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 임원 보수 공개가 의무화된 이후 30대 재벌그룹 총수들이 평균적으로 계열사 세 곳 중 한 곳의 등기 임원직을 사퇴했다. 재벌 총수들이 연봉 공개를 고의적으로 회피하면서 경영 투명성을 확립한다는 입법 취지가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재벌닷컴은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의 등기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달 말 기준 총수가 등기 임원으로 등재된 곳은 78개사로 2013년 108개사보다 27.8% 감소했다고 30일 밝혔다. 같은 기간 총수를 포함한 전체 친족(사촌 이내) 등기 임원 등재 계열사도 275개사에서 204개사로 25.8% 줄었다.
삼성, SK,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신세계, LS, 대림, 미래에셋 등 9개 그룹 총수는 계열사 등기 임원을 한 곳도 맡지 않았다.
총수 일가의 등기 임원직 사퇴는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등기 임원 보수 공개가 법제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보수 공개 의무가 없는 미등기 임원으로 직위를 변경했지만, 경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미등기 임원이 되면서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은 더 낮아졌다. 큰 적자를 내게 한 총수가 수십억~수백억원의 연봉을 받아가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도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삼성전자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은 미등기 임원이다. 이부진 사장만이 2011년 호텔신라 대표이사에 올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002년 신세계 등기 임원에 올랐다가 보수 공개를 앞둔 2013년 미등기 임원이 됐다.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을 비롯해 친족 중 누구도 계열사 등기 임원을 맡지 않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모든 계열사 등기 임원에서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