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 논쟁과 ‘톱니효과’
무상복지 논쟁과 ‘톱니효과’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2.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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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뜨거운 감자'..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까?

 
지난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민주당의 대표 공약인 전면 무상급식을 비판하며 ‘단계별 무상급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민투표에 시장 직을 걸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개표 기준(33.3%)에 미달해 사퇴하고 말았다. 반면 혜택은 엉뚱한 스타를 낳았다. 바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다. 그는 같은 해 10·26 보궐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걸고 당선됐다. 이어 작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국회의원 7선 관록의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고 당당히 재선됐다.

무상급식·보육으로 대표되는 무상복지 정책 논란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올랐다. 무상복지 쟁점은 처음 제기될 때부터 논쟁을 부를 만큼 찬반이 뚜렷했다. 그래서 정치권을 둘로 갈랐다. 하지만 무상복지를 지지한 정당이 선거에서 큰 실익을 얻자 정치권은 여야 없이 한쪽으로 쏠렸다. 재원조달 문제를 외면하고 무작정 무상복지 정책을 키우는 경쟁도 치열했다. 이것이 낳은 결과물이 이른바 ‘정치복지’다. 세월이 흘러 현재까지 후유증과 함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가에서 ‘무상’ 구호가 주요하게 등장한 것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전이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제시해 승리했다. 무상복지가 핵심 의제로 오르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에서 무상복지를 처음 내세웠지만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무상복지는 2009년 경기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가 무상급식을 앞세워 승리하면서 부활했다.
 
이 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톡톡히 재미을 보았다. 이듬 해인 2011년 초 무상보육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선거공약의 범위를 확대했다. 그 해 3월 손학규 대표는 “무상보육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했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집권 여당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우왕좌왕했다. 황우여 원내대표 등 일부는 무상보육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
 
여당이 우물쭈물하는 동안 민심은 ‘복지 확산’ 쪽의 손을 들어줬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행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는 참여율 저조로 투표함도 열지 못한 채 무산됐다. 오 시장은 사퇴했고. 그해 10월 보선에서 무상급식을 꺼내든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표심이 분명해지자 정치권은 여야 없이 ‘무상’에 손을 댔다. 그해 말 여야는 만 0∼2세에게 무상보육을 지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2012년에는 무상복지 공약의 ‘광풍’이 선거판을 휩쓸었다. 4월의 국회의원 총선은 물론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도 무상복지 공약이 판을 지배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모두 만 0∼5세 보육료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해당 공약을 예산에 반영했다. 이른바 ‘누리과정’ 예산이다. 박 대통령은 이밖에도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도 공약했다. 공약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터널은 어둡고 길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곧바로 재원부족으로 이어졌다. 시행과정에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박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3년 말부터 기초연금 수혜 대상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2014년 말에는 누리과정 예산 배정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 다툼이 빚어졌다. 경제정책의 방향이 분배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복지논쟁의 핵심은 국민이 원하는 복지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모아진다.
 
증세와 복지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진영 논리 등에 따라 방향이 갈리는 분위기다. 현재 논의되는 내용은 4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현 복지 수준을 유지하면서 증세 (2)증세 없이 '선택적 복지'로 복지 구조조정 (3)복지 확대와 증세 (4)현재의 복지와 현재의 세금 수준 유지 등이다. 어느 방안을 선택하든지 장,단점과 찬반 논쟁은 그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증세 없이 복지 전달체계 개편과 세출의 효율성 제고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복지를 위한 세원 확보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사회적으로 증세·복지 수준에 대한 해법을 찾을 적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증세·복지 수준에 대한 이견 조율에 실패한다면 현 체제 그대로 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여당은 '선택적 복지', 야당은 '보편적 복지'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접점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는 정치권이 국민에게 민감한 증세와 복지 축소에 나서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뒤로 미룬 채 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논리대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세수 결손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등 우리나라 인구구조가 일본과 20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해지고 있는 것처럼 재정구조 역시 닮아가고 있다. 지금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해야 되지만 '증세'는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경제학에서 '톱니효과(ratchet Effect)'란 게 있다. 한번 올라간 소비 수준이 쉽게 후퇴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보리밥을 먹다가 쌀밥을 먹는 데 익숙해지면 소득이 줄어도 보리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쌀밥을 먹되 그 양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소비의 상대적 안정성으로 말미암아 경기후퇴로 소득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소비가 같은 속도로 줄어들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가 경기후퇴를 억제하는 일종의 톱니작용을 하게 된다는 데서 톱니효과라고 불린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한번 무상복지라는 달콤한 꿀맛을 본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세수가 부족하니 이를 줄이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종의 ‘복지의 톱니효과’라고나 할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도 복지를 더 줄이기는 어렵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도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보육도 미래를 위한 소중한 투자"라며 무상보육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최근 재확인했다.
 
얼마 전  한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무상급식에 대해 반대(52%)가 찬성(48%)보다 많았다. 3년 전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던 오 시장이 쓸쓸히 패퇴하던 때와는 달라진 기류가 엿보인다. 무상급식에서 무상보육으로, 반값등록금으로 확산일로를 걷던 무상복지가 재정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닥친 상황과 무관치 않다. 공짜 급식으로 저소득층 지원이나 학교시설 지원 예산은 계속 삭감됐고 지난 해 6·4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의 ‘농약급식’ 논란까지 불거진 바 있다.
 
사람들은 오랜 장맛비가 내릴 때 누가 이 여름철 긴 홍수를 그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지금 무상복지라는 거대한 담론이 우리나라를 덮치며 휩쓸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누가 이 복지논쟁이라는 고양이 목에 제대로 된 방울을 매달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세월이 흘렀지만 지난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신임투표가 좌절된 뒤 남기고 떠난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유권자가 막지 않는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선심성 복지공약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사퇴를 계기로 과잉 복지에 대한 토론이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라며, 그 재정의 피해자는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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