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회장-승부사인가, 곡예사인가
윤종규 KB회장-승부사인가, 곡예사인가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2.2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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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師父) 김정태 전 행장과의 인연..찬사와 비난은 한 순간 차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타고난 ‘승부사(勝負師)’인가. 아니면 노련한 ‘곡예사(曲藝師)'인가.

윤 회장이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선 이례적으로 경쟁사인 신한금융지주의 전 CEO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 실험이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랭킹 1위인 신한금융을 뛰어 넘어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하려는 윤 회장의 각오와 집념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2년 3월. 삼일회계법인에 근무하던 윤 회장은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집무실을 방문한다. 국민-주택 통합은행 인선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 전 행장은 윤 회장에게 "인사가 잘 안 풀리네. 오라는 사람은 안 오고"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천하의 김 행장께서 부르는데 안 오는 사람도 있냐"고 반문하자 김 전 행장은 "그게 바로 당신이야"라면서 윤 회장에 노골적인 영입 제의를 했다. 윤 회장은 이렇게 해서 국민은행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당시 김 전 행장이 윤 회장을 ‘삼고초려’해서 데려온 셈이다.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에 몸담고 있으면서 주택은행 미국 상장과 주택-국민은행 합병 등 현안에 대한 조언을 하며 김 전 행장을 도왔다. 그때마다 김 전 행장은 "와서 도와주면 안 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아줘"라며 끈질기게 부탁했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삼고초려를 한 끝에 제갈량을 얻듯이 김 전행장은 ‘숨은 보석’인 윤 회장을 발굴해서 ‘특별한 인연’을 맺었고, 결국 그가 뒷날 KB금융 수장에 오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이다.
 
윤종규 회장은 KB가 리딩뱅크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장사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줄곧 강조한다. 그를 KB로 이끌었던 '장사꾼 은행장' 김정태 행장으로부터 한 수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는 느낌이다. 외부 입김에 시달리지 않고 수익에 충실한 은행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KB가 개입과 간섭에 너무 익숙하며 ‘커머셜(commercial/수익 창출)’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윤 회장은 KB를 외부의 입김에 시달리지 않는 은행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인 주주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뜻이 있음도 내비쳤다.
 
이는 과거 김정태 전 행장이 골드만삭스나 ING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영권 안정을 추구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외국인 주주가 은행 이사회에 참여하면 외부의 입김이나 내부의 전횡을 견제하는 방어막이 된다. 윤 회장은 상고출신으로 은행에 들어와 결국 굴지의 금융지주 회장이라는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 회장의 굴곡많은 성공스토리를 보면서 필자는 그가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운 교육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그가 KB회장으로서 부디 성공을 해야만 이 사회의 약자들도 뭔가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윤 회장의 앞길이 마냥 순탄치는 않다는 사실이다. 윤 회장의 본격 업무는 사실상 올해부터 시작한다. 지난해 말 자회사편입승인신청서를 제출한 지 5개월 만에 금융위로부터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인수 가격 문제로 난항을 겪는 데다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추가 자금 투입도 불가피하다. LIG손보 인수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윤 회장은 스타일을 구겼다. 지난해 말 있었던 인천국제공항 은행·환전사업권 입찰에서 국민은행이 외환·우리·신한은행에 밀려서 탈락했다. 결국 인천공항에서 지점과 환전소, ATM을 철수하고 말았다. 국민은행은 2018년까지 인천공항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 윤 회장으로서는 자존심에 손상이 갔을 것이다. 우리나라 출입국 첫 관문에서 리딩뱅크를 꿈꾸는 KB국민은행의 로고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외견상 화려해 보이지만 한국에서 금융지주회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은행업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해 가는 가운데 정보통신의 발달로 핀테크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돈을 다루는 금융기관은 시한폭탄처럼 항상 사고의 지뢰밭이 곳곳에 널려 있다. KB금융은 작년 내분사태애서 보듯이 특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보다 정치권 동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외풍도 막아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적절히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보다 몇 배나 더 힘들게 일을 해야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올들어 지난 1월15일, 대법원은 '국세청이 국민은행에 부과한 4420억원의 법인세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는 2004년 국민은행 회계부정 사건의 결과였다. 부정회계로 감면받은 세금을 추징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억울하지만 당시 김정태 행장이 물러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1심, 2심에 이어 최종심까지 국세청의 무리한 과세임이 밝혀졌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리한 국세행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때 윤종규 회장(당시 국민은행 부행장) 등 상당수 임직원들도 징계를 받았다. 긴 세월 동안 '눈물젖은 빵'을 먹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금융기관 생활을 해온 윤 회장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되돌아 보면 지난 2004년 김정태 전 행장의 퇴진을 '찍퇴(당국에 찍혀서 퇴임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김 전 행장 이후 금융권의 스타 CEO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김 전 행장이 재임기간 동안 한 일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 중 하나가 지금처럼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관치(官治)에 맞선 금융CEO였다. 당시 그가 '동키호테'라는 소리를 들은 이유이기도 한다.
 
김정태 전 행장은 작년 초 세상을 떠났다. 윤 회장은 지금도 고(故) 김 전 행장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전한다고 한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은인으로 여기는 것일까. 윤 회장은 KB 수장에 내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김 전 행장의 묘소를 찾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 전 회장을 은행업계의 스승이자 멘토로서 생각하는 증거인 셈이다. 김정태 전 행장은 증권맨에서 국민은행이라는 대형 시중은행장으로 거듭난 화제의 인물이었다. 아울러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장사꾼’이었다. 국내에 'CEO 주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개념을 은행권에 처음 도입한 ‘스타 경영인’이었다. 
 
윤 회장이 지금 KB금융의 과감한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통해 박수를 받는 것은 모두 그 당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찬사와 박수가 내일엔 순식간에 비난과 손가락질로 바뀌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현재 윤 회장은 분명 금융권의 스타다. 윤 회장은 답답한 일이 생길 때 고 김 전 행장한데 자문하고 싶은 맘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박수를 받을 지 아니면 비난을 받게 될 지는 모두 윤 회장이 하기에 달렸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은행장이나 모두 화려한 자리이지만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자신이 쏜 화살이 즉각 되돌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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