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해남 윤씨(海南尹氏)-55,627명
(129)해남 윤씨(海南尹氏)-55,627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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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윤존부(尹存富)는 고려 중엽 때의 인물이다. 중시조인 8세손 윤광전(尹光琠)이 고려 공민왕 때 사온 직장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아들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피하여 살았다. 해남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12세조인 윤효정(尹孝貞)이 강진에서 해남으로 옮겨 가면서 부터다. 윤광전의 묘소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한천동에 있으며 음력 9월 9일에 향사한다.

고산 윤선도의 고조부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은 해남에서 해남윤씨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그는 해남과 이웃인 강진에 살았는데 당대 거부이던 해남 초계정씨 정호장(鄭戶長)의 외동딸과 결혼, 정호장의 재산을 물려받고 일약 거부가 됐다. 그 뒤 전남 해남군 해남읍 도강김씨의 땅이었던 이곳 연동리 마을로 옮겼다. 지금도 연동리 마을의 70여 호는 모두 윤효정의 후예들이다.

윤효정의 아들 윤 구는 중종 때 홍문관부교리를 지내고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윤 구의 아들 윤의중은 해남윤씨를 중앙 무대에서 명가의 반열에 들게 한 인물이다. 그는 1581년 판서를 거쳐 좌찬성을 지냈다.

고산 윤선도(尹善道)는 윤의중의 손자다. 고산은 광해군 4년에 처음 관직에 나간다. 그의 일생은 짧은 벼슬살이와 긴 유배, 그리고 귀향, 은둔의 연속이었다. 고산은 그보다 50년을 앞서 살았던 송강 정 철과 함께‘우리 문학의 쌍벽’을 이룬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시조는 75수에 이른다.‘오우가’는‘산중신곡’의 일부다. 고산은 병자호란 뒤 은둔지로 택한 보길도 앞 바다를 막아 농토를 만들고 가난한 백성들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고산의 증손 윤두서는 숙종 때 화가로 유명하며 심사정, 정 선과 함께 3재로 일컬어졌다. 그의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이며 그 외의 그림은 모두 보물 481호로 지정됐다. 고산의 종손인 윤영선은 초대 광주시장, 국회의원을 지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윤 복(尹復) : 문과(文科) 중종33년(1538) 별시2 을과(乙科), 윤지눌(尹持訥, 1762 壬午生) : 문과(文科) 정조14년(1790) 춘당대시 병과(丙科), 윤의중(尹毅中, 1524 甲申生) : 문과(文科) 명종3년(1548) 별시 병과(丙科), 윤 행(尹行, 1524 甲申生) : 문과(文科) 중종26년(1531) 식년시 병과(丙科), 윤홍중(尹弘中, 1524 甲申生)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증광시 병과(丙科), 윤선도(尹善道, 1587 丁亥生) : 문과(文科) 인조11년(1633) 증광시 병과(丙科), 윤인미(尹仁美, 1607 丁未生) : 문과(文科) 현종3년(1662)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66명이 있다. 문과 18명, 무과 8명, 사마시 40명이다.

현대 인물은 윤일영(대법원판사), 윤철하(변호사), 윤태현(크라운제과사장), 윤근환(농협중앙회장), 윤 관(대법원판사), 윤승식(동자부 기획관리실장), 윤 철(중앙종친회명예회장, 한국포장공사회장), 윤재호(한국임우회회장), 윤재신(한전전기부장), 윤재찬(서예가), 윤봉현(대신무역사장), 윤혁동(성균관재단이사), 윤재간(봉천중학교교장, 서양화가)), 윤주연(독립유공자, 광주상고교장), 윤경현(정형외과원장), 윤인수(해성상사사장), 윤영표(은행감독원 검사2국장), 윤창현(거손종합광고 대행회장), 윤갑하(한국상업은행부장), 윤 광(강진군수), 윤영완(삼환기업 토목담당이사), 윤재락(동방산업사대표), 윤재명(국회의원), 윤 탁(주일공사), 윤영선(판사), 윤재중(전남농협연수원장), 윤상현(전남대교수), 윤재국(조선대교수), 윤상래(도의원), 윤정웅(산부인과의원장), 윤창현(목포여고교장), 윤규옥(성모병원원장), 윤인하(육군소장), 윤순복(삼성제약사장), 윤양현(광주개방대교수), 윤재강(숭실대교수), 윤태훈(한양대교수), 윤내현(단국대교수), 윤훈현(고려대교수), 윤순정(한일은행상무), 윤 전(부장판사), 윤재식(부장판사), 윤영서(국민은행지점장), 윤은섭(국민은행지점장), 윤오호(수의과의원장), 윤주인(공인회계사), 윤동현(국토통일원교수), 윤배옥(경일초음파공업사사장), 윤정하(국회경비대장), 윤재열(세양인터네쇼날대표), 윤봉현(외과원장), 윤지호(서울서머나교회목사), 윤명현(광주문화방송국사장), 윤태현(정형외과원장), 윤평현(조선대교수), 윤주은(담양고교교장), 윤영성(정형외과원장), 윤재봉(산부인과의원장), 윤영초(시인), 윤재걸(시인), 윤청광(동국출판사사장), 윤정혜(인하대교수), 윤치상(부안경찰서장), 윤재창(서울투자금융 총무이사), 윤승식(동자부 기획실장), 윤풍현(세무사), 윤 승(피부과의원장), 윤주경(전남대교수), 윤태훈(부산대교수), 윤재창(변호사), 윤순돈(광주경찰서장), 윤덕하(변호사), 윤영돈(세무사), 윤중현(영암우체국장), 윤만석(국회의원), 윤추섭(국회의원), 윤종섭(변호사), 윤장섭(서울대교수), 윤종섭(가톨릭대교수), 윤용진(경북대교수), 윤재룡(전남대교수), 윤중호(연세대교수), 윤 당(산업은행이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4世 호(浩), 25世 주(柱), 26世 하(夏), 27世 재(在), 28世 현(鉉), 29世 영(泳) 순(淳), 30世 상(相) 식(植), 31世 병(炳), 32世 배(培), 33世 용(鎔), 34世 수(洙), 35世 동(東), 36世 환(煥), 37世 기(基), 38世 탁(鐸), 39世 해(海), 40世 식(植), 41世 덕(德)이다.

주요파는 ▲대호군공파-사정공파, 집의공파 ▲소윤공파-호군공파, 적순공파, 진사공파, 참봉공파, 정릉참봉공파, 어초은공파, 참의공파 등이다.

본관 해남(海南)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마한 때에는 구해국(狗奚國)이었다고 한다. 538년(백제 성왕 16)에 새금현(塞琴縣)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침명현(浸溟縣)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 康津)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해남현으로 이름을 바꾸어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다. 1409년(태종 9)에 왜구의 극성으로 육지에 옮겨온 진도현(珍島縣)을 병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라 하였다. 1437년(세종 19)에는 다시 진도와 분리하여 현감을 두어 해남현이 되었고, 또 수군전라우수영을 두어 남쪽 해상 방비의 요지로 삼았다. 1448년(세종 30) 황원현(黃原縣)·옥산현(玉山縣)·죽산현(竹山縣)과 병합, 당악(棠岳)으로 개편하였다가 다시 해남현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해남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면서 부근 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시켰다. 1955년에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해남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해남김씨(海南金氏), 해남민씨(海南閔氏), 해남윤씨(海南尹氏), 해남이씨(海南李氏), 해남정씨(海南鄭氏) 등이다.

집성촌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전남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 전남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전남 강진군 강진읍 춘전리, 전남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남윤씨는 1985년에는 총 11,519가구 48,786명, 2000년에는 총 17,366가구 55,62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천여 가구, 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210명, 부산 2,163명, 대구 187명, 인천 1,261명, 경기 3,324명, 강원 287명, 충북 129명, 충남 801명, 전북 743명, 전남 25,814명, 경북 243명, 경남 747명, 제주 871명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남 지역에 살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4,374명, 부산 2,280명, 대구 265명, 인천 2,814명, 광주 8,606명, 대전 587명, 울산 346명, 경기 9,786명, 강원 361명, 충북 321명, 충남 673명, 전북 860명, 전남 12,426명, 경북 319명, 경남 817명, 제주 792명이다. 서울, 전남, 광주, 인천, 부산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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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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