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마, 중동’
‘내가 가마, 중동’
  • 이도선
  • 승인 2015.05.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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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칼럼> # 연봉 1억500만~1억6천만 원 / 특별급여와 성과급 / 자녀교육비 / 의료비 / 자동차·유류비 / 연 42~45일 휴가와 본인·가족 항공권 / 가구비 / 이주비 / 퇴직금....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KNPC)의 채용 조건이다. 꽤 매력적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Aramco)도 결코 못지않다. 1억대를 훌쩍 넘는 연봉과 각종 수당 전액 면세에 야근도 없고 방 4개짜리 호텔급 숙소와 자녀 5명의 교육비(미국·영국 기숙학교 학비는 90%까지)가 제공된다. 연 36~56일 휴가에 비즈니스 항공권을 주고 정년(60세)이면 퇴직금이 20억 원에 육박하니 노후 대책도 그만이다. 종합에너지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아람코는 엔지니어, 재무·회계 실무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을 국내에서 수시로 뽑는다. 대개 7~8년 경력직 대상이지만 이런 처우를 국내에서 받으려면 적어도 대기업 임원은 돼야 한다.

  
뜬금없는 중동 얘기는 얼마 전의 박근혜 대통령 발언 패러디 소동(?) 때문이다. 중동 순방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청년 취업 문제를 국내에서만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청년들의 중동 진출을 ‘강추’했다. 중동의 ‘석유 이후 전략’과 우리의 ‘경제 3개년 계획’이 서로 걸맞게 연대되는 건 ‘하늘의 메시지’라며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물으면) 다 중동 갔다고 (할 정도로)”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그러자 인터넷이 난리 났다. 땀과 모래로 뒤범벅된 밥알을 씹던 아버지 세대의 생고생을 또 하라는 게 기껏 짜낸 청년취업대책이냐는 힐난이 빗발쳤다. 아무리 청년실업률이 10%도 넘는다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일부 논객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니가 가라, 하와이”란 대사에 빗대어 박 대통령보고 “니가 가라, 중동”이라고 쏴붙였고, 언론은 멋모르고 이 고약한 표현을 줄줄이 제목으로 뽑았다. 합당한 근거도 없이 현직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몹쓸 짓에는 ‘조·중·동’이고 진보 언론이고를 안 가렸다. 1인당 국민소득 800달러 때 인력 송출을 3만 달러 시대에 일자리 정책으로 들이미는 발상이 “황당하다”는 조롱에서 “가족과 생이별하고 IS라도 가입하라는 거냐?”는 거친 비아냥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날을 세웠다.

  
정말 황당하다. 아직도 1970년대 중동을 떠올리다니.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됐지만 ‘중동의 뉴욕’ 두바이는 서울은 저리 가랄 최첨단 도시다. 두바이공항은 세계 최대 허브 공항이고, 삼성이 지은 세계 최고층건물 버즈 칼리파와 인공섬의 초호화 리조트 팜주메이라 등은 관광객들의 끊임없는 찬탄을 자아낸다. 아부다비, 도하 등 다른 중동 도시도 정돈된 거리와 안전한 치안은 기본이고 실내에선 웃옷을 걸쳐야 할 만큼 냉방이 팍팍 돌아간다. 불타는 사막에서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던 과거 노무자들을 연상했다간 큰 오산이다. 싸구려 인력 송출은 당치도 않다. 운전기사 월급이 100만 원 안팎이고 건설인부 일당은 4~6만 원으로 국내의 30~50%밖에 안 되니 누가 가겠는가. 이런 단순 노무직은 저개발국들 몫이고 우리의 관심은 애오라지 전문직이다.

  
막강한 ‘오일 달러’로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원자력 등 첨단 업종과 의료, 보건, 관광 등 서비스업 육성에 힘쓰는 중동의 산업다각화 정책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마침 우리가 경쟁력 있는 분야들이어서다. LG, 삼성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좋은 평판과 한류의 대중적 인기로 형성된 ‘한국 프리미엄’도 빼놓을 수 없는 긍정적 요소다.

  
성과는 벌써부터 만만찮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원전 현장에 파견된 2400명 말고도 5년간 1조 원 규모의 왕립병원 위탁 경영을 따낸 서울대병원이 의사 등 300여 명을 보냈고, 한화가 순천향병원과 함께 수주한 2억 달러짜리 이라크 비스마야종합병원도 건설과 의료 인력이 상당수 필요하다. 카타르항공과 에미리트항공의 한국인 승무원과 정비사가 수천 명에 이르고 연 1200조 원 규모의 할랄시장도 한국 기업들에 손짓하는 등 중동의 인력 수요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쯤 되면 ‘니가 가라, 중동’이 아니라 ‘내가 가마, 중동’을 외칠 판이다. 혹독한 취업난이 아니라도 도전장을 내밀어 봄직하다는 얘기다. 기후, 음식, 문화가 안 맞아 힘도 들겠지만 젊은데 뭐가 두려운가. 그리고 청년들이 나갈 데가 어디 중동뿐이랴? 5대양 6대주로, 그리고 유엔이든 IMF든 국제기구로 닥치는 대로 나가야 한다. 그게 젊음의 특권이고 국운 융성의 지름길이다.

  
“아, 나도 10년만 젊다면...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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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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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나오네 2015-05-30 18:01:45
그럼 당신이 가세요. 어이가 없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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