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탄생의 전제조건
'KEB하나은행' 탄생의 전제조건
  • 안규식 상임위원
  • 승인 2015.05.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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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은행 역사는 '승자독식'..김정태 회장 '진정성 담보'가 먼저

 
조상제한서(朝商第韓서)-.

지금 젊은 세대들에겐 잊혀졌을 지 모르나 과거 5대 시중은행이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의 기억속 이름들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IMF) 후 우리나라 은행권들은 이른바 '헤쳐모여'를 가속화했다. 삼국지연의 식 합종연횡으로 은행권을 대표하던 이른바 '조상제한서, 즉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은 모두 신흥 강자와 외국 자본에 피인수됐다. "조상제한서의 실종은 그만큼 피인수은행의 이름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맏형‘ 격이었던 조흥은행은 지난 1897년 설립, 국내 '최고(最古)'를 다투는 은행이었지만 신한은행에 인수된 뒤 2006년 4월 통합 신한은행의 출범과 함께 '조흥' 이름을 잃게 됐다. 신한은행은 2005년 말 통합은행 명칭 결정을 위해 대규모 설문조사와 전문기관의 브랜드 가치 조사 등의 사전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신한' 브랜드의 경제적 가치가 조흥보다 높고 고객들도 신한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선호한다"며 신한은행으로 통합했다.
 
당시 조흥은행 노조의 저지투쟁과 전직 조흥은행장들로 구성된 '행명 지키기 운동본부'까지 발족돼 반발했다. 하지만 존속법인을 조흥은행으로 두는 선에서 합의했다. 지난 2005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에 인수된 제일은행은 'SC제일은행'으로 명칭을 바꾸며 '제일' 이름을 살렸다.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의 '에스씨(SC)'와 '제일은행'을 합친 것이다. 스탠다드차타드(SC) 그룹에 인수됐다는 점을 알리는 동시에 1958년부터 사용해 온 '제일'의 브랜드가 군내에서 갖는 위상을 함께 취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2011년 제일 명칭은 결국 사라지고 SC은행이 됐다.
 
이보다 앞서 1999년 한 몸이 된 상업·한일은행의 통합명은 어느 쪽도 아닌 '한빛은행'이었다. 당시 상업·한일은행 1998년 말 공모를 통해 6개를 선정한 뒤 선호도 조사와 법률자문 등을 거쳐 한빛을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한빛은행은 3년 후인 2002년 '우리은행'으로 개명했다. 당시 다른 은행들은 반발했다. 어느 은행이나 자기 은행을 '우리' 은행이라 불러, 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감독당국은 이를 허락했다.
 
이같은 우리은행 명칭 논란은 경쟁 은행들의 상표권 명칭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결국 다른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패소 후에도 우리은행은 이 명칭을 지금까지 사용중이다. '상표 등록 관련한 소송이기 때문에 행명 사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2001년 합병한 국민·주택 통합은행의 합병 후 상호는 '국민은행'과 과 'Kookmin Bank'가 됐다. 통합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명칭이 '주택' 명칭보다 더 넓은 업무영역과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이라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나금융지주가 하나·외환은행의 통합 후에도 '외환'이나 영문 명칭인 'KEB'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외환은행 노동조합에 제안했다고 한다. 하나금융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하나금융이 '외환 또는 KEB 포함'을 약속한 바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법원에서 재판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한 제안이다. 하나·외환은행의 통합명 후보로 '하나외환은행' 또는 'KEB하나은행', '하나KEB은행' 등이 나온다. 해외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 등을 고려할 때 KEB를 존속하는 방안이 낳을 수도 있다.
 
문제는 노사협의 과정에서 이 제안약속이 지켜질 것인가에 있다. 그동안 하나금융과 외환노조의 협상과정에서 양측은 서로를 믿지 못하며 ‘불신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선 협상과정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될 지를 속단하기 어렵다. 과거 국내 은행간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피인수은행 명칭을 유지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하나금융의 제안내용은 최근 법원에서 열린 하나·외환은행 통합절차 중단 가처분 결정의 이의신청 사건에서 확인됐다.
 
하나금융측으로선 조기통합에 반대하는 노조를 설득하고, 피인수은행인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제시했을 공산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조를 달래는 이러한 ‘당근(carrot)’이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그동안 '채찍(stick)'을 휘두르다가 노조가 한눈을 파는 동안 슬쩍 제시한 당근이라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노조를 잠시 달래는 ‘양동작전용’이라면 진심어린 카드일 수 없다.  어설픈 타협안은 아예 제시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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