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병 1년-이건희 회장 용태와 삼성의 자세
와병 1년-이건희 회장 용태와 삼성의 자세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5.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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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없다" 발표와 달리 “이 회장 사진 한 장 본적이 없다니. 왜?”

 
과거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의 국가원수인 네오니트 브레주네프(1906~1982)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들은 브레주네프가 묵었던 호텔 방의 아래층 방을 몰래 빌렸다고 한다. 이는 브레주네프의 화장실 변기에서 내려오는 대변을 몰래 채취, 검사한 뒤 그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소련의 지도자가 언제 죽을 지를 안다면 첩보전에서 대단한 승리였던 때문이다. CIA는 뒷날 이 공작이 성공했다고 쓰고 있다.

조선시대 승정원 업무 지침서인 은대조례(銀臺條例)에는 왕의 건강에 관한 사항을 절대 외부로 누설해서는 안되는 1급 비밀 사항으로 규정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건강상태는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국가 1급 기밀·보안 사안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아프거나 병에 걸리더라도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비공개에 부치는 것을 불문율로 해왔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 신변에 관한 사항은 국익이나 국가의 안위, 외국인 투자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대통령의 약점이랄 수 있는 좋지 않은 건강상태가 낱낱이 공개될 경우 국민들은 불안해할 수 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할 경우 휴가 기간이나 연휴를 이용하는 게 관례였다. 그만큼 대통령들은 자신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때는 대통령의 대·소변 상태도 1급 비밀에 해당한다고 한다. 주치의가 대통령의 대·소변까지 수거해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꼼꼼히 체크를 한다고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 지 10일로 꼭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외부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잊을 만하면 건강 이상설 등이 나돌지만 삼성그룹 측은 “이 회장의 건강에는 변화가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위중했던 이 회장의 건강은 현재 심장과 호흡 기능이 모두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등 크게 나아졌다고 한다. 입원 2∼3개월 만에 인공호흡기를 뗐으며 하루 15시간 이상 깨어 있으면서 주변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앉아 재활운동을 할 정도로 회복했다는 게 삼성그룹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 인지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군가 말을 하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고 주변 자극에 반응하고 있지만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의료진은 시기를 장담할 수 없지만 이 회장의 인지능력 회복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꾸준한 운동과 금연 등 건강 관리 덕분에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 회장이 주위 자극에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최대 19시간씩 깨어 있고 휠체어를 탄 채 병실을 이동하는 등 재활 치료 중이란 게 삼성의 공식 설명이다.
 
인지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평소 이 회장이 즐겨 보던 영화나 스포츠 중계 녹화 장면도 보여주고 있다. 병실을 집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익숙한 환경으로 가면 병원보다 인지능력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료진의 권유 때문이다. 의료진은 이 회장이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한 데다 담배도 끊은 지 오래돼 의식 회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인지능력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인사를 하면 가끔씩 상대와 눈을 맞추거나 외부 자극에 손발을 움직일 정도”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상태와 치료 내용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생활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10일 심혈관을 넓혀 주는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20층 VIP병실에 입원 중이다. 그러나 병실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돼 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 취재진도 일체 접근을 못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그룹 측의 공식 해명애도 불구하고 잊을 만 하면 이건희 회장의 사망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이 회장이 투병에 들어간 뒤 이른바 '이건희 사망설'은 끊이지 않았다.
 
5월 중순에는 '사망했다'는 한 온라인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8월에는 한 달간에만 몇 번이나 사망설이 대규모로 퍼졌다. 내용도 항상 비슷하다. '언론사들이 사망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공식적인 장례절차 준비에 들어갔다', '삼성 수뇌부들이 삼성서울병원에 집결했다'는 식의 루머다. 기자들도 매번 모르는 이야기다. 삼성 최고위 임원들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그때마다 이런 소문은 엄청나게 빛의 속도로 번져나간다.
 
이 회장과 관련해서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매체와 기사는 ‘아시아엔’이 다룬 사망기사다. 아시아엔은 삼성그룹 내부 취재원의 제보를 근거로 작년 5월 16일 이 회장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낸 바 있다. ‘사실무근’이라는 삼성 측과 시시비비에 휘말렸던 이 기사는 지난 해 12월 31일까지 내리지 않고 버티다 “이건희 회장의 사망을 입증할만한 추가 정보를 더 이상 입수할 수 없다”며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시아엔은 삼성이 사망설을 공식 부인한 이후에도 7개월 가까이 정정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또한 이상기 아시아엔 대표는 지난 10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 사망 기사는 오보가 아니었고 팩트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재차 밝혔다.
 
7개월여 동안 이 회장의 별세를 입증할 만한 추가 정보를 더 이상 입수할 수 없어 내부 검토와 숙고 끝에 기사를 철회하기로 했으며 삼성의 외압은 없었다는 게 아시아엔의 설명이다. 아시아엔은 “본래의 최초 기사를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본인과 가족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며 “이 기사의 궁극적 진실성에 앞서, 엄중한 사실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 정직한 태도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회장과 가족께도 진심으로 송구함과 함께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으나, 해당 기사의 팩트에 대해서는 사실상 철회하진 않았다. 이는 즉 이회장의 사망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국가원수나 세계적인 유명 인사의 건강 관련 소식 등 에피소드는 주로 퇴임 후 당시 담당 주치의의 입을 통해 극히 제한적으로 알려지는 정도다. 김대중(DJ)·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재임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적이 있지만,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특히, 고령으로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건강 이상설'에 휘말린 DJ는 대통령 후보 등록 직후 건강검진 결과를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MB는 재임 시절에 아예 최측근에게조차 발병 사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최근 회고록을 통해 알려졌다.
 
브레주네프같은 옛 소련시절 국가원수와 모택동, 등소평과 같은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는 죽은 뒤에도 한동안 이를 공개하지 않다가 후계구도와 장례준비가 된 다음에야 공식 발표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안다. 이 회장이 병상에 든 지 1년동안 부진한 경영성과와 미래의 성장동력 부재 등 삼성이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 최고경영자의 안위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국민들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회장의 입원 1주년을 맞아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삼성의 주장대로 이 회장이 회복 추세에 있다면 최근 재활치료를 하는 사진이든 다른 병상의 모습이든 무엇이든 좋으니 근황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라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 회장 입원 이후 정확한 용태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 증거가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포털사이트에는 네티즌들이 “이건희 회장 사진 한 장 본적이 없다니. 왜?” 라는 제목으로 쓴 글들이 많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건강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 최고 재벌이자 글로벌 기업의 리더인 이건희 회장의 건강과 용태 문제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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