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보성 오씨(寶城吳氏)-59,914명
(122)보성 오씨(寶城吳氏)-59,914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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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오현필(吳賢弼)은 1216년(고려 고종 3년)에 거란군을 격퇴한 공으로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보성으로 했다. 오현필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 취리산에 있다.

그런데 오현필은 우리나라 오씨의 원조(遠祖) 곧 도시조(都始祖)라 할 수 있는 오 첨(吳瞻)의 24세 손이다. 오현필의 큰 형 오현보(吳賢輔)는 해주오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형 오현좌(吳賢佐)는 동복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들 3형제가 거란군의 침입을 격퇴, 각기 해주군과 동복군, 보성군에 봉해진 때문이다.

보성오씨는 시조 오현필의 아들 대에서 4개 본관으로 갈라진다. 셋째 아들 오 원은 화순오씨, 넷째 아들 오광휘는 함양오씨로 분관했다. 오현필의 둘째 아들 오 양의 6세손 오중권은 흥양오씨, 오현필의 6세손 오사염의 둘째 아들 오천우는 장흥오씨로 다시 분관했다.

오현필의 손자 오한경은 고려 원종 1년 감시(監試)에 장원하여 동국시학 으로 선발되었고, 충선왕 1년 삼사우사를 거쳐 첨의찬성사를 역임했다. 공민왕 4년에 문과에 급제한 오사충은 감찰규정, 집의 등을 거쳐 대사성과 좌상시를 역임하였다. 그 뒤 조선 개국공신이 되었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태조 3년 중추원부사, 교주강릉도관찰사를 지냈으며 태조 5년 정당문학, 경기좌도도관찰사를 거쳐 태종 4년에 판사평부사에 이르렀다.

오현필의 7세손 오천복이 문하시랑 평장사를 역임했다. 그 뒤 오천복의 아들 오 점(吳漸)이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내면서 가문을 중흥시켰다. 오 점(吳漸)의 아들 오숙동은 진의부위(進義副尉)를 지냈다. 오숙동은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에 터를 잡았으며 그 뒤 600여 년이 흘러 그의 자손이 3만 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의 묘소는 충북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있다. 오몽을은 고려 말 대장군을 지내고 이성계를 추대하는데 공을 세워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의 일당으로 몰려 살해된다.

양무공 오자경은 단종 2년 무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원사를 지냈으며, 그 뒤 세조 12년 무과중시에 급제하여 가정대부에 올랐다.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오천을은 대제학을 지냈으며, 오연찰은 이조판서를, 오 집은 한성판윤을 지냈다. 오대남은 만호를 거쳐 고원군수를 지냈으며 병자호란 당시 강도에서 거란군에 항거하다 순절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는 오강표, 오재옹, 오교선, 오익표, 오연길 등이 있다.

현대인물은 오제세(대전시장, 국회의원), 오영교(행정자치부장관, 동국대총장), 오장세(충청북도의원), 오병하(청주시장), 오해진(판사), 오범식(재무차관), 오효진(SBS보도국장, 청원군수), 오현진(청주대법과대학교수), 오경호(학교법인 충청학원-충청대학이사장), 오웅진(음성꽃동네신부, 사회복지대 초대총장), 오노균(충청대 스포츠외교학과교수, 대전광역시태권도협회회장), 오원진(충청대 지적학과교수), 오장균(한남대 경영학과교수), 오상진(우송대 컴퓨터기계자동차과교수), 오선세(대전기능대 공학교수), 오현규(대전문화원이사, 보성오씨 양무공파종친회장)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오준근(吳濬根) : 문과(文科) 정조0년(177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오대곤(吳大坤, 1734 甲寅生) : 문과(文科) 정조10년(1786)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오몽량(吳夢樑, 1734 甲寅生) : 문과(文科) 중종31년(1536) 친시 병과(丙科), 오봉원(吳奉源, 1702 壬午生) : 문과(文科) 영조30년(1754) 함경도도과 병과(丙科), 오익환(吳翼煥, 1754 甲戌生) : 문과(文科) 정조1년(1777) 증광시 병과(丙科), 오익환(吳翼煥, 1754 甲戌生) : 문과(文科) 정조10년(1786) 중시 을과(乙科), 오성근(吳聖根, 1743 癸亥生) : 문과(文科) 정조14년(1790) 별시 병과(丙科), 오창(吳昶, 1743 癸亥生) : 문과(文科) 명종10년(1555) 식년시 병과(丙科), 오덕증(吳德曾, 1690 庚午生) : 문과(文科) 경종1년(1721)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08명이 있다. 문과 28명, 무과 9명, 사마시 71명이다.

항렬자는 부위공파가 21世 상(相) 응(應) 환(煥) 종(宗), 22世 선(先) 재(在) 형(亨), 23世 계(啓) 현(鉉) 석(錫), 24世 호(鎬) 준(俊) 영(永) 연(淵), 25世 영(永) 식(植) 수(秀), 26世 세(世) 병(炳) 희(熙), 27世 균(均), 28世 진(鎭), 29世 영(泳), 30世 근(根), 31世 훈(勳), 32世 중(重), 33世 선(善), 34世 원(源), 35世 래(來), 36世 열(烈), 37世 달(達), 38世 종(鍾)이다.

양무공파는 21世 영(永), 22世 근(根), 23世 연(然), 24世 기(基), 25世 석(錫), 26世 수(洙), 27世 병(秉), 28世 섭(燮), 29世 재(在), 30世 치(治) 호(鎬), 31世 영(永), 32世 식(植) 표(杓), 33世 병(炳), 34世 교(敎)규(圭), 35世 종(鍾), 36世 연(淵), 37世 인(寅), 38世 열(烈), 39世 기(基), 40世 선(善), 41世 태(泰) 필(泌), 42世 영(榮) 동(東), 43世 현(顯)노(魯), 44世 중(重) 원(遠), 45世 용(鎔) 진(鎭), 46世 순(淳) 호(浩)이다. 주요파는 부위공파, 양무공파, 종파, 감역공파, 풍창공파, 판관공파, 사직공파, 지평공파, 갈산교관공파, 대사공파, 대제학공파, 진사공파, 어모장군공파, 조양군공파, 예문제학공파, 판윤공파, 병판공파, 양숙공파 등이다.

본관 보성(寶城)은 전라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보성군(寶城郡) 지역의 옛 지명으로 마한 54국 중 불운국(不雲國)이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는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고려 태조는 삼양군(三陽郡)이라 하였으며, 996년(성종 15)에 패주(貝州)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이 되었다. 1441년(세종 23)에 조양현(兆陽縣)과 복성현(福城縣)을 제외한 대부분의 속현이 흥양현으로 이속되어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보성군, 1896년에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보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보성김씨(寶城金氏), 보성박씨(寶城朴氏), 보성선씨(寶城宣氏), 보성손씨(寶城孫氏), 보성안씨(寶城安氏), 보성오씨(寶城吳氏), 보성이씨(寶城李氏), 보성임씨(寶城林氏), 보성전씨(寶城全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집성촌은 충청북도에 가장 많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화산리, 충청북도 청원군 헌도면 달계리,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삼산리,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매봉리,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 충청남도 보령군 웅천면 성동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대흥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구산리, 전라북도 김제군 청하면 관상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보성오씨는 1985년에는 총 12,342가구 52,544명, 2000년에는 총 18,229가구 59,91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천여 가구, 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499명, 부산 1,301명, 대구 347명, 인천 1,671명, 경기 5,358명, 강원 543명, 충북 11,105명, 충남 13,528명, 전북 2,592명, 전남 2,036명, 경북 523명, 경남 943명, 제주 97명이다. 충남과 충북지역 등 충청권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2,466명, 부산 1,179명, 대구 491명, 인천 2,982명, 광주 761명, 대전 8,706명, 울산 388명, 경기 10,905명, 강원 571명, 충북 10,651명, 충남 6,069명, 전북 2,330명, 전남 1,005명, 경북 611명, 경남 686명, 제주 113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충북, 대전, 충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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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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