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짜기'식 가계부채 정책 어디까지?
'쥐어짜기'식 가계부채 정책 어디까지?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3.0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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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구제보다 가계의 채무재조정 중요..'파격적인 조치'도 강구해야

 
만일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믿을 만한 사전 조짐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런데 사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들짐승이나 산속의 쥐떼들, 호숫가의 작은 동물들이 인간보다 이를 먼저 알고 대피한다고 한다. 이들 동물들에게는 인간한테는 없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어서 위험을 미리 알고 대피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재앙에는 거의 언제나 가계 부채의 급격한 증가라는 현상이 선행해서 일어난다-”. 지난 해 발간한 아티프 미안(프린스턴대)과 아미르 수피(시카고대) 교수의 공저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대불황이라는 경제적 재앙이 닥칠 때에는 거의 언제나 그보다 앞서 가계빚이 급격히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대침체가 글로벌 경제의 대지진이었다면 그것을 예고하는 뚜렷한 전조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주택담보대출 등을 가계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빚을 지며 만든 집들이 붕괴되면서 금융시스템은 무너졌고 이는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대침체기에 미국 주택 가치는 5조5000억달러가 날아갔다. 한 해 소득(14조달러)의 40%나 되는 손실이다. 금융위기 직전 7년 새 미국 가계부채는 두 배로 늘어 14조달러에 이르렀다. 당시 이른바 ‘묻지마 대출’과 깡통주택의 희비극은 이미 낱낱이 밝혀졌다. 이들 두 저자는 경제적 재앙에 대처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금융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라 가계부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올 초반부터 전셋값 급등과 대출금리 하락세가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해 1~2월보다 가계대출이 800%이상 폭증함에 따라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대출금리가 하락한 데다 매매가격을 수준으로 전셋값이 뛰고 있어 가계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금리 기조로 전세가 점점 월세나 자가보유로 대체되는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가계부채 증가세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매년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높아지고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부실 뇌관이 될 전망이다.
 
가계부채 위험신호는 그동안 줄곧 발동됐지만 지금은 최고조에 이른 느낌이다. 그러나 '다소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놨던 가계부채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그대로인지 궁금하다. 정말로 금융안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을 놓고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이어진. 거치기간 없는 원리금 분할상환을 전제로 하다 보니 대출 상환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리부담이 다소 완화된다고 해도 가계입장에서는 원금 상환 부담이 늘어난다. 따라서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특히 소득 하위 계층은 부담이고 소득 상위 계층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소득 상위 계층이 이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1천조 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 규모는 이미 한계점 또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우리나라의 가계의 부채 감당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2013년 기준 160.7%를 기록, 미국(115.1%)이나 OECD 평균(135.7%)을 능가했다. 가계대출의 급증은 주택거래의 증가와 맞물려 있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금리가 떨어지자 주택 구입을 위한 은행 대출 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이처럼 빚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 주택시장은 비수기임에도 활기를 띠고 있다. 결국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를 가계빚 증가로 뒷받침하고 있는 꼴이다. 그만큼 가계발 금융부실의 위험도 더욱 커졌다.
 
문제는 정부기 지금 상황을 정책적 효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자는게 최경환 경제팀의 일관된 정책기조였다. 지난 해 월평균 가계부채 증가 추이를 보면, 7월까지는 3조원 남짓이었다가 최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뒤에는 8조원으로 급증했다. 가계부채 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작 큰 문제다.
 
지진이나 쓰나미기 밀어닥칠 때 대책을 강구하면 늦는다. 미처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밀어닥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금융 위기나 실물경제의 위기로 나타나면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성장률이나 가계소득의 증가 범위 안으로 총량을 억제하겠다는 원칙아래 세부적으로 정교한 실행 방안(contingency plan)을 마련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부채 상환능력 개선은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금융기관을 쥐어짜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오는 24일부터 변동금리·거치식 대출을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해주는 2%짜리 '안심전환대출' 상품이 출시되는 것을 비롯해서 우리은행에선 아예 1%짜리 주택담보대출을 내놓기로 했다. 이 모든 저금리대출이 은행들보다는 정부당국의 종용이나 압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대 안심전환대출 상품으로 은행당 최고 500억원의 손실을 볼 전망이라고 한다. ‘쥐어짜기’식 가계부채 대책이 빚은 ‘부산물’이라고나 할까. 은행들로서는 앉아서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당국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고 이야 말로 ‘울며 겨자멱기’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 서민들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소비위축이 장기화하는 조짐이다. 레버리지(leverage/부채비율)가 높은 가계일수록 집값이 떨어질 때 소비를 더 크게 줄일 수 밖에 없다. 지난 2000년 기술주 거품이 꺼질 때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5조달러나 줄었지만 가계 지출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시 기술주에 투자한 이들은 부채가 거의 없는 최상위 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2007년 주택 거품 붕괴 때는 순자산이 적었던 가계가 급격히 소비를 줄였다. 원래 가난했던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말았다.
 
불황에서 벗어나려 빚을 더 늘리는 것은 마치 '숙취를 해소하려 해장술을 마시는 격'과 같다고 한다. 은행 구제보다는 가계의 채무 재조정이 중요한 이유다. 채권자의 동의 없이 채무자가 살고 있는 집의 담보대출에 대해 파산법원이 채무 재조정을 해주는 파격적인 조치도 필요하다고 ‘빚으로 지은 집’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계빚이 무려 1200조원을 웃도는 한국에선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비롯해서 한은의 이주열 총재는 물론 정부의 최경환 경제팀이 정말로 정신을 차려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배가 가라앉으면 채무자는 물론 한 배를 타고 있는 채권자도 나라도 모두가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탓이다.
 
빚은 늘 채무자에게만 위험을 지운다. 집값 하락의 충격은 고스란히 주택소유자에게 떨어진다. 보험은 위험을 분산시키지만 빚은 위험을 증폭시킨다.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지렛대 효과'처럼 증폭된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가계채무가 단순히 빚의 문제가 아니라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분배문제로 비화해서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나 금융 당국의 정책관리를 ‘비상사태’ 수준으로 해야 할 때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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