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연주 현씨(延州玄氏)-59,096명
(123)연주 현씨(延州玄氏)-59,096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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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현담윤(玄覃胤)은 본래 평안도 연주 출신으로 고려 의종 때에 장군을 지내고 명종 때 일어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라 연산군(燕山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시조의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연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연주와 연산은 평안도 영변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현씨는 대개가 연주현씨 시조 현담윤의 후손들이다. 현담윤의 2세손 현덕수는 성주현씨, 역시 2세손 현덕유는 창원현씨, 현덕수의 둘째 아들 현원고는 순천현씨로 갈라진다. 연주현씨를 제외한 나머지 현씨는 각각 몇 천 명에 불과하다.

현씨가 크게 성장하게 된 것은 시조 현담윤과 세 아들인 현덕수, 현이후. 현덕유가 중앙의 관료로 진출하면서부터다. 7세조를 파조로 하여 13개 파로 나누어진다.

명종 4년(1174년)에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인정권의 정중부, 이의방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이북의 40여 성이 모두 그에게 호응하였다. 이때 연주성만이 호응하지 않고 성을 지키면서 반군을 토벌한다. 당시 현담윤은 도령(都領)으로 연주의 주현군(州縣軍)을 통솔하는 최고 책임자로 있었다.

현덕수는 조위총의 반란 때 아버지 현담윤과 함께 성을 고수하였다. 그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병부상서에 오른다. 현득원은 세종 때 문과를 거쳐 단종조에 성주목사로 재직했다. 단종이 양위하자 통곡하고 영천에 은거, 평생을 나오지 않았다.

천주교 순교자 현석문은 1836년(헌종 21) 의주에서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주교를 맞아들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아내와 누이가 순교 한 뒤‘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완성했다. 1939년 9월 김대건 등과 함께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했다. 한말에 와서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현병근과 현익철이 대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현진건은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겸 언론인으로 호는 빙허(憑虛)이다. 그는 1900년 대구에서 우체국장 현경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1년 조선일보에 입사, 1924년에는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1927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1928년부터 1936년까지 사회부장을 역임했으나,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간 복역했다. 1939년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동아일보에 역사소설‘흑치상지(黑齒常之)’를 연재했다. 시골에서 양계장을 만들어 일했으며, 1943년 4월 25일 장결핵으로 별세했다. 오랜 친구인 시인 이상화도 같은 날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현진건은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으며 그 딸은 월탄 박종화의 며느리이다. 작품은 〈빈처〉〈술 권하는 사회〉〈운수 좋은 날〉〈B사감과 러브레터〉<무영탑> 등이 있다.

현대인물은 현석호(국방부장관), 현오봉(국회의원), 현제명(작곡가), 현승종(성균관대총장), 현상윤(고려대총장), 현신규(서울농대학장), 현중화(서예가, 국전심사위원), 현정주(국회의원), 현준호(실업인), 현병구(공학박사, 서울대교수), 현재선(서울대교수), 현정준(서울대천문학과교수), 현영학(이화여대교수), 현우영(인천대체육과교수), 현용준(제주대학원장), 현학순(제주대경상대학장), 현평호(제주대총장), 현승훈(화승회장), 현영원(현대상선회장), 현재현(동양시멘트사장), 현영진(중앙경제신문주필), 현홍주(국회의원, 법제처장), 현규병(대한변협감사), 현기순(서울대가정대교수, 국회의원), 현석주(육군소장), 현도성(실업인), 현이복(평통자문위원, 호일상사대표), 현태진(연성식품회장), 현수창(동공(주)회장), 현종혁(현학농원대표), 현홍섭(경종건설대표), 현득룡(현경통상수출대표), 현태식(교육자), 현준길(교육자), 현명호(대안공예대표), 현소환(연합통신편집상무), 현천홍(덕수스튜디오대표), 현석문(단위농협조합장), 현종국(청수식품대표), 현태진(안동-상주군수), 현경대(국회의원, 변호사), 현천욱(변호사), 현희남(대한항공기장), 현순섭(서울고법판사), 현병규(경무관, 변호사), 현종찬(변호사), 현영두(서울민사지법판사), 현광언(육군준장), 현두영(경찰서장), 현상종(제주도경 경무과장), 현동섭(총경), 현창화(총경), 현병두(총경), 현병철(대전지방국세청 직세국장), 현영도(대구연초제조창 관리국장), 현의홍(해운항만청 포항전담국장), 현치방(제주도 기획실장), 현천섭(의학박사, 병원장), 현병철(한양대교수), 현호택(한은조사부장), 현기웅(중앙일보부국장), 현기영(소설가), 현성효(고등학교교장), 현승우(고등학교교장), 현학철(중등학교교장), 현해봉(서예가), 현현찬(공인회계사), 현정수(한은부장), 현원달(공진청공업표준연구소장), 현정오(서울대교수, 농학박사), 현해은(서울대교수), 현상훈(연세대교수), 현민자(연세대교수), 현진해(고려대교수), 현인섭(이화여대교수), 현정섭(서울대교수), 현석하(한양대교수), 현병하(한양대교수), 현병희(한양대교수), 현재현(동양증권회장), 현희강(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 현인철(제주도공무원교육원장), 현창호(천안군수), 현창규(아산군수), 현구환(고성-춘성군수), 현규환(치과원장), 현건은(치과원장), 현두일(건국대부총장), 현의태(건국대교수), 현승일(국민대교수), 현광석(한림대교수), 현종건(충남대교수), 현중섭(영남대교수), 현시학(해군소장, 주멕시코대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현필제(玄弼濟,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헌종10년(1844) 증광시 병과(丙科), 현재진(玄載辰,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고종11년(1874) 증광시 병과(丙科), 현석태(玄錫泰, 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 병과(丙科), 현동건(玄東健, 1843 癸卯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2명이 있다. 문과 5명, 사마시 7명이다.

본관 연주(延州)는 평안북도 영변(寧邊)의 옛 이름이며 영변은 영주(迎州)와 무주(撫州)의 합쳐진 지명이다. 970년(고려 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으며, 995년(성종 14)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가 공민왕 때 연산부(延山府)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개편되었다. 무주는 고려의 운남군(雲南郡)인데 995년 무주방어사라 하였다가 공민왕 때 태주(泰州)로 이속되었다. 1419년(세종 11) 연산과 무산을 합하여 영변(寧邊)으로 개칭하고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세조 때 다시 연주(延州)를 나누어 운산군(雲山郡)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변군으로 개칭되었다.

주요파는 삼남관북파, 박천파, 개천박천파, 하양평양파, 황해파, 천녕파, 평양파, 제주창평파, 중원홍성파, 밀양예산파, 덕산파, 연천파, 개성파 등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철원군 내문면 창동리,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장포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주현씨는 1985년에는 총 11,969가구 48,156명, 2000년에는 총 18,686가구 59,0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7천여 가구, 1만1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0,335명, 부산 3,060명, 대구 3,388명, 인천 1,153명, 경기 5,601명, 강원 1,618명, 충북 1,092명, 충남 2,729명, 전북 994명, 전남 1,037명, 경북 3,468명, 경남 1,638명, 제주 12,041명이다. 제주 지역에 단연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1,479명, 부산 3,210명, 대구 4,116명, 인천 2,228명, 광주 662명, 대전 1,481명, 울산 961명, 경기 11,376명, 강원 1,525명, 충북 1,333명, 충남 2,879명, 전북 1,002명, 전남 583명, 경북 2,961명, 경남 1,437명, 제주 11,863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제주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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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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