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든 배씨의 원조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한 사람인 지타공 이다. 그는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한다. 그 공으로 유리왕 때 지타공은 배씨 성을 하사받는다. 그 뒤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을 시조로 한 경주배씨는 자손이 번창 하면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배씨는 59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372,064명이다. 이 가운데 성주배씨 90,239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 분성(김해)배씨 71,268명, 달성배씨 61,104명, 성산배씨 36,164명, 흥해배씨 29,210명, 경주배씨 22,069명 순으로 많다.
달성배씨의 시조 배운룡(裵雲龍)은 시조 배현경의 현손(손자의 손자) 배사혁의 셋째 아들이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조에서 평장사를 역임한 시조의 아들 배숙 과 역시 평장사를 지낸 증손 배문진이 있다.
배운룡의 현손 배손적은 고려 충렬왕 때 공을 세워 대호군에 추증되었다. 밀직부사 배정지는 1318년 (충숙왕)5년) 탐라에서 김 성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존무사가 되어 이를 평정하고 돌아와 상호군에 오른다.
그의 아들 배성경, 배천경, 배함경 등 3형제가 뛰어났다. 둘째 아들 배천경은 공민왕 때 공신이 되어 달성군에 봉해졌으며, 검교장군에 오른 배함경과 함께 가문의 명성을 날렸다.
배두유는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환찰방을 지냈다. 단종 재위 때 수양대군의 세력이 커지자 정변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다.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능주의 대곡에 은거했다.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두문불출하고 일생을 마쳤다. 훗날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배두유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배효명은 1453년(단종1) 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좌랑을 역임했다. 단종이 손위하자 벼슬을 사퇴하고 은거했다. 세조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기자 않았다. 통정대부, 예조참의에 추증되었다.
배맹달은 1467년(세조13) 이시애의 난 때 충청절도사 김국광, 양성지 등과 함께 이를 진압했다. 그 뒤 정헌대부, 병조판서에 특진되었으며 곤산군(昆山君)에 봉해졌다. 배사유도 배맹달과 함께 이시애의 난에 출전하여 공을 세운 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한 배승무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김원일, 고종후 등과 함께 진양에서 왜구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배민홍(전북은행장), 배병휴(매일경제신문편집부국장), 배정석(광주소년원장), 배선홍(동산유지공업(주)대표이사), 배진성(동아투자금융(주)상무이사), 배호원(체신부기획관리실장), 배규성(농지개량조합연합회장), 배건섭(감사원대변인), 배순훈(대우전자사장), 배성순(농협중앙회이사), 배학철(작가), 배갑덕(도남모방공업(주)사장), 배완수(남천병원장), 배석구(의학박사), 배윤재(동아간설전무이사), 배경조(문화철물(주)사장), 배경병(전주종친회장), 배준호(유니온가스(주)사장), 배명창(부산적십자사무국장), 배철환(서강산업(주)사장), 배강흔(의학박사), 배금윤(주일영사), 배기문(경제기획원기획관리실장), 배기태(성균관대교수), 배기형(건축가), 배기훈(부산수산대교수), 배광호(부산지방해운항만청장), 배길도(국회의원), 배대한(농학박사), 배달이(삼성운수사장), 배동조(체신부공무원교육원장), 배동환(수산청국장), 배만규(의학박사), 배병근(변호사), 배숙(국세청직세국장)씨 등이 있다. (무순, 본관 및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달성(達城)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별호로 삼한시대에는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렀다. 6세기 경에는 신라에 귀속되었다.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초기에 위화군(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일대)과 달구화현(달구벌)으로 나뉘어 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위화군은 대구현(大丘縣)으로, 다사지현은 하빈현(河濱縣),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 추량화현은 현효현(玄驍縣), 치성화현은 해안현(海安縣)으로 각각 바뀌었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영조 때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변경하였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대구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대구부의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이 대구부로 독립하고 옛 대구부의 일부와 현풍군의 일부가 통폐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1938년 달성군의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고,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편되었다. 1981년에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달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달성구씨(達城具氏), 달성김씨(達城金氏), 달성배씨(達城裵氏), 달성서씨(達城徐氏), 달성성씨(達城成氏), 달성손씨(達城孫氏), 달성수씨(達城洙氏), 달성우씨(達城禹氏), 달성은씨(達城殷氏), 달성정씨(達城丁氏), 달성최씨(達城崔氏), 달성하씨(達城夏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전북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전북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광주광역시 광산구 황룡동, 전남 무안군 청계면 청천리, 전남 무안군 청계면 태봉리, 경북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전남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등이다.
과거 급제자는 배상선(裵相善, 1841 辛丑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3년(1876) 식년시 삼등(三等)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달성배씨는 1985년에는 총 9,777가구 41,268명, 2000년에는 총 18,831가구 61,10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8천여 가구, 2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9,032명, 부산 3,073명, 대구 5,624명, 인천 885명, 경기 2,909명, 강원 600명, 충북 245명, 충남 1,056명, 전북 2,960명, 전남 8,567명, 경북 2,908명, 경남 3,305명, 제주 103명이다. 전남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2,825명, 부산 4,006명, 대구 7,207명, 인천 2,239명, 광주 5,268명, 대전 929명, 울산 939명, 경기 9,046명, 강원 732명, 충북 470명, 충남 945명, 전북 2,939명, 전남 6,069명, 경북 3,371명, 경남 3,857명, 제주 262명이다. 서울, 경기, 전남, 광주, 대구, 경북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