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전주 류씨(全州柳氏)-61,650명
(118)전주 류씨(全州柳氏)-61,650명
  • 정복규
  • 승인 2014.11.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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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류습(柳濕)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그는 조선 태종 때 원종공신이 된다. 1414년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좌군도절제사로서 대마도 정벌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묘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분토동에 있다. 부인‘삼한국대부인최씨’의 묘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유일여자고등학교 뒤편 시사재(건지산) 앞에 있다. 전주류씨의 시조 류습(柳濕)은 고흥류씨(高興柳氏) 후손인 류습(柳濕.1367∼1439)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한자 이름이 같고,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묘도 전북 완주군 고산면과 완주군 비봉면에 각각 있어 매우 혼동하기 쉽다.

한편 전주류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류습(柳濕.장령공파), 류혼(柳渾.충숙공파), 류지(柳池.현감공파) 등 시조를 달리하면서 파에 따라 시조를 달리한다. 만성보 등에는 완산백 류습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류혼, 류 지를 시조로 하는 파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류씨 시조이자 장령공파(掌令公派)의 파조인 류습(柳濕)은 극강(판서), 극서(직제학), 극수(판서), 극제(판관), 극거(판서) 등 5남1녀를 두었다.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에 추증되고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졌다. 완산은 전주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둘째 아들 류극서는 고려조에서 문과에 급제하고 중현대부로 보문각직제학과 지제교를 지냈다. 류극서의 아들 류빈과 손자 류의손도 크게 출세하면서 명문의 위치에 올랐다. 조선 개국공신 심효생은 류습의 사위이다.

류의손(1398∼1450)은 시조 류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류극서이고, 아버지는 직제학 류빈이다. 감찰·수찬을 역임하고 직제학에 올랐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전주 황방산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아우 류신손은 참판을, 류말손은 순창군수를 거쳐 집의를 지냈다.

류헌은 연산군 때 삼사(三司)의 벼슬에 있으면서 난정을 극간한 만언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류영경은 선조 때 재상에 오른 인물이다.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 했으나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이미첨 등 대북 일파의 탄핵을 받고 유배된 뒤 사사된다.

수곡파의 파조 류윤선(1500∼1557)은 시조 류습의 둘째 아들인 류극서의 후손이다. 수곡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세칭 무실마을을 가리킨다. 류윤선의 장남인 류성(柳城)이 김진(의성김씨)의 사위가 됨으로써 안동과 인연을 맺고 무실에 정착했다. 류성은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28세에 요절한다. 두 아들인 류복기와 류복립 형제는 외할아버지 김진과 외숙부인 김성일이 데려다 지극 정성으로 가르쳤다. 그 뒤 영남에서 이름난 문중이 되었다. 수곡파는 수곡(무실), 박곡(박실), 대평(한들), 삼산, 마령(마재), 광평(게실), 고천(고래골) 등에서 살아왔다. 1984년 임하댐이 건설되기까지 400여 년 간 집성촌을 이루었다. 류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고 있던 외삼촌 김성일(경상우도관찰사)의 휘하에서 싸우다 순절한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전주류씨는 대개 류복립을 파조로 하는 묵계공파 후손들이다.‘반쟁이 류씨’로 알려진 후손들은 용인시 양지면 송문리 반쟁이를 중심으로 처인구 남동, 마평동, 운학동에 집성촌을 이룬다.

현대인물은 류영(시인,영문학자), 류원식(육군준장,국가재건최고회의 재경분과위원장), 류혁인(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류종탁(농수산부제2차관보), 류종근(산림청임업연수원장), 류상희(통일원남북대화사무국 연락부장), 류영번(총무처행정조사연구실장), 류하성(포항시건설국장), 류영술(한국에너지관리공단 기자재부장), 류기혁(세무서장), 류상번(문교부행정감사과장), 류달훈(울산MBC방송국사장), 류정기(충남대교수), 류세희(한양대교수), 류탁일(부산대교수), 류기룡(경북대교수), 류점기(성균관대교수), 류형동(경희대교수), 류안진(서울대교수,문학박사), 류승번(국제라온스클럽부회장), 류석근(신성화학공업대표이사), 류동천(서울제일상호신용금고대표이사), 류능희((주)포철이사), 류영석(류영석의원장), 류점숙(영남대교수), 류항기(안동도산중교장), 류직기(김천여중교장), 류은학(서울일신병원장), 류철희(제주도부지사), 류치송(국회의원), 류청(국회의원,학교법인시사학원 초대이사장), 류택희(과천시한일여고교장), 류평수(대한체육회전주사무국장), 류훈근(서울MBC제작국장), 류정옥(전주유일여고이사장), 류장옥(시사학원이사), 류기정(국회의원,삼화인쇄사장), 류경희(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유일여고서무과장), 류충성(유성건설(주)사장), 류삼득(유일여고교장직무대리), 류기완(유일여고교장), 류민준(군산해운항만청장), 류찬수(법주사주지), 류성근(전북대교수), 류상수(전북대교수), 류연옥(전주근영여고교감), 류기양(강남성심병원소아과장), 류영희(영신건재약방사장), 류한영(교수), 류한종(서울지검마약과장), 류관우(경북대교수), 류창훈(안동성희여고교감), 류상기(안동지양초교장), 류동성(안동북후초교장), 류세영(안동임동초교장), 류춘택(전라일보사장), 류동성(전라일보 편집국장), 류광찬(전주교대 총장), 류문희(전북대교수)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人변) 식(植), 32世 영(泳) 희(希), 33世 식(植) 수(秀) 경(璟), 34世 희(熙) 종(鍾), 35世 규(奎) 기(基) 수(洙), 36世 종(鍾) 석(錫) 병(柄), 37世 태(泰) 한(漢) 희(熹), 38世 목(木) 상(相) 효(孝), 39世 열(烈) 영(榮) 호(鎬), 40世 재(在) 재(載) 영(永), 41世 용(鎔) 종(鍾)동(東), 42世 승(承) 순(淳) 형(炯), 43世 표(杓) 병(秉) 채(埰), 44世 형(炯) 섭(燮) 현(鉉), 45世 기(基) 원(遠)이다.

본관 전주는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이 무주(武州:光州.광주)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전주 본관 성씨는 강(姜), 견(甄), 고(高), 공(孔), 권(權), 김(金), 노(盧), 류(柳), 박(朴), 변(邊), 서(徐), 성(成), 송(宋), 신(申), 심(沈), 양(梁), 애(艾), 연(連), 오(吳), 운(芸), 원(元), 유(劉), 윤(尹), 이(李), 임(林), 장(張), 전(全), 전(田), 정(鄭), 조(趙), 주(朱), 최(崔), 추(秋), 하(河), 한(韓), 호(扈), 홍(洪), 황(黃) 등이다.

전주류씨는 일찍이 본관인 전주에 터를 잡았으며 점차 인근으로 터를 뻗었다. 지금도 전주와 완주, 김제 일원이 집성촌이다. 그밖에 집성촌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충남 서천군 한산면 단상리,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경북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경북 안동시 임동면 갈전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366명이 있다. 문과 100명, 무과 17명, 사마시 247명, 의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류씨는 1985년에는 총 11,365가구 47,383명, 2000년에는 총 19,008가구 61,6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8천여 가구, 1만4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3,077명, 부산 1,893명, 대구 1,640명, 인천 1,471명, 경기 7,243명, 강원 1,635명, 충북 1,361명, 충남 2,101명, 전북 10,847명, 전남 870명, 경북 3,865명, 경남 1,348명, 제주 32명이다. 전북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4,188명, 부산 2,410명, 대구 2,419명, 인천 3,816명, 광주 381명, 대전 1,364명, 울산 1,012명, 경기 14,041명, 강원 1,766명, 충북 1,686명, 충남 1,750명, 전북 11,162명, 전남 836명, 경북 3,393명, 경남 1,327명, 제주 99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전북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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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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