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박근혜의 '중산층 살리기'
오바마와 박근혜의 '중산층 살리기'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2.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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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진정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

 
미국에서 중산층이라면 대개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복지 혜택, 그리고 내 집 소유가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중산층은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과 영혼이었다. 아울러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실현하는 ‘기회의 불꽃’이었다. 많은 사람이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 빈곤 노동층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끝났다고 말한다.

미국은 지난 1970년대부터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소득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상류층의 소득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미국은 빈부격차가 세계적으로 가장 심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결과적으로 중산층 붕괴현상은 미국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메리칸드림의 실종은 바로 중산층 붕괴로 압축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역설한 장면이 오랫동안 화제다. 지난 달 20일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신년국정연설에서 "4300만 노동자들의 유급병가를 의무화하자. 이것이 정당한 것"이라면서 "물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임금 인상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여성노동자도 똑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의회가 노력해야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제 때가 됐다. 여전히 초과근로수당 보장이 숙제로 남아있다"면서 "만약 이 자리에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에 1만4500달러(약 1600만원)을 벌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한 번 해보라(go try it)"면서 "그렇게 못하겠다면 열심히 일하는 수백만 노동자의 임금을 올릴 수 있도록 투표하라"고 말해 참가자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 연설로 NBC 방송국이 자체 조사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90%까지 치솟았다. 
 
이 연설은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은 오바마의 최저임금 연설 내용을 트위터로 리트윗하며 "시원하다", "멋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최저임금을 현행 시간당 7.25불에서 10달러10센트(약 1만원)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시급은 5580원). 미국 내 공립학교 재학생 가운데 저소득층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유아원부터 12학년까지의 전국 공립학교 재학생들 중 51%가 연방정부가 규정하는 4인가족 기준 저소득 한계선인 연소득 4만4123달러(약 4700만원) 미만 가정이다. 미국 공립학교 재학생 중 저소득층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은 것은 50년 만이다. 이는 불경기 회복시기부터 가중된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가 주요 원인이다. 미국에서 중산층이 붕괴하는 큰 단서인 셈이다.
 
현재 대한민국 중산층의 삶은 어떤가. 어느 조사결과에 따르면 25년 전인 1990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팍팍해졌다. 1990년대 중산층은 주로 외벌이 가구가 많았지만 현재는 맞벌이가 크게 늘었다. 주거·세금·교육 등 고정비 증가로 두 사람이 버는데도 중산층 소비여력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중산층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중위소득 대비 50% 이상 150% 이하 소득계층으로 정의했다. 예컨대 인구 5000만명 중 소득순위 2500만위에 속하는 가구 소득이 2000만원이라면 소득 1000만~3000만원인 가구가 중산층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1990년대 중산층은 4인 가구에 외벌이 가족(82.7%, 맞벌이는 15.1%)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3년엔 같은 4인 가구에 외벌이 가족 비중이 53.6%로 급감하고 맞벌이가 37.9%로 크게 늘었다. 둘이 버는 가구가 급증했는데도 소비여력(총소득 대비 처분가능소득 비율)은 1990년보다 줄어들었다. 크게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크게 붕괴한 셈이다. 최근 2년 사이에 우리나라 중산층의 세금 부담 증가율이 고소득층의 3배나 됐다. 늘어난 세금도 세금이지만 왜 고소득층은 놔두고 중산충만 이러는 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올해 연말정산 파동에서 유독 중산층의 분노가 컸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중산층 경제학(Middle class economics)’을 키워드로 들고 나온 것도 미국의 중산층 붕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중산층 복원의 수단으로 부자 증세를 내세웠다. 중산층의 무상교육과 보육, 복지를 위해 부자들에게 상속세와 자본이득세 등을 더 걷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도 늘 중산층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중산층, 심지어 서민층의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거둬 나라살림에 쓰겠다는 점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중산층 복원의 요체인 ‘경제 민주화’ 대선 공약은 지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현재 대한민국 중산층 삶은 24년 전인 1990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팍팍해졌다. 주거·세금·교육 등 고정비 증가로 두 사람이 버는데도 중산층 소비여력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지난 연초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도널드 발렛·제임스 스틸)’라는 책이 발간됐다. 미국의 중산층 붕괴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지은이들의 주장이다. 먼저 ‘자유무역’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1979년에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혁신 기업’도 중산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플의 성공으로 잠시 좋은 일자리가 생겼지만, 곧바로 일자리는 중국으로 ‘수출’되고 말았다. 이들은 미국에 새로운 형태의 ‘금권 귀족정치’가 들어섰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 지배층’의 손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산층 복원은 ‘다수의 지배’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출하고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자본주의의 모범국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산층의 축소’와 양극화 문제가 우리나라에도 화급한 경제, 사회적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이 땅의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이제라도 제대로 된 고민과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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