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장흥 고씨(長興高氏)-61,626명
(119)장흥 고씨(長興高氏)-61,626명
  • 정복규
  • 승인 2014.11.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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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高氏)의 고(高)는 < 높을 고 >이다. 강릉 강화 개성 경주 고령 고봉 고성 고창 고흥 광녕 광명 광약 광영 광주 김해 김화 남양 남해 담양 대전 마재 밀양 상당 상주 안동 양주 연안 연주 영월 영천 옥구 용담 의령 임실 장계 장성 장안 장택 장흥 전주 제주 조치원 진주 창평 청주 충주 토산 평산 해주 홍성 횡성 등 51개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435,839명이다.

시조 고을나(高乙那)는 널리 알려진 삼성혈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고씨는 모두 탐라국 고을나왕의 후손으로 한집안 한 핏줄을 자랑한다. 고씨를 세분하면 성주공파, 전서공파, 영곡공파, 문충공파, 장흥백파, 화전군파, 문정공파, 상당군파, 양경공파 등 아홉 개의 종파가 있다.

그러나 모두 고을나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고씨끼리는 종씨라고 하지 않고 일가라고 부른다. 고씨는 현재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제주도에는 고씨종묘(高氏宗廟)가 있어 매년 4월이면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씨들이 모여와 제향을 올린다.

장흥고씨(長興高氏)의 파조 고중연은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에 홍건적이 2차 침입하면서 개경이 함락되자 왕을 호종하여 복주(福州:지금의 안동)로 피난했다. 그 뒤 장흥백(長興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했다.

조선조의 인물은 임진왜란 때 3부자가 의병을 일으켜 순국한 제봉(霽峰)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종후, 고인후다. 고경명은 동래부사로 있다가 귀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전사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였다. 둘째 아들 고인후도 함께 순절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전 전남 광산군 대촌면의 압촌리 마을)에는 오늘날에도 장흥고씨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은 고경명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처음으로 터를 잡은 사람은 고경명의 증조인 고자검이다. 고경명의 다섯 아들 가운데 장남 고종후를 비롯 고순후, 고인후, 고용후의 후예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고종후의 동생인 고인후의 후예가 옮겨간 전남 담양군 창평리에도 후손들이 많다.

장흥고씨(長興高氏)는 조선시대에 고경명(高敬命, 1533 癸巳生) : 문과(文科) 명종13년(155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고종후(高從厚, 1554 甲寅生) : 문과(文科) 선조10년(1577) 별시 병과(丙科), 고맹영(高孟英, 1502 壬戌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고운(高雲, 1502 壬戌生) : 문과(文科) 중종14년(1519) 별시 병과(丙科), 고정주(高鼎柱, 1863 癸亥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증광시 병과(丙科), 고습(高習, 1863 癸亥生) : 문과(文科) 중종19년(1524) 별시 병과(丙科), 고경조(高敬祖, 1528 戊子生) : 문과(文科) 명종16년(1561) 식년시 을과(乙科), 고용후(高用厚, 1577 丁丑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증광시 을과(乙科), 고응관(高應觀, 1743 癸亥生) : 문과(文科) 정조7년(1783) 식년시 병과(丙科), 고필상(高必相, 1854 甲寅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갑과(甲科) 등 모두 5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6명, 사마시 41명이다.

현대 인물은 고희동(화가), 고재욱(동아일보회장), 고한승(아동문학가), 고광만(문교부장관), 고재필(보사부장관), 고원증(법무부장관), 고재일(건설부장관), 고건(국무총리), 고병익(서울대 총장), 고범서(숭전대총장), 고형곤(전북대총장), 고병간(연세대총장), 고황경(서울여대학장), 고재청(국회부의장), 고정훈(국회의원), 고판남(국회의원), 고귀남(국회의원), 고병현(국회의원), 고재호(대법관), 고영구(변호사), 고정권(변호사), 고광우(변호사), 고종석(장군), 고영희(장군), 고준식(포항제철사장), 고광표(대창운수회장), 고판남(한국합판회장), 고영복(서울대교수), 고승제(한양대교수), 고광도(서울대의대교수), 고정훈(천도교교령), 고은(시인), 고상돈(산악인), 고광직(전북은행장), 고흥문(국회의원), 고재석(대법관), 고담룡(국회의원), 고한준(국회의원), 고원준(국회의원), 고재일(건설부장관), 고범준(교수), 고승제(경제학박사), 고광도(장군), 고경영(장군), 고광도(의학박사), 고지형(독립운동가), 고창식(공학박사), 고창현(교수), 고한실(변호사), 고석태(약학박사), 고광삼(교수), 고재홍(교수), 고양곤(교수), 고옥현(교수), 고병규(교수), 고현기(약학박사), 고광준(서예가), 고봉주(서예가), 고동주(서예가), 고임순(서예가), 고명창(장군), 고병호(보학자), 고명균(청산학원장), 고희일(보학자), 고재혁(변호사), 고광림(법학박사), 고광만(문학박사), 고광우(변호사), 고광출(농학박사), 고길훈(장군), 고극훈(의학박사), 고근익(의학박사), 고광표(대창그룹회장), 고두동(시인), 고문룡(의학박사), 고문석(교수), 고병려(교수), 고병국(법학박사), 고태준(경제학박사), 고상겸(동아생명사장), 고석윤(변호사), 고석구(교수), 고연규(교수), 고영수(약학박사), 고영준(변호사), 고옥남(교수), 고광석(이학박사), 고인덕(독립운동가), 고인철(교수), 고일섭(교수), 고재량(변호사), 고중석(고법판사), 고효국(한일식품공업 사장), 고경희(동현치과의원장), 고광준(전북대치과대학교수), 고기종(치과의원장), 고우영(남성중 교감), 고성호(통일교육원 교수), 고수환(무형문화재), 고재섭(슬로푸드아카데미 교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및 본관 구분 안 됨)

집성촌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전남 장성군 삼계면 능성리, 전남 신안군 임자면 도찬리,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전북 군산시 일원 등이다.

본관 장흥(長興)은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오아(烏兒)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현종 때에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1265년(원종 6)에 다시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장흥부로 강등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수령현의 중령산에 성을 쌓고 중심지로 했으며, 1413년(태종 13)에 장흥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52년(효종 3) 장흥현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장흥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웅치(熊峙)·회천(會泉) 2개면이 보성군에 이관되었으며, 1936년 부동면(府東面)을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南上)·남하(南下) 양면을 용산면(蓉山面)으로, 고읍면(古邑面)을 관산면(冠山面)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하였고, 1980년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하였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장흥고씨는 1985년에는 총 9,877가구 41,641명, 2000년에는 총 19,316가구 61,62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여 가구, 2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0,049명, 부산 2,597명, 대구 913명, 인천 783명, 경기 2,469명, 강원 504명, 충북 258명, 충남 1,092명, 전북 3,937명, 전남 14,227명, 경북 816명, 경남 3,891명, 제주 105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3,737명, 부산 3,499명, 대구 1,215명, 인천 2,110명, 광주 9,933명, 대전 910명, 울산 632명, 경기 9,163명, 강원 589명, 충북 488명, 충남 1,140명, 전북 3,908명, 전남 8,662명, 경북 1,043명, 경남 4,464명, 제주 133명이다. 서울, 광주, 경기, 전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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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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