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부안 임씨(扶安林氏)-63,589명
(116)부안 임씨(扶安林氏)-63,589명
  • 정복규
  • 승인 2014.11.17 00:18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 임계미(林季美)는 고려 현종 때 평장사 금자광록대부로 있다가 왕으로부터 조그만 혐의를 받아 목숨을 빼앗으려는 계략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핑계삼아 배에 탔던 임계미 등 세 사람은 돌이키려는 왕명도 아랑곳 하지 않고 풍랑에 휘말려 고초를 겪으면서 지금의 전북 부안군 보안면 포구에 닿아 상륙하게 되었다. 그 후에 왕의 오해가 풀려 보안백(保安伯)에 봉해지고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부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보안은 부안군 보안면의 지명이다. 그래서 부안임씨는 보안임씨라고도 한다.

2세 임원(林元)은 고려 문종 때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 임숙은 고려 때 좌리공신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임희재는 고려 때 제주 안무사를 지냈다. 그 뒤 손자 임창무가 상서를 지내는 등 자손들이 계속 출세하면서 가문을 중흥시켰다.

임언(林彦)은 고려 예종조에 예부시랑 우간의대부로서 윤관을 따라 여진정벌에 참여했으며 후에 대사성 찬성사로 치사하였다. 임중간은 광평낭중을 역임했으며 여진족이 정주(정평)에 침입했을 때 이를 토벌하였다.

고려 때 임종비, 임민비, 임광비 3형제는 모두 옥당관을 거쳤다. 서하 임춘은 의종 때 문명이 높아 이인로, 오세재 등과 교류하였다. 그러나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화를 피하기 위해 예천에 가서 살았으며‘서하선생집’6권을남겼다.

밀직공파의 파조가 되는 임대광은 공민왕 때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관직은 밀직사에 이르렀다. 전서공파의 파조 문희공 임난수는 가선대부행공조전서에 이르렀고, 고려 말 탐라(제주) 정벌에 공을 세웠다. 고려가 망하자 공주 삼기촌(지금의 연기군 남면)에 은거하여 후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사직공파의 파조인 임서는 전서공의 둘째 아들이며 공민왕의 부마였다. 관직은 충의교위, 좌군사직에 이르렀고 아버지를 따라 은거하였다. 조선 태조가 예조판서를 제수하면서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수절하며 일세를 마쳤다. 그 동생인 임흥은 위의공파의 파조가 된다. 고려 때의 관직이 위의장군 등에 이르렀으나 아버지와 함께 은거하였다. 조선 개국 후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의 4대에 걸쳐 관직에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부안임씨는 고려 때 대표적인 거족이었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는 문과 급제자를 6명밖에 배출하지 않을 만큼 벼슬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조선 개국의 역성혁명 때 전서공 임난수를 중심으로 그 앞뒤의 자손들이 한결같이 고려조에 대한 절의에 충실함으로써 관직으로의 현달은 보지 못했다. 역사의 전환기에 이처럼 절의에 충실했던 가문도 드물 것이다.

현대인물은 임원수(동아건설산업사장), 임헌도(문학박사,공주사대대학원장), 임헌하(기민학원이사장), 임성기(한미약품사장), 임병균(경제학박사,동아대교수), 임헌표(육군중장), 임태수(신라교역사장), 임길수(건설세무공무원), 임만호(낙안향교유도회장), 임노춘(대림상사사장), 임병균(경영학박사,동아대교수), 임성균(나도금속사장), 임헌영(재청(在淸)화수회장), 임춘진(세림상사회장), 임완수(고고학자), 임문철(족보연구회장), 임한철(재경화수회명예회장), 임용택(도유사(都有司)), 임한열(우진실업대표), 임봉근(대신정미소사장), 임인기(김포종친회장), 임남진(재경화수회장), 임영방(치안본부경감), 임용재(세브란스병원의사), 임용수(우림중기사장), 임영철(재경화수회부회장), 임용성(김포종친회고문), 임한기(재경화수회고문), 임규준(매일경제신문 부국장)씨 등이 있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한편 지난 1989년 당시 부안임씨 종친회 임원은 다음과 같다. 고문에 임봉수, 임노춘, 임용택, 회장에 임헌하, 부회장에 임대철, 임만호, 임인기, 임윤철, 임남진 씨 등이다. 종친회 연락 사무실은 대전에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임원배(林原培, 1806 丙寅生) : 문과(文科) 순조27년(1827)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세필(林世弼, 1664 甲辰生) : 문과(文科) 숙종23년(1697) 정시 병과(丙科), 임회(1664 甲辰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4명이다. 문과 6명, 무과 11명, 사마시 23명, 역과 1명, 의과 3명 등이다.

본관 부안은 전라북도 부안군 일원의 옛 지명이다. 마한의 지반국(支半國)이 있던 지역으로 백제 때에는 개화현(皆火縣) 또는 계발현(戒發縣)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부령현(扶寧縣)으로 이름을 바꾸어 고부군(古阜郡: 정읍시 고부면 일대)의 영현을 삼았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고, 보안현(保安縣) 감무도 겸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 초까지 부령현과 여러 차례 합병과 분리를 반복해 오다가 1416년(태종 16)에 보안(保安)과 부령현(扶寧縣)을 부안현(扶安縣)으로 병합하였다. 1943년에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개칭, 승격되었다.

부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부안김씨(扶安金氏), 부안박씨(扶安朴氏), 부안신씨(扶安辛氏), 부안이씨(扶安李氏), 부안임씨(扶安林氏), 부안장씨(扶安張氏), 부안전씨(扶安全氏), 부안최씨(扶安崔氏), 부안한씨(扶安韓氏), 부안황씨(扶安黃氏) 등이 있다. 또한 보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보안호씨(保安扈氏), 부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부령감씨(扶寧甘氏), 부령손씨(扶寧孫氏) 등이 있다.

주요파는 밀직공파, 전서공파(부사공파, 평해공파, 진사공파, 감찰공파, 주부공파, 사직공파, 위의공파 위의공파, 판사공파) 등이 있다. 판사공파는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에 많이 살고 있으며 상주파는 상주, 영동, 옥천에, 집의공파는 충북 괴산군에, 정원공파는 전북 김제와 전남 벌교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감정공파는 경기도 김포군 통진지방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전서공파 후손들은 충남 연기군에 많이 살고 있다. 연기군 일대는 부안임씨의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1930년경 충남 연기군 남면, 충남 연기군 동면, 충남 연기군 금남면, 충북 청원군, 충북 진천군, 충북 보은군, 전북 부안군 보안면, 전남 고흥군 포두면, 전남 고흥군 과역면, 전남 보성군 벌교읍, 전남 영광군 군서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1980년에 와서도 이들 지역에 많은 자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안임씨는 1985년에는 총 11,543가구 48,043명, 2000년에는 총 19,537가구 63,58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8천여 가구, 1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928명, 부산 908명, 대구 477명, 인천 1,888명, 경기 5,574명, 강원 620명, 충북 4,919명, 충남 16,351명, 전북 1,246명, 전남 1,798명, 경북 749명, 경남 548명, 제주 36명이다. 충남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4,576명, 부산 1,219명, 대구 679명, 인천 3,848명, 광주 705명, 대전 8,524명, 울산 448명, 경기 12,650명, 강원 746명, 충북 5,957명, 충남 9,499명, 전북 1,433명, 전남 1,432명, 경북 1,113명, 경남 625명, 제주 13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대전과 충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