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신천 강씨(信川康氏)-44,259명
(149)신천 강씨(信川康氏)-44,259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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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강후(康候)는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우 강숙(康叔-이름이 아니고 시호임)의 둘째 아들이다. 강후는 기원전 198년에 평양에 들어와 왕실을 교화한 공으로 기자(고조선시대 기자조선의 시조)로부터 자신의 아버지 시호인 강숙(康叔)의 강(康)자를 사성 받아 강후(康侯)가 되었다. 그 뒤 고려 명종 때 80세손인 강지연(康之淵)이 신천에 살다가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신성은 신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다. 그래서 후손들이 신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북제주 조천서원에서 제향한다.

강지연의 6세손 강윤성은 고려 충혜왕 때 문하찬성사에 오른다. 그 후 태조 이성계의 장인이 되어 곡산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곡산으로 한다. 강윤성은 바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친정 아버지이다.

고려조에서 벌족이었던 신천강씨는 신덕왕후가 배출됨으로써 상산부원군을 비롯 현관과 봉작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신덕왕후 소생인 두 대군이 화를 입으면서 그 화가 강씨 일문에까지 미쳤다.

전라감사를 지낸 강영은 신덕왕후의 사촌 오라버니로 왕자의 난 때 제주도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다. 그 뒤 제주도에서 후손들이 크게 번창한다.

강윤성의 증손인 강순(康純)은 단종 때 회령 부사를 거쳐 판의주 목사를 지냈다. 세조 때 첨지중추원사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0년 여진정벌에 참가했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어유소(魚有沼)와 함께 공을 세워 적개일등공신으로 신천부원군(信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영의정에 올랐으나 남이의 옥사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이처럼 신천강씨는 왕자의 난과 남이 장군 역모사건에 휘말려 대대적인 탄압을 당하고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강곤(康袞)은 세조 때 정란공신으로 중추부사에 이르고 신천군에 봉해졌다. 다시 성종 때 익대공신이 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강중진은 어려서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우고 연산군 때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성주목사를 지냈다. 강중진의 손자 강유선은 명종 때 학자로 이름을 떨쳤고, 그의 아들 강복성은 노사신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인조 때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강칭(1542 壬寅生) : 문과(文科) 선조18년(1585) 식년시 병과(丙科), 강정하(康正夏, 1731 辛亥生) : 문과(文科) 영조32년(1756) 식년시 병과(丙科), 강열(康說, 1531 辛卯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식년시 병과(丙科), 강우량(康友諒, 1656 丙申生) : 문과(文科) 숙종22년(1696) 식년시 병과(丙科), 강시진(康時進, 1569 己巳生) : 문과(文科) 광해군2년(1610) 식년시 병과(丙科), 강국룡(康國龍, 1782 壬寅生) : 문과(文科) 순조14년(1814) 식년시 병과(丙科), 강신(康愼, 1782 壬寅生) : 문과(文科) 세종2년(1420)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강홍거(康鴻擧, 1855 乙卯生) : 문과(文科) 고종12년(1875) 별시 을과(乙科), 강문상(康文祥, 1733 癸丑生) : 문과(文科) 영조35년(1759) 식년시 병과(丙科), 강성로(康聖輅, 1701 辛巳生) : 문과(文科) 영조14년(1738)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5명이 있다. 문과 20명, 무과 2명, 사마시 40명, 역과 3명이다.

현대 인물은 강성익(남제주군수, 초대민선제주도지사, 남주고등학교설립자), 강우준(북제주군수, 제주도지사), 강봉균(국회의원), 강경옥(국회의원), 강문용(국회의원), 강명옥(군위.의성군수, 법제실장), 강봉식(고려대교수, 영문학), 강우호(이화여대교수, 국문학), 강명순(한양대교수, 기계공학), 강영희(연세대교수, 생물학), 강우철(이화여대교수, 문화사), 강현두(서울대교수, 신문방송학), 강상욱(미국우주과학연구소, 이학박사), 강이주(재미, 생물학교수), 강원채(국회의원), 강명채(삼성당출판사 사장), 강장식(변호사), 강대도(변호사), 강윤호(변호사), 강구제(변호사), 강용식(KBS보도본부장, 문공부차관), 강재양(참의원), 강민범(제주신문 부사장), 강신재(여류소설가), 강성원(국회의원), 강인규(한국화 초대작가), 강종권(경희대교수), 강한정(상업은행 상무), 강우혁(내무부 기획관리실장), 강우철(이화여대교수), 강용옥(무역진흥공사 수석이사), 강수언(제주대교수), 강홍빈(서울대교수), 강태선(화천군수), 강성집(의학박사), 강형욱(의학박사), 강탁(서울대교수), 강진화(언론인), 강종숙(세화여중 교장), 강인덕(정치학박사), 강정은(제주도교육감), 강기영(제주은행 상무), 강삼정(제주여고 교장), 강석범(제주상고 교장), 강경수(안국화재 전무), 강기수(한국중공업 상무), 강영문(삼성전자 이사), 강경진(현대산업개발 상무), 강금실(법무부장관, 변호사), 강도영(만화가), 강수호(서예가) 씨 등이 있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평강파 ▲해주파 ▲임천파 ▲강진파 ▲안주파 ▲임실파 ▲보령파 ▲제주파 ▲영변파 ▲정주파 ▲임피파 ▲평양파 등이다. 주요파】▲평강파 ▲해주파 ▲임천파 ▲강진파 ▲안주파 ▲임실파 ▲보령파 ▲제주파 ▲영변파 ▲정주파 ▲임피파 ▲평양파 등이다.

본관 신천(信川)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승산군(升山郡)이었고 고려 때에는 신주(信州)라고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두 지역 모두 중반군(重盤郡)에 소속되었고, 궁홀은 궐구(闕口)로 개칭되었다. 승산과 궐구는 태봉 때 또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전에 신주(信州)와 유주(儒州)로 개칭된 것으로 짐작된다. 신주는 995년(성종 14) 방어진으로 바뀌었다가 1012년(현종 3) 폐지되고 황주(黃州)의 속현이 되었다. 유주는 1018년 풍주(豊州)의 속현이 되었다가 1259년(고종 46) 문화현(文化縣)으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신천으로 개칭되어 현감을 두었다가 1469년(예종 1)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909년에 문화군과 병합되었다. 1952년에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노월면·산천면·용진면이 안악군으로 이관되었으며, 초리면·궁흥면의 일부를 송화군에 편입시키고 재령군 서초면의 일부와 삼천군 궁흥면·초리면·문화면의 일부를 통합해 군 영역을 조정하였다. 1953년에 재령군 용평리와 삼천군 덕천리의 일부, 1954년에 재령군 청천리의 일부, 1958년에는 벽성군의 온천리·도락리·냉정리·지남리가 이군에 이관되었다. 또한 1967년에는 온천리를 장재리로 개칭했고 온천리·송오리·원암리의 일부를 각각 분리·통합하여 온천리를 만들었다. 1977년에 봉황리를 새길리로, 석봉리를 새날리로 개칭하고 근로자리를 신설하였다. 신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신천강씨(信川康氏), 신천김씨(信川金氏), 신천신씨(信川申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북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신천강씨는 1985년에는 총 12,286가구 50,712명, 2000년에는 총 13,909가구 44,25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천8백여 가구가 늘었다. 반면 인구는 6천여 명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조사과정에서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를 보면 서울 12,420명, 부산 2,565명, 대구 1,641명, 인천 1,446명, 경기 4,776명, 강원 1,627명, 충북 999명, 충남 5,438명, 전북 3,868명, 전남 900명, 경북 2,631명, 경남 1,494명, 제주 10,907명이다. 제주도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9,552명, 부산 1,739명, 대구 1,901명, 인천 1,922명, 광주 319명, 대전 1,981명, 울산 654명, 경기 7,865명, 강원 1,081명, 충북 966명, 충남 2,414명, 전북 2,321명, 전남 336명, 경북 1,881명, 경남 712명, 제주 8,61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단연 제주도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전북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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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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