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순천 김씨(順天金氏)-52,258명
(136)순천 김씨(順天金氏)-52,258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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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 총(金摠)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825년(신라 헌덕왕 17년)에 태어나 인가별감(引駕別監)으로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다. 평양(平陽)은 순천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 총은 무예에 출중했고 박란봉 장군과 더불어 큰 공을 세웠다. 생존 연대는 신라 말엽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순천김씨의 가승(家乘) 문헌은 단종조의 계유정난 때 김종서의 피화로 거의 없어졌다. 여산군(麗山君)의 후계로는 다만 부원군(府院君)의 호적 한 장만 남아 있어 선대의 소목이 분명치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조에서 전객사령(典客寺令)을 지낸 김윤인(金允仁)을 1세로 한다. 한편 순천김씨는 김윤인과 김태영(金台泳)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두 파가 있다. 시조의 묘소는 전남 승주군 주암면 장촌에 있으며 10월 1일 향사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은 7세손 김종서다. 그는 단종 1년 아들 김승규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철퇴를 맞고 비명에 간다. 그때부터 순천김씨의 수난은 계속된다. 김종서의 아들과 손자들도 이때 대부분 죽음을 당한다. 다행히 김승규의 셋째 아들은 노비에 업혀 무주의 친척집에서 자란다. 그 뒤 전북 부안의 위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를 이었다.

김종서의 또 다른 손자인 김 팽도 역시 노비에 업혀 위도로 가서 살다가 장성하여 익산의 내산동으로 이거한다. 그 자손들이 이때부터 익산에 자리 잡았다. 김종서는 개유정난 후 293년이 지난 영조 22년에 복관된다. 순천김씨 중에서 계유정난으로 일가가 피화를 본 것은 김종서 계이다. 김을재 계 등은 특별한 화를 입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벼슬을 이어갔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김여물(1548 戊申生) : 문과(文科) 선조10년(1577)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진표(金震標, 1584 甲申生) : 문과(文科) 효종4년(165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성(金聲, 1772 壬辰生) : 문과(文科) 순조26년(1826)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기(金璣, 1772 壬辰生) : 문과(文科) 중종31년(1536) 중시 병과(丙科), 김약묵(金若默, 1772 壬辰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을과(乙科), 김유(1571 辛未生) : 문과(文科) 선조29년(1596) 정시 을과(乙科), 김집(1686 丙寅生) :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식년시 을과(乙科), 김문탁(金文鐸, 1718 戊戌生) : 문과(文科) 영조35년(1759)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32명이 있다. 문과 48명, 무과 9명, 사마시 75명이다.

현대 인물은 김종희(한국화학 설립자), 김종철(국회의원, 국민당총재), 김승연(한국화약그룹회장), 김호연(한양유통사장), 김채용(판사), 김상욱(판사), 김응열(판사), 김치걸(대법원판사), 김병철(국회의원), 김종식(국회의원), 김동환(부장검사), 김상초(변호사), 김이조(부장판사), 김일룡(법원장), 김승우(판사), 김진오(판사), 김상균(판사), 김동윤(판사), 김춘집(육군준장), 김상천(육군준장), 김광학(육군소장), 김성익(청와대공보비서관),

김상준(대통령경호관), 김명규(양산군수), 김삼석(곡성부군수), 김봉식(광주경찰서장), 김영봉(순천경찰서장), 김상우(안양교도소부소장), 김상현(보사부 보사국장), 김동수(농촌진흥청국장), 김희운(경제기획원 물가조정관), 김동연(전남대교수), 김주연(전남대교수), 김휘천(농촌진흥청연구관), 김두원(신경외과의원장), 김두희(경북대의대교수), 김광수(대구파티마병원 안과과장), 김정순(서울대보건대학원교수), 김상홍(단국대교수), 김광원(전남대교수), 김동소(효성여대교수), 김준현(조선대공대학장), 김정현(치과대교수), 김상화(치과의원장), 김재영(의학박사), 김윤수(의학박사), 김희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장), 김봉균(의학박사), 김희균(공학박사), 김칠연(순천수산협동조합이사), 김종호(순천김씨 대종회장), 김철희(국사편찬위원), 김재근(철도청서기관), 김병희(철도청서기관), 김길룡(철도청사무관)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0世 석(碩), 31世 흥(興), 32世 구(龜), 33世 준(俊), 34世 석(錫), 35世 민(敏), 36世 희(禧), 37世 장(章), 38世 우(祐), 39世 익(翼), 40世 진(鎭), 41世 원(源), 42世 상(相)이다.

주요파는 ▲전서공파 ▲지평공파 ▲묵재공파 ▲절재공파 ▲전직공파 ▲영주공파 ▲사예공파 ▲양경공파 ▲참의공파 ▲판사공파 ▲익찬공파 ▲정랑공파 ▲판서공파 ▲승지공파 ▲감찰공파 ▲군수공파 ▲횡성공파 ▲상의원정공파 등이다.

본관 순천(順天)은 전라남도 남동쪽에 위치하며 백제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으며, 983년(고려 성종 2) 지명을 순주(順州)·자주(慈州)·은주(殷州)로 고치고 각 주마다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곤해군절도사(袞海軍節度使)가 파견되고, 1012년(현종 3) 안무사로 고쳤다가, 1036년(정종 2) 다시 승평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부유현(富有縣)·돌산현(突山縣)·여수현(麗水縣)·광양현(光陽縣)을 속현(屬縣)으로 거느렸다. 1309년 승주목(昇州牧), 1310년 순천부(順天府)가 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도호부로 승격하여, 조선시대 동안 순천도호부는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1479년(성종 10) 속현이었던 여수현(麗水縣)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되어 전라좌도 해안방어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순천의 별호는 평양(平陽)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소속 순천군으로 개칭하고, 1896년 전라남도 순천군이 되었다. 1949년 8월 순천읍과 도사면 일부 해룡면 일부를 합하여 순천시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의 새로운 순천시가 되었다. 2003년 승주읍과 10면 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순천김씨(順天金氏), 순천도씨(順天陶氏), 순천박씨(順天朴氏), 순천설씨(順天薛氏), 순천심씨(順天沈氏), 순천안씨(順天安氏), 순천이씨(順天李氏), 순천임씨(順天林氏), 순천장씨(順天張氏), 순천정씨(順天鄭氏), 순천조씨(順天趙氏), 순천최씨(順天崔氏), 순천포씨(順天包氏), 순천현씨(順天玄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전남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 전남 해남군 계곡면 방춘리, 전남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내유리,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유능리, 경북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경북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평남 순천군 선소면 남포리 등이다.

전남 해남군 계곡면 방춘리 마을 뒤에는 입향조인 남은공(南隱公) 김효우(金孝友)의 묘소가 있다. 그는 세종 32년 19세로 문과에 급제했으며 문장과 덕망이 탁월하여 임금의 총애가 깊었다. 그러나 1453년(단종1년) 계유정난 때 낙담하여 정착하게 된 곳이 바로 이곳 청계(淸溪)다. 이 마을에는 그의 21대 손들이 살고 있다. 방춘리의 40여 호 가운데 35호 가량이 순천김씨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천김씨는 1985년에는 총 11,092가구 45,622명, 2000년에는 총 16,178가구 52,25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5천여 가구, 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483명, 부산 2,626명, 대구 3,314명, 인천 1,507명, 경기 5,819명, 강원 2,063명, 충북 1,126명, 충남 2,820명, 전북 2,017명, 전남 4,644명, 경북 5,291명, 경남 1,741명, 제주 171명이다. 서울, 경기, 경북, 전남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2,467명, 부산 2,658명, 대구 3,868명, 인천 2,626명, 광주 1,755명, 대전 1,475명, 울산 1,236명, 경기 11,410명, 강원 1,625명, 충북 1,323명, 충남 1,723명, 전북 1,698명, 전남 2,520명, 경북 4,370명, 경남 1,277명, 제주 227명이다. 서울, 경기, 경북, 대구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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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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