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노조와 '노동 귀족'
은행노조와 '노동 귀족'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5.05.23 23:57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조간부들 존경받으려면 '특권의식' 내려놔야

 
한국의 금융노조운동은 나름대로 역사성이 있다. 지난 1960년 4·19 직후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 노동자들이 금융민주화와 자신들의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추진한 노조결성 운동이 바탕이다.

자유당 정부는 1956년을 전후하여 은행민영화의 구실 아래 귀속재산으로 소유하고 있던 은행주식을 몇몇 재벌에게 불하했다. 이 때문에 자유당 치하의 은행들은 자유당 정권의 정치자금 조달창구로서 부정대출 등 부조리한 운영을 강요당하게 됐다. 독재정권의 자금원으로서 부조리한 금융운영의 하수인 노릇을 해야 했던 것이 바로 은행원들이었다.
 
금융질서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는 자유당 정권의 붕괴와 함께 곧바로 노조결성운동으로 나타났다. 60년 6월 1일 조흥은행 노동조합의 결성을 필두로 8일에는 한국상업은행이, 11일에는 제일은행과 한일은행이 각각 노조를 결성했다. 5월 28일에는 대한증권거래소 노동조합, 6월 18일에는 제일생명보험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등 금융계 노동조합 결성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마침내 단위노조를 기초로 한 상향식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7월 23일 ‘전국은행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됐다.
 
우리나라에서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 은행원들이 각 은행에서 주요 요직에 몰려있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특히 이들은 위원장 임기 만료 직전 원하는 보직을 정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만둔 뒤에도 여전히 노조의 중요업무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외환노조의 김지성 8대 노조위원장, 김기철 10대 노조위원장은 현재 노조대표 자격으로 하나금융과 대화를 위한 실무협상단으로 활동한다. 4명의 외환노조측 대표 가운데 3명이 전현직 노조위원장이다. 김기철 전 위원장은 지난 작년 초부터 금융노조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현재는 '조사역'이란 직급으로 외환노조 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 2009년 노조위원장을 그만둔 김지성 전 위원장 역시 강남대로 지점장, 원주지점장, 성수역 지점장을 거쳐 올 초부터 노조 협상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김국환 전 노조위원장이 2013년 초 유주선 위원장에게 직을 물려주고 북경왕징지행장으로 발령받았다. 해외점포로 직행한 케이스로 약 3년간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다. 유강현 KB국민은행 전 노조위원장도 노조위원장 임기 만료 후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일하다 다시 국민은행으로 돌아와 현재 우면동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병권 전 국민은행 위원장은 현재 인재개발부 조사역으로 장기 대기 발령 상태인데, 일정기간 연수를 마친 후 지점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7년부터 김창근 노조위원장이 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전인 이태수 전 노조위원장은 올해 영업기획본부 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2008년 등촌동 지점장으로 부임한 뒤 2011년 반포남 지점장, 2014년 퇴직연금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임혁 우리은행 전 노조위원장 역시 작년 1월 박원춘 위원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대치북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노조위원장이 3년 간 협업에서 물러나 3년 간 직원들을 위해 헌신했다는 부분에서 어느정도 보은 차원의 인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권력·지위 등을 활용해 각종 '특혜'를 누리는 이름표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노조위원장들은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 실적이 좋은 지점이나 해외근무 등을 사측과 우선 협의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귀족(labor aristocrat)이란 말이 있다. 일반 노동자보다 고액·고율의 임금과 높은 지위를 얻고, 생활양식이나 의식구조가 부유층과 같아진 특권적인 노동자층을 말한다. 이 가운데 특히 의회 및 기타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 등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거나 보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지배계급에 협력하는 관료화한 노동조합·사회민주주의 정당 등의 간부는 노동관료라고 한다. 노동귀족의 전형은 산업자본시대 영국에서 볼 수 있었다. 이는 일부 숙련공층이나 감독직에 있는 자가 자본가에게 매수되는 형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일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우익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국가나 공공단체의 의원·임직원 등이 되어 자본가와 협력하는 경향이 많았다.
 
지금 시중은행의 노조 임원 출신들은 거센 구조조정 등에도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임기 후 영업점에 나가서도 너무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금융노조 활동이 정치성을 드러내는 꼴이다. 해방 후 격동의 시대를 거쳐 태어난 한국의 금융노조는 4.19 후 결성된 노조 중에서는 유일하게 군사통치기간에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금융민주화라는 초기의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이후 노동운동에서 정치성을 배제한 덕이다.
 
은행 노조간부들이 금융기관 안팎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으려면 노조의 특권의식을 먼저 내려놓고 정치성향을 배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