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파파'와 조현아 파동
'헬리콥터 파파'와 조현아 파동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12.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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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비뚫어진 인성..비정상적 기업문화 반성해야

 
해방 후 한국 사회에서는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머니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른바 ‘치맛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게 된 배경에는 이런 교육열이 뒷받침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과도한 사교육과 과잉보호가 결국 ‘마마보이’ ‘마마걸’들을 양산했다는 반성론이 일고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고학력 여성들이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면서 이제는 오히려 해악과 부작용이 심각해졌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돈이 없으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유명 사립유치원은 물론 아예 사교육 대열에 설 수도 없을 정도로 사회적 위화감과 계층간 갈등, 나아가 이에 따른 각종 경제, 사회적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탓이다,.
 
미국에서도 과잉 교육열에 따른 부작용이 있어 왔다. 원래 부모가 자녀 주위를 빙빙 돈다는 뜻의 '헬리콥터 맘'이라는 단어가 먼저 만들어진 곳은 미국이다. 그런데 헬리콥터 맘의 극단적 사례가 요즘에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눈애 띈다. 놀이방-유치원-학교-학원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자녀들이 성장한 뒤 대학과 회사에서도 이어진다. 치열한 정보전과 강력한 통제능력을 바탕으로 아이의 명문대 입학 이라는 왕관을 머리에 쓴 이른바 '성공한' 엄마들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수강신청, 시험, 학점관리 일체를 자임한다고 한다.
 
요즘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가 대학 들어갔다고 엄마가 손 놨다가는 4년 학점 다 망친다'는 격언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취업지망생이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인 S전자 입사시험 면접고사장에서 “입사 후 어느 직종을 선택할 것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을 받고 “잠깐 만요. 잠시 엄마한테 물어보고 답변드릴께요”라고 했다는 엉뚱한 답변은 지금도 취업가에서 유명한 실화로 전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졸업 전후로도 이어진다. 대학 졸업 즈음부터는 '헬리콥터 파파'가 등장한다.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인턴십 자리, 괜찮은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최소한 서류전형 통과 까지는 담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로부터 제대로 된 아빠 대접을 받는다. 요즘은 신입사원을 뽑으면 할머니가 새벽부터 사무실에 나타나 부서 책상 청소를 다 해준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아주 드물지는 않다.
 
이른바 미국에서 ‘땅콩 회항’ 사건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조 회장은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조현아의 아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번 바란다”고 말했다.
 
국적 항공사인 대항항공 회장이 딸이 친 ‘사고’로 대 국민 사과를 하며 여섯 번이나 머리를 숙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 회장은 실추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물론 걱정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걱정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재벌총수가 머리를 숙이는 것은 웬만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내심은 재벌총수로서보다도 아버지로서의 부성애가 먼저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조 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헬리콥터 파파가 아닐 수 없다. 곤경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서 재벌회장이라는 체면이고 뭐고를 따지지 않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까닭이다. 현재로선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황’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날 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쫒겨난 사무장이 조현아 당시 부사장으로부터 폭언은 물론, 폭행까지 당했고 회사 측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털어놓는 등 파문이 여전하다.
 
이번 파문이 해당 인사들의 거듭된 사과에도 좀체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가진 자’ 즉, 재벌에 대한 평소 반감과 비우호적인 정서가 작용하나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불거졌던 재벌 2·3세들의 일탈행위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수퍼 갑’으로서 군림하고 횡포를 부리는 행태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런 재벌가의 일탈행위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야구방방이로 사람을 때리고 돈을 주고 처리한 ‘맷값 폭행’사건에 이어 그랜저를 몰던 중 앞서가던 소형차 프라이드 탑승자 2명을 “건방지다”며 벽돌로 집단 폭행한 일도 있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아들이 주점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당하자 가해자를 찾아가 보복폭행을 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행태가 이번에 국민적 조롱과 분노를 부른 것은 재벌오너 가족들이 기업을 사유물로 생각하고 종업원을 머슴처럼 부리고 있음이 생생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그를 보면서 문득 프랑스대혁명 시대에 참수형을 당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가 생각이 났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당시 남겼다고 사람들 입에 전해지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로 그는 민중의 아픔엔 눈꼽만큼 관심도 없는 비정하고 철없는 왕비로 각인이 됐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분노를 사 혁명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다.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1770년 15살 어린 나이에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오귀스트(훗날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했다. 1774년 루이 15세가 죽고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됐지만 38세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알려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앙시앙레짐)의 모순에서 비롯됐다. 당시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2%에 지나지 않았던 제1 신분 성직자와 제2 신분 귀족이 특권층을 형성했다. 그들은 토지의 40% 정도를 소유했지만 세금 부담에서 많은 특혜를 누렸다. 반면에 절대다수인 제3 신분의 평민은 잡다한 세금과 봉건적 의무의 부담에 허덕였다.
 
농민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무렵에는 연이은 흉년으로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국가 전체가 불황에 빠졌다. 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는 등 국민경제는 도탄에 빠졌다. 성난 민중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방위군을 조직해 국왕의 군대에 맞섰다. 혁명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른바 프랑스 혁명이다. 이 때 성난 민중의 분노는 왕실을 향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의 주범으로 몰렸다.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년에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을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지어 얘기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자기 일에 관심도 없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별로 잘못이 없다. 황제의 딸로 태어나 평생 궁 밖의 생활을 몰랐던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재수 없게도 인류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자기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아랫것’들 사이에 인간의 평등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다는 것 뿐이다. 그렇게 철부지로 살다가 갑자기 역사의 격랑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 속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왕비에 비해 특별히 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졸지에 민중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졸지에 ‘나라를 말아 먹은 여자’, ‘오스트리아의 창녀’, ‘빚투성이 왕비’-. 민중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빵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고 했다는 소문 역시 근거 없는 것이었지만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던 민중들에게 그녀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번 밉게 보면 모든 것이 밉고, 한번 예쁘게 보면 모든 것이 예쁘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지금 조현아 전 부사장을 향한 국민들의 시각과 정서는 거의 일방적인 매도 분위기이며 오래 참았던 분노의 표출에 가깝다. “국토부와 검찰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대한항공 부사장직은 물론 계열사 등기이사와 계열사 대표 등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아버지 조 회장이 발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비난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지금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20대 80의 사회’라고 한다. ‘20 대 80’ 법칙은 전체 인구 중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19세기 영국의 부와 소득 유형을 연구하던 중에 발견한 부의 불균형 현상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1848~1923)가 처음 주창했다.
 
이후 20 대 80 법칙은 1997년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이 쓴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세계화 시대에서는 전 세계 인구 중 20%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반면 대다수인 나머지 80%는 사실상 20%에 빌붙어 살아가야 한다. 즉, 빈곤층 80%와 부유층 20%로 사회가 양분된다는 설명이다.
 
서구에서 주장한 이 이론이 근래 들어 한국사회에 적용돼 공감을 받고 있다. 그만큼 부의 불평등 심화와 이에 따른 경제사회적 문제들이 속출하는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년 한해 1만4427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하루 40명, 37분마다 1명꼴로 목숨을 끊는 나라, 10년 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가 한국이다.
 
이번 ‘땅콩회황’ 파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재벌과 지도층은 철저히 반성을 해야 한다.특히 자녀교육에 남다른 힘을 쏟아야 한다. 모두들 후대에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관심이 없다. 오직 당대에 나 혼자, 우리 식구, 내 자식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친다. 재벌들은 물론이고 장관, 국회의원, 대법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잘못한 것은 분명히 맞다. 조양호 회장이 평생 헬리콥터 파파로 딸을 빙빙 감싸고 돌아서 생긴 일이라는 해설도 맞다. 대한항공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초기단계에서부터 대응을 잘못했다는 지적도 맞다. 국민들의 대한항공과 그를 향한 불같은 분노는 분명히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경제사회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힘들고 고된 세상살이에서 매일매일 생활고에 찌든 일반 서민들로서는 분풀이나 화풀이를 할 좋은  ‘맷감’ 하나가 나타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잘못한 것보다도 몇십 배, 몇백 배나 처참하게 그와 재벌들이 도매금으로 '매'를 맞는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여론이 나빠진 대한항공은 벌써부터 외국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너리스크' 문제로 이대로 가면 우리는 국적항공사 하나를 잃을 지도 모를 정도다. 이번 파동을 조속히 정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아번 일은 매스컴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의 의사표현이나 여론형성, 나아가 분노표출 방식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자신의 말대로 딸을 잘못 키운 조양호 회장은 차제에 승무원과 사무장 등 종업원을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대한항공의 기업문화를 철저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 오너일가의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이 '조현아 사건'을 초래했으며, 회사 내 위기대응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든 탓이다. 태어날 때부터 재벌가 자녀인 조현아는 지금 말년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 지를 모를 수도 있다. 그가 평생 공주나 왕비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뚫어진 인성과 가정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가 죄가 있다면 검찰조사를 거쳐 실정법에 따라서 원칙대로 처벌하면 된다.  
 
다만 마치 200여년 전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불문곡직하고 인민재판 식으로 ‘단두대’로 몰아가는 풍조와 무조건적인 '반(反) 재벌정서'는 우리가 여기서 한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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