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재령 이씨(載寧李氏)-50,940명
(139)재령 이씨(載寧李氏)-50,940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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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우칭(李禹偁)은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른 뒤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재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우칭은 경주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이다. 경주이씨에서 분관한 것이다.

이 신(李申)은 고려 공민왕 때 사헌부 지평으로 이성계의 추대를 반대하다가 유배 도중 병사했다. 이 오(李午)는 고려가 망하자 경남 함안군 모곡리에 낙향했다. 고려 왕조 유민의 땅이라 해서 모곡리는 고려동이라 불렀다. 이맹현은 1549년(세조 5)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김해부사, 황해도관찰사, 예문관 부제학에 이르렀다.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무과에 올라 옥포만호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경상수군(원균)과 전라수군(이순신)이 처음으로 합동작을 펴서 옥포대첩을 거두는데 선봉장이 되었다. 임진왜란 후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고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올라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다. 또한 1607년(선조 40년) 북쪽 오랑캐들이 침입하자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이를 진압했고,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홍훈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를 도와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 등지에서 적을 물리치고 큰 공을 세웠다. 이 정(李瀞)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의병을 모집하여 진해, 창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의령현감,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뒤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숙종 조 이후 영남학파 중심인 남인과 기호학자 중심인 서인은 권력투쟁을 벌인다. 이때 영남학파를 대표한 인물이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다. 그는 숙종 때 공조참의, 예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의 명성을 높였다. 그는 퇴계 학통을 전승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숙종 15년‘기사환국’으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넘어온다. 그로부터 5년 후‘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 피비린내 나는 정치 보복이 일어난다. 이현일 또한 전라도 광양 등으로 유배되는 시련을 겪는다. 이후 남인은 조선조 말까지 집권과는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이현일의 아들 이 재(李栽)는 학자로서 1713년(숙종 39년)에‘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지어 간행했다.

이현일의 어머니 장씨 부인은 재령이씨를 빛낸 인물이다. 그는 장흥효의 딸로 태어나 이미 10여살 때 시서에 능통한 재원이었다. 재령이씨 후손인 이시명에게 출가한 뒤에는 내조와 자녀 양육에 힘써 7현자(賢者)를 길렀다. 요리책인‘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과‘장부인실기’가 전해진다. 이시명의 아들이자 이현일과 형제 간인 이휘일은 외조부인 장흥효의 문인이었다. 그는 상제의례의 제도와 절목(節目)을 상세히 연구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이맹현(李孟賢) : 문과(文科) 세조6년(1460) 춘당대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이 함(李涵, 1554 甲寅生) : 문과(文科) 광해군1년(1609) 증광시 병과(丙科), 이윤룡(李潤龍, 1776 丙申生) :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이유신(李有臣, 1824 甲申生) : 문과(文科) 철종9년(1858) 식년시 병과(丙科), 이 희(李憙, 1691 辛未生) : 문과(文科) 숙종45년(1719)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58명이 있다. 문과 15명, 무과 4명, 사마시 39명이다.

현대인물은 이규호(문교부장관), 이정오(과기처장관), 이대수(성균관대교수), 이균성(외국어대교수), 이용태(삼보컴퓨터회장), 이득룡(농림부차관), 이동훈(상공부제2차관보), 이성해(체신부공보관), 이문열(소설가), 이찬중(상일가구사장), 이일섭(새한미디어사장), 이현택(뉴욕상사사장), 이연호(남양알로에사장), 이병수(한주유조선사장), 이문섭(한국항만협회부회장), 이환균(청와대경제비서관), 이구섭(밀양군수), 이성호(부산시민도서관장), 이수갑(공군대령), 이병조(육군대령), 이영호(아동문학가), 이규홍(국회사무처과장), 이중섭(곡물협회 중앙회장), 이병희(전국서적연합회회장), 이저호(전국잠종협회회장), 이병옥(변호사), 이현정(사법서사회 마산지회장), 이현하(의병대장), 이병호(대법원 행정처장), 이병목(울진군수), 이태섭(공학박사), 이재호(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객원교수), 이갑섭(성균관대교수), 이상섭(서울대약대교수), 이병건(서울대교수), 이정인(서울대교수), 이사계(서울대교수), 이병창(성균관대교수), 이영호(연세대의대교수), 이상헌(연세대의대교수), 이건호(명지대교수), 이영호(충북대의대교수), 이장우(영남대교수), 이병휴(경북대교수), 이용율(인천교대교수), 이태호(부산대교수), 이병선(부산산업대교수), 이종호(창원대교수), 이수오(창원대교수), 이철호(진주농대교수), 이치호(부산대약대교수), 이상록(동아대교수), 이현환(진주농대교수), 이병춘(동아대교수), 이병수(순천향대교수), 이동웅(동국대교수), 이종환(동아대교수), 이동수(울산대교수), 이민희(인하대교수), 이병갑(안동대교수), 이서해(치과원장), 이병채(포항산부인과원장), 이병황(의학박사), 이현태(피부비뇨과원장), 이동룡(현대자동차서비스이사), 이동한(치과원장), 이병춘(이비인후과원장), 이용하(창원산부인과원장), 이태호(창녕교육장), 이원희(영남상고교장), 이 각(진양중교장), 이수곤(마산중교장), 이병준(창원고교장), 이상배(용문고교장), 이정섭(문공부문화재전문위원), 이승헌(영남학원재단이사장), 이일해(한학자), 이병화(국제농업인력개발원장), 이창호(우솔산업사장), 이연호(동양주택사장), 이정호(태원삼유사장), 이 돈(석천산업사장), 이용길(삼성중공업부사장), 이영환(미영사사장), 이병길(협성산업사장), 이병대(부산은행상무이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재령(載寧)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식성(息城)이라 불리었다. 907년(효공왕 11)에 안주(安州)로 고쳤다. 1217년(고종 4) 거란병의 침공을 막은 공으로 재령(載寧)으로 고치고 현으로 승격하였다. 1397년(태조 6) 풍주(豊州) 관하의 삼지현(三支縣)을 합하였다. 재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재령강씨(載寧康氏), 재령미씨(載寧米氏), 재령이씨(載寧李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 경북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경남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경남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장양리, 전남 광양시 진상면 등이다.

경북 영덕군 영해읍 창수면 인양2동은 영해파 문중이 4백70여 년 동안 가풍을 이어온 마을이다. 뿌리를 내린 인물은 고려 때 절신 이 오(李午)의 증손자요 성종 때 부제학을 지낸 이맹현(李孟賢)의 아들 이 애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마을의 산천 경관을 보고 반드시 큰 인물이 나올 형세라고 감탄하고 이를 시기하여 영해부(寧海府) 시리목, 쟁이골 등의 산맥을 끊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 애의 손자 이 함(李涵)이 인부를 동원, 산맥을 다시 이었고 그 후 이씨 문중은 당대 천석의 부를 쌓기 시작했고 여러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주요파는 ▲청도파 ▲밀양파 ▲함안파 ▲맹현파 ▲율간공파 ▲사의공파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재령이씨는 1985년에는 총 11,060가구 45,417명, 2000년에는 총 16,112가구 50,94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5천여 가구, 5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526명, 부산 10,875명, 대구 2,230명, 인천 1,078명, 경기 2,848명, 강원 637명, 충북 543명, 충남 537명, 전북 440명, 전남 793명, 경북 2,977명, 경남 15,911명, 제주 22명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훨씬 넘는 인구가 경남과 부산 지역에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7,244명, 부산 10,812명, 대구 2,644명, 인천 1,669명, 광주 163명, 대전 445명, 울산 1,649명, 경기 5,794명, 강원 616명, 충북 487명, 충남 472명, 전북 382명, 전남 663명, 경북 2,718명, 경남 15,078명, 제주 104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경남과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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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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