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칠원 윤씨(漆原尹氏)-54,263명
(131)칠원 윤씨(漆原尹氏)-54,263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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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무열왕 때 태자태사로서 고명원로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윤 황 이후의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후손 윤거부(尹鉅富)가 고려 초 칠원현에서 호장보윤(戶長甫尹)을 지내고 칠원백(漆原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칠원을 본관으로 삼고, 윤거부를 중시조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윤거부는 비록 호장이었지만 2세 이후부터 중앙 관직에 진출하여 정당문학, 찬성사, 이부상서 등의 고관에까지 오른다. 후에도 자손이 영달아 봉군(封君)되는 등 가문이 크게 번성했다. 칠원은 경남 함안군에 있는 지명이다.

칠원윤씨가 중앙 정부에 이름을 내게 된 것은 윤 수(尹秀) 때부터다. 고려 원종 때 장군이었던 윤 수는 당시 권신 임 연을 제거하자는 동지추밀 조 오의 제의를 수락한다. 그러나 조 오가 주저하자 이를 임연에게 알려 조 오가 처형된다. 그 뒤 1207년 임 연이 제거되자 원나라로 가서 볼모로 있던 세자 충렬왕과 함께 귀국하여 대장군에 이른다.

고려 공민왕 때 재상을 지낸 윤 환(尹桓)은 윤 수의 손자다. 그는 충숙왕 복위 때 일어난 옥사로 원나라로 탈출했으나 충혜왕이 복위하면서 벼슬자리에 복귀한다. 무왕 때까지 다섯 왕을 섬기고 세 차례 재상을 지냈다. 고향 칠원에 큰 기근이 났을 때 가재를 털어 빈민을 구제했다.

윤 수의 증손 윤 저(尹抵)는 조선 태조 때 상장군이 되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책록, 찬성사가 되었다. 윤석보는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윤석보의 아들 윤풍형은 관찰사, 부제학을 역임했다. 윤석보의 증손 윤탁연은 명종 때 춘추관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 뒤 옥당, 3도관찰사, 형조,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선조 때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칠계군에 봉해졌다. 윤지술은 숙종 때 유생으로 신임사화에서 화를 입었다. 임 창, 이의연과 함께 3포의(三布衣)로 일컬어진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윤탁연(尹卓然,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명종20년(1565) 알성시 병과(丙科), 윤우정(尹遇丁, 1617 丁巳生) : 문과(文科) 현종3년(1662) 정시 병과(丙科), 윤치적(尹致績, 1634 甲戌生) : 문과(文科) 현종10년(1669) 정시 병과(丙科), 윤지원(尹志遠, 1682 壬戌生) : 문과(文科) 영조4년(1728) 별시2 병과(丙科), 윤상학(尹尙學, 1819 己卯生) : 문과(文科) 고종19년(1882) 증광시 을과(乙科), 윤지형(尹志衡, 1707 丁亥生) : 문과(文科) 영조23년(1747) 식년시 병과(丙科), 윤일복(尹一復, 1715 乙未生) : 문과(文科) 영조33년(1757) 정시 병과(丙科), 윤지화(尹志和, 1660 庚子生) : 문과(文科) 숙종25년(1699) 정시 병과(丙科), 윤자신(尹自莘, 1555 乙卯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증광시 병과(丙科), 윤지태(尹志泰, 1700 庚辰生) : 문과(文科) 영조11년(1735)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134명이 있다. 문과 26명, 무과 10명, 사마시 98명이다.

현대 인물은 윤영학(변호사), 윤형원(충남대교수), 윤병도(중앙대교수), 윤병한(국회의원), 윤석순(국회의원), 윤기옥(유니온화학공업이사), 윤병철(한국투자금융사장), 윤광순(한국투자신탁사장), 윤흥순(영신상호신용금고부사장), 윤종열(서주통상사장), 윤기수(조일수산대표이사), 윤병정(검사), 윤호익(국제변호사), 윤병각(판사), 윤우정(부장판사), 윤종선(변호사), 윤병인(판사), 윤형수(정산농업협동조합장),윤병기(부산대교수), 윤 일(부산대치대교수), 윤시운(동아대공대교수), 윤병환(녹산초등교장), 윤형원(충남대교수), 윤 진(영남대교수), 윤병원(연초초등교장), 윤병태(충남대교수), 육윤종헌(청주사대부속여고교장), 윤태원(초등교장), 윤병재(고현수리조합장), 윤영연(동덕여대교수), 윤병혁(초등교장), 윤종만(고교교장), 윤종억(초등교장), 윤종복(고교교장), 윤응원(초등교장), 윤철근(수산업협동조합이사), 윤병도(중앙대교수), 윤무부(경희대교수), 윤종학(서울개방대교수), 윤대순(영진전문대교수), 윤상두(초등교장), 윤병귀(남원초등교장), 윤종국(계명대교수), 윤치정(경북공업전문대교수), 윤병석(창원대교수), 윤상철(혜전전문대교수), 윤휘수(초등교장), 윤대성(창원대교수), 윤동진(강진농고교장), 윤병덕(한양여고교장), 윤종오(전주기전여고교감), 윤영창(서예가), 윤의원(한학자), 윤병섭(진해시교육장), 윤병두(칠원고교장), 윤병일(창원고교장), 윤정숙(함안여중고교장), 윤기순(재일거류민단본부 사무처정), 윤종구(치과의원장), 윤병택(외과의원장), 윤종연(부산병원장), 윤영원(인천항도선사), 윤춘근(육군소장), 윤진원(육군준장), 윤병계(중양수산개발회장), 윤종화(김해군수), 윤행원(해운항만청 법무실장), 윤처원(대사), 윤창원(천안경찰서장), 윤상원(진주시장), 윤병호(건설부항만과장), 윤길원(울산시남부경찰서장), 윤용순(은행감독원감사관), 윤남동(체신부전신국장), 윤종암(전주연초제조창 기술관), 윤종보(문화방송기자), 윤양수(청와대이사관), 윤광순(한국투자신탁사장), 윤기수(세무사, 조일수산회사대표이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환(煥) 경(敬), 32世 국(國), 33世 재(載), 34世 의(義) 의(誼), 35世 영(永), 36世 학(學) 근(根), 37世 병(炳) 형(炯), 38世 원(遠)규(逵), 39世 종(鍾) 호(鎬), 40世 순(淳) 수(洙), 41世 상(相) 주(柱), 42世 묵(默) 훈(勳), 43世 효(孝) 교(敎), 44世 흠(欽) 진(鎭), 45世 해(海) 부(溥), 46世 식(植) 모(模), 47世 찬(燦) 혁(爀), 48世 균(均) 배(培), 49世 용(鎔) 기(錤), 50世 한(漢) 연(淵), 51世 동(東) 정(程), 52世 환(煥) 섭(燮), 53世 규(圭) 규(奎), 54世 전(銓) 갑(鉀), 55世 철(徹) 자(滋), 56世 영(榮) 권(權), 57世 현(炫) 희(熙), 58世 기(基) 곤(坤)이다. 주요파는 ▲충효공파 ▲대언공파 ▲칠성공파 ▲사윤공파 ▲부원군파 ▲장군공파 등이다.

본관 칠원(漆原)은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칠토현(漆吐縣)이었던 것을 757년(신라 경덕왕 16)이 칠제(漆隄)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 昌原)에 예속시켰으며, 고려 초에 칠원(漆原)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김해(金海)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에 와서는 초기에 칠원현으로 고친 후, 선조 때 창원(昌原)에 속하였다가 광해군 때 현(縣)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관할의 칠원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칠원, 칠서, 칠북의 3면으로 편성되어 함안군(咸安郡) 칠원면이 되었다. 칠원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칠원김씨(漆原金氏), 칠원윤씨(漆原尹氏), 칠원제씨(漆原諸氏) 등이다.

집성촌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충남 청양군, 경남 거제시, 경남 합천군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칠원윤씨는 1985년에는 총 10,817가구 44,883명, 2000년에는 총 16,829가구 54,26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천여 가구, 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9,121명, 부산 6,801명, 대구 971명, 인천 890명, 경기 4,118명, 강원 732명, 충북 862명, 충남 5,411명, 전북 1,016명, 전남 2,827명, 경북 613명, 경남 11,453명, 제주 59명이다. 경남과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았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0,439명, 부산 7,498명, 대구 1,407명, 인천 1,983명, 광주 1,052명, 대전 2,482명, 울산 952명, 경기 9,081명, 강원 838명, 충북 1,051명, 충남 2,883명, 전북 943명, 전남 1,537명, 경북 929명, 경남 11,092명, 제주 96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남, 부산 지역에 가장 많다. 서울, 경기, 충남, 대전 지역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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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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