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과 노동개혁
재벌개혁과 노동개혁
  • 정종석
  • 승인 2015.10.0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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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공방 자제하고 솔선해서 개혁 나서야

[정종석 칼럼] 세상의 모든 일은 돌고 돈다. 어떻게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할 수도 있다. 죽을 것만 같은 위기를 겪은 다음 오히려 기회를 잡은 사람도 있고, 절체절명의 곤경을 겪다가도 전화위복으로 극적으로 일어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에겐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일로 글로벌 삼성의 신뢰와 투명성은 땅에 곤두박질쳤고, 이건희 회장과 그룹 최고실세였던 이학수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개별기업 비리사건으로 특검이 실시되는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삼성은 낡은 관행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내려온 천문학적 규모의 차명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만약 이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차명주식은 여태껏 남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순환출자해소나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은 훨씬 복잡하고 더디게 그리고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진행됐을 것이다. 적어도 소유지배구조의 정상화와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본다면 이 사건은 삼성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이자 촉매제였다.
 

영화 `베테랑' 힘있는 못된 것들이 무너지는 장면에 관객들 열광

 
1천3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의 흥행 이유는 실제 현실을 방불케하는 논픽션 극본에, 강자를 무너뜨리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적인 요소 덕이라고 할 수 있다. 힘있는 못된 것들이 무너지는 장면에 관객들이 짜릿함을 느끼며 열광한 것이다. 시기도 맞아 떨어졌다. `땅콩 회항'서부터 `왕자의 난', 승계를 위한 주요 회사들의 인수합병건까지 국민을 실망시킨 재벌관련 사건들이 최근 연달아 터진 것이 또 다른 흥행 배경이다. 단 몇 %의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소유하는 대한민국 `재벌', 너무나 힘센 그들이 무너지는 영화를 보는 단 두시간 만이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베테랑’에 등장하는 신진그룹은 재벌의 비리와 횡포를 한데 모아 놓은 듯한 거악(巨惡)이다. ‘뽕쟁이’ 재벌 3세 조태오가 하청업체 일을 하는 화물차 운전사를 불러 사무실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 저지른 사건을 연상시킨다. 최철원 씨는 2010년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화물차 운전사 유모 씨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구타한 뒤 맷값으로 2000만 원을 줬다. 신진그룹의 3세 조태오도 화물차 운전사를 때려놓고 하청업체의 미지불 임금 420만 원에다가 100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얹어 준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에서 조현아 부사장이 바로 사과했더라면 끝날 일을 자꾸 덮으려다가 여론의 공분을 일으킨 것도 이 영화가 차용했다. 조태오는 ‘미안합니다’라고 했으면 잘 마무리됐을 폭행사주 사건을 덮으려다가 종국에는 경찰관 살인교사 사건으로 키워 파멸로 치닫는다. 조태오가 이복형제들과 통신회사의 경영권을 놓고 경쟁하는 과정은 롯데 ‘형제의 난’과 닮았다.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던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아버지를 앞세워 의기양양하게 도전장을 내민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초라하게 물러났다. 남은 건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오명 뿐이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1000회를 맞아 기획한 3부작 특집을 방송했다. 이 가운데 두 번째는 대한민국 사회에 정의를 묻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갑(甲)’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상식적, 극악무도, 부조리 등으로 표현되는 ‘갑질’이 다뤄질 것이라 예상됐다. 그래서 영화 ‘베테랑’과의 유사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 후 온라인은 매우 뜨거웠다. 방송에서 언급된 그룹과 사장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오히려 ‘베테랑’ 속 조태오와 그가 사는 세상은 약과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서 들여다본 재벌가 현실은 영화보다 더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들여다본 현실은 영화보다 더했다. 사장, 회장 등 그룹 일가 고위 관계자를 모셨다는 수행 비서, 운전 기사 등이 증언을 이었다. “그렇게 운전하다가는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데 사이드 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매뉴얼이 있었다”는 증언은 충격을 넘어 황당함에 실소를 터트리게 했다. “1년에 교통 법규 위반 과태료만 1200만원”이라며 “사장 차와 가까운 곳에 주차하느라 주정차 위반, 신호 위반 그런 것들에 걸리는 건데 그걸 잘했다고 엄청 칭찬하고 좋아한다”라는 폭로 역시 이해하기 힘든 ‘갑의 세상’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담당 PD가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의 비자금의혹 관련 취재를 위해 법원에서 마주한 조 사장 무리와 몸싸움을 벌인 장면 또한 고스란히 방송에 담겼다. 조 사장에게 접근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배 PD를 수행비서들이 온 몸으로 막아내고 저지하는 모습은 마치 ‘베테랑’에서 조태오와 만나기 위해 원맨쇼를 펼쳤던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을 연상케 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요즘 “노동개혁을 해야 불확실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진다. 아니다 재벌개혁을 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진다.”라는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전반에 걸친 대수술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노동개혁을 강조한 뒤 관련 방안 마련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권 초기 경제민주화 입법을 통해 노동시장 구조보다는 대주주와 대기업을 개혁대상으로 삼았던 점과 비교해 보면 사실은 상반된 성격의 개혁안이다.
 
정부에서, 국회에서, 재벌계에서, 노동계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을 책임져야하는 교육계까지 나서서 교육은 뒤로 한 채 한 몫 거든다. 거기다 불나방처럼 민중의 표를 향해 날아드는 사람들은 오늘은 이것을 주장하고, 내일은 저것을 주장한다. 노동계와 야당은 아직도 “정규직의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형과 같은 노동개혁으로는 청년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비판하고 있다.

 

대기업들 올 수익 급감..'경제민주화형 노동정책' 현실적으로 문제 노출

 
그러나 이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의 올해 적자규모가 총 5조6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의 수익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그렇다면  경제민주화형 노동정책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 고도 성장기를 거친 우리 사회는 여러 부분에 걸쳐 모순도 많고 문제점도 많다. 재벌 2, 3세의 포악질도 밉지만,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는 더더욱 미운 짓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는 전형적인 재벌 3,4세의 모습과 비교됐다. 할아버지가 세운 그룹을 아버지가 일구고, 현대에 이르러 손주가 이어가야 하는 요즘 세상. ‘흙수저’ 수십 만명이 수 조원의 대출을 받을 때 ‘금수저’ 수 만명이 수 조원의 재산을 물려받는 세상에서 후자에 속하는 이들이 그러한 요즘 세상을 사는 손주일 터이다. ‘베테랑’에서 어린 나이에도 사람을 부리고, 때리고, 돈으로 세상을 휘어잡는 법을 배운 조태오에게서 관객은 있는 자들이 구현하고 있는 정의의 그릇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권은 5년 뿐이지만 재벌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재벌은 청와대와 정부, 국회, 사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주장이 맞는 지도 모른다. 서민경제는 아우성인데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00조원에 이른다. 우리 경제구조가 얼마나 불균형적이고 비정상적인지 알 수 있다.혹자는 재벌들에게 공공성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반면 노동계 내 '노동귀족'들의 존재성, 아울러 그들의 신종 기득권을 지적하기도 한다.
 
개혁은 인간을 계도해 달성되지 않는다. 재벌이나 노동계나 모두 그에 합당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제도화, 법률화하는 것이 요체일 것이다. 재벌개혁이나 노동개혁이나 서로가 책임을 상대방에 미루며 "네가 먼저, 내가 먼저"식으로 공방을 벌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은 내 탓"이라며 솔선해서 스스로 나설 일이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언론인(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부회장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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