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과 국무총리
영의정과 국무총리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5.0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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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권한 애매모호..문제는 청와대 인사능력 및 검증시스템 부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바로 영의정이나 국무총리의 자리이다.

우리가 영의정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사람은 황희 정승이다. 조선 제일의 청백리 관료였다. 원래는 고려 말에 급제했다. 하지만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했다. 조정과 동료들의 계속적인 입조 요청으로 과감히 과거의 집착을 버리고 현실을 수용해 이성계 정권에 합류하게 됐다. 6조의 판서를 모두 역임하고 20여년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선초기의 국가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황희 정승은 오늘날까지도 청렴의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맹사성과 함께 청백리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이다. 하지만 그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았다. 60여년의 관직 생활중 두 번이나 좌천되고, 세 번의 파직, 서인으로 강등되기를 한번, 귀양살이 4년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선시대 영의정은 모두 170명이었다. 이 가운데 최장수 영의정이 황희였다. 그는 태종이 3남을 후계자로 세울 뜻을 품고 있을 때 “장남 양녕대군을 올리셔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유배됐다. 어찌보면 왕위에 오른 세종과는 정적(政敵)관계였던 셈이다.
 
그러나 세종은 그를 불러들여 무려 18년이나 영상의 자리를 지키게 했다. 당시에는 `영의정의 권한`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좌의정은 이조, 예조, 병조판서를 겸했고, 우의정은 호조, 형조, 공조판서를 겸임했으나, 영의정은 서열만 높을 뿐이었다. 자리는 제일 높으나 하는 역할이 없었다. 그래서 세종은 황희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영의정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앞으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국사를 협의해서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제대로 된 영의정의 역할이 만들어졌다.
 
황희는 ‘청백리’의 표상으로 여겨지지만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기도 했다. 대사헌 시절 금을 뇌물로 받아 ‘황금 대사헌’이란 별명을 얻었고, 사위의 죄를 면해 달라며 청탁을 넣었다 들통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는 “너도 옳고, 너도 옳다” 하는 우유부단함이다. 역시 실제와는 괴리가 있다. 그는 “그른 것도 옳다 하고 옳은 것도 그르다고 한다면 어찌 폐단이 없겠냐”며 왕이 압박하던 정확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다.
 
황희는 요즘 말로 하면 ‘행정의 달인’이었다. 그는 56년동안 관직에 있었고, 이 가운데 24년간 재상직을 맡았다. 18년은 영의정을 지냈다. 이 시간은 조선이 건국된 뒤 태종, 세종을 거치면서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전성기를 이끌던 때와 겹친다. 재상으로서 왕과 신하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래서 황희는 회의에서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영의정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거나, 아부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황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두루 듣고 마지막에 종합해 의견을 개진했다. 각종 정책의 완급을 조절하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의연함과 과단성을 발휘해 4군6진의 개척 같은 성과를 뒷받침한 것은 그래서 가능했다. 고려와 중국의 국가 제사 제도를 상고해 조선 고유의 제도로 정착시켰다. 외교에서 명과의 미묘한 문제를 원만히 처리한 것도 황희였다. 또 종도 다같은 임금의 백성이라며 모든 백성에게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허락했던 진정한 인간주의자이기도 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취임 두달여 만에 불명예 퇴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또 다시 ‘총리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는 이른바 ‘총리 잔혹사’로 불린다. 집권 3년차에 벌써 5명의 총리 후보자가 지명됐고 2명 만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그나마 중도에 낙마하지 않은 사람은 정홍원 전 총리가 유일하다. 낙마사유로 가장 많이 거론된 건 ‘돈 문제’와 ‘도덕성 논란’이다. 총리 후보자 5명 중 3명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다.
 
1948년 건국 이래 대한민국에는 39명의 국무총리가 나왔다. 김종필, 고건 전 총리 등 4명이 두 번 총리로 재직했기 때문에 차기 총리는 44대 총리가 된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수행을 할 수 없을 때 권력 승계 1순위인 국무총리는 국정의 2인자로 불리지만 헌법상 규정은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統轄)한다’(제86조 2항)고만 돼 있다.
 
우리 헌법에는 부통령 제도가 없다. 우리의 국무총리 제도는 의원내각제의 총리와 같은 행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첫째 기능이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국무총리를 미국식 대통령제에서는 비서실장 정도의 자리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만큼 대통령제 아래서 위상이 제약적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국무총리는 정부 안에서 2인자이면서도 사실은 매우 어정쩡한 자리다. 조용히 있으면 한없이 무력하고 조금 튀기라도 하면 곧바로 권력자의 눈밖에 나기 십상이었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대쪽총리’로 불렸던 이회창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북(對北) 관계와 관련해 정부 내에 설치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내용이 총리를 거치지 않고 보고되는 사례에 불만을 토로하는 등 YS와 갈등을 겪은 끝에 4개월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청와대 비서진은 이회창 전 총리가 YS의 중국, 일본 방문 당시 국방부와 일선 부대를 시찰하고 지휘관으로부터 정식보고를 받은 사실을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낙마한 이완구 전 총리가 취임 직후 전직 대통령을 예방하고 전방에 가서 안보태세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며 청와대와 친박(親朴) 핵심들이 “안방 살림 잘 챙기라고 뽑아놨더니 ‘오버’한다”며 불편해 했다는 후문과 묘하게 겹친다. 이명박 정부 때 첫 총리였던 한승수 전 총리는 직을 떠날 당시인 2009년 9월 기자들과 만나 “총리는 자기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와 튀지 않는 행동 때문에 ‘용각산 총리’(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불리기도 했다.
 
재임중 ‘스트롱맨’으로 군림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권력스타일이다. 특히 국무총리 자리를 이용해서 ‘자기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기용하지 않는 용인술의 소유자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던 이완구 전 총리는 이임식에서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총리취임 후 정치적 야심을 드러냈던 그가 재임기간 63일이란 최단 총리 기록만큼 짧고 초라한 퇴장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총리 수난사’를 접고 국정이 안정궤도를 찾아야 한다. 한국의 국무총리를 ‘닭갈비(鷄肋)’같은 자리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같은 신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유고나 궐위시 국무총리는 국정대행 1순위의 막강한 위상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것이다. 현행 국무총리 제도의 허점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인사검증을 뚫고 지나갈 사람을 잘 선택하는 일이다.
 
현재도 국무총리의 권한이 애매모호한 것은 물론 운용상 허점이 자주 노출되는 것은 맞다. 이는 헌법과 제도의 문제다. 역대 정부에서 보듯이 국무총리는 영광보다는 수난의 자리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나는 총리 잔혹사의 근본원인은 인재채용의 근시안과 ‘그릇이 안되는 사람’을 계속 지명하는데 있다. 지금 우리의 국무총리 문제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인사능력 및 검증시스템 부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탓이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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