끼고 크게 울다가 자리에 돌아온다. 유표가 낌새를 알고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나 몸이 말안장을 떠날 겨를이 없어 넓적다리 살이 붙은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넓적다리 안쪽에 살이 다시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세월은 달려가 머지않아 늙음이 닥쳐올 텐데 공도 일도 이룬 것이 없어 그래서 슬퍼했던 것입니다” 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결국 비육지탄은 능력을 발휘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육(髀肉)은 넓적다리 살을 말한다. 바쁘게 돌아다닐 일이 없어 가만히 놀고 먹어서 넓적다리에 살만 찐다고 한탄하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유비 만이 비육지탄의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을 지내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밟는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다가 마침내 저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자리에 있었거나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지냈더라도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하며 이승을 뜨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지난 8월 자살로 삶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의 마지막 작품인 웃음과 감동의 휴먼 드라마 ‘앵그리스트맨(angriest man)’을 보았다. 의사의 오진으로 90분이라는 시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조울증 환자 ‘헨리(로빈 윌리엄스)’가 남은 인생 최대의 과제인 진정한 화해와 용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슴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세상을 떠났지만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마지막 감동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 중 로빈 윌리엄스가 열연을 펼친 ‘헨리’는 마음 속에 분노가 가득한 인물로 언제나 가족과 주변에 괴팍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해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90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되면서, 그 동안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며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구한다. ‘헨리’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며 잊고 살았던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행복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준다. 특히, 죽음을 앞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을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의 관록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연기는 마치 실제로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듯한 감동을 던져준다.
 
‘세상에서 가장 부실한 보험은 자식 보험’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1950~19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의 봉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이다. 그래서 ‘낀 세대’라고 부른다. 자녀한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엄청난 데도 대학까지 나온 자식은 취직도 못하고 부모 집에서 더불어 사는 ‘캥거루족’이 적지 않다. 그러니 부모 본인의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꾼다.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는 대가로 생활비를 받는 ‘자식 연금’이 활성화한다면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금융기관을 찾아가야 하는 복잡한 주택연금보다 부모-자식 간 식탁계약으로 끝나는 자식연금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식연금을 인정했다는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이 땅의 수많은 부모자식 관계, 특히 나이든 부모세대들을 생각해 봤다. 전문 조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부터 독한 맘을 먹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우리 노년층의 70∼80%가 '은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의 '은퇴 리스크'인 자녀 교육비와 자녀 결혼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를 한다.
 
우리보다 먼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를 경험한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 가입 비율이 약 96%나 되지만 우리는 35%에 불과하다. 가입자의 평균 수령액은 일본이 160만원, 우리는 34만원이다. 부모는 자식의 교육과 결혼을 지원하느라 노후준비를 할 여유가 없지만 요즘 청년들은 대학졸업 후 취직이 어려워 은퇴한 부모를 부양하기는 커녕 자기 앞가림도 할 여유가 없다. 은퇴 후 주 수입원이 연금인 사람의 비율이 미국과 일본 등은 70∼80%인 반면 우리는 13%에 불과하다. 1980년에는 자식의 도움을 받아 산다는 응답이 72%였으나 지금은 30%로 줄었다.앞으로 10년쯤 지나면 1∼2%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수명이 길어지면 자식도 노인이 된다. 그러니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 집안에서 노인세대 간에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늙어서 자식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은퇴 전에 미리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고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이론 속에서나 존재하는 얘기일 뿐 현실은 다르다. 회사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데 자녀 키우며 어렵사리 생활하다 보면 은퇴준비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자녀 교육비와 자녀 결혼비용이 최대의 '은퇴 리스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후준비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녀를 위해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쏟아붓는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은퇴 리스크 관리법은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사교육비를 많이 들여서 자녀의 성적을 올려주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많은 급여를 받으며 부모를 부양하는 공식이 성립했지만, 이젠 이런 공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녀봐야 40대만 되면 직장에서 밀려나고 마는 탓이다.
 
앞으로는 공부해서 일하고 은퇴 후 다시 공부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순환적 인생의 시대'가 열린다.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이른바 '평생현역론'의 핵심이다. 은퇴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게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 뿐 만은 아니다. 가정에서 가장의 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일본에서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은퇴한 남편 중 가장 인기있는 남편은 '요리 잘하는 남편'이 아니고 '건강한 남편', '싹싹한 남편',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도 아니었다. 바로 '집에 없는 남편'이었다. 은퇴 후에도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생활력있는 남편을 아내가 원한다는 것이다.
 
오는 2060년이 지나면 1955년부터 시작된 베이버부머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고 다시 인구구조가 개선돼 나갈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필자와 같은 ‘낀 세대’들은 향후 40~50년이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유대인 속담에 ‘자식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자녀교육 방법과 홀로서기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언젠가 읽은 노자의 도덕경에는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태도를 애써 강조하는 말이 있다. 생이불유(生而不有,낳았지만 소유하지 않는다)-위이불시(爲而不恃,일을 성취하고도 겸손한다)-장이부재(長而不宰,가장이지만 군림하지 않는다)의 세 대목이다. 자식교육에 있어서 자식을 소유물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객체로 존중,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것을 뜻한다.
 
장강후랑 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빙생어수한우수(氷生於水寒于水),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고 했다. 양자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고, 얼음은 물에서 생긴 것이나 물보다 더 차고, 푸른 빛은 남풀(쪽풀)에서 나왔지만 남색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새로운 세대(세력)가 나타나서 기존의 질서를 대신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이며, 만고의 진리이다. 자식연금을 타서 먹고사는 세상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한가닥 연민의 정과 함께 이 시대의 고뇌와 번민을 읽는 것만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