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 '양김(兩金)시대의 종언'
YS-DJ '양김(兩金)시대의 종언'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11.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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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분열 딛고, 새로운 희망의 정치 열어야

 
지난 1980년대 제5공화국 시절. 한국의 야당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주로 찾은 곳은 서울의 상도동과 동교동이었다. 군사 독재시절 민주화투쟁을 이끈 양대 산맥인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사는 곳이었던 까닭이다. 취재기자들은 새벽에 눈을 뜨면 집에서 나와 상도동이나 동교동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취재를 시작했으며, 하루 종일 YS와 DJ를 쫒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민주화 투쟁의 동지이자 대권을 놓고 경쟁을 벌인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88)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한국 현대사를 써내려간 또 한 거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1997년 11월22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대 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풍운아 YS,  IMF 구제금융 신청했던 날 서거

 
이로부터 18년이 흐른 2015년 11월22일, 김 전 대통령이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발표한 그날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이날 영면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6년여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영호남을 대표하며 반세기 넘게 질곡의 한국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왔다. 이제 한국정치에서 '양김(兩金) 시대'가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됐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서로에게 '숙명'과도 같았던 '후광'(後廣) 김대중과 '거산'(巨山) 김영삼. 두 '거목'(巨木)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가면서 한국 현대사의 큰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에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했다. 또 1979년 12•12 쿠데타를 주도한 이후 군을 장악해온 사조직 '하나회'도 과감히 해체시켰다.
 
YS는 세계화 추세에 맞춰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정책을 펼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특히 김영삼 문민정부는 1996년 9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한 기반을 닦았지만 이듬해 금융•외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결국 1997년 11월 IMF에 긴급구제금융 지원을 정식으로 요청하게 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평가가 제일 낮은 이유다.
 
경남 거제에서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YS는 1951년 당시 장택상 총리의 비서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뒤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2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정계에 공식 입문했다. 군사정부 시절,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함께 손을 잡고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며 민주화의 동지이자 한국 야당사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서게 됐다.
 

YS와 DJ,  정치적 명운 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검승부

 
이들 두 정치인은 지난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을 시작으로, 70년 대선후보 경선, 87년 대선, 92년 대선에서 정치적 명운을 걸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검승부를 펼치며 한국 야당사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하자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자당과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행, 1992년 대선에서 대권을 거머쥐게 된다.
 
당시 YS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며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설명했다. 그의 주요 어록으로는 지난 1979년6월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린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긴다"는 의미로 대도무문(大道無門)을, 1979년 10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의원직 제명을 당하고 얘기했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등이 후대에 길이 남고 있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이끌었던 ‘양김(兩金)시대’의 종언-. 각각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를 이끌며 영·호남을 대표한 두 사람은 출생 배경·개인 성격·정치 스타일 등이 상이했다.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27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가진 YS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좌우명처럼 평생에 걸쳐 선 굵은 정치를 했다면, 외딴섬 소작농의 자식으로 수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신 DJ는 ‘인동초(人冬草)’라는 별명처럼 신중하면서도 끈질긴 정치 행보를 했다.
 
출신 지역과 정치적 배경은 판이했지만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르는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한국 야당사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중대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2009년 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조우’했지만, 87년 후보단일화 실패 때처럼 서로를 외면한 채 다른 곳을 응시했다. DJ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독재’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명박 정부를 정면비판하자 YS는 “이제 그 입을 닫아야 한다”고 일갈하며 맞서기도 했다. 그러나 YS가 그 해 8월 죽음의 문턱에 선 DJ를 전격 찾아가 문병한 뒤 취재진들에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극적 화해가 이뤄졌다.

 

YS ‘사꾸라 논쟁’,  DJ ' 빨갱이 논쟁’이 아킬레스 건

 
우리나라 정치부 기자들은 YS 앞에서는 아무리 ‘빨갱이 논쟁’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DJ 앞에서는 아무리 ‘사꾸라 논쟁’을 해도 해다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YS는 ‘사꾸라 논쟁’에, DJ는 ‘빨갱이 논쟁’에 시달렸다는 점을 방증한다. 앞서가며 뒤를 이어가며 서로 대통령을 한 사이지만 그만큼 이들 문제가 오랜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아킬레스 건이었다는 사실을 상대적으로 말해준다. YS와 DJ는 숙명의 라이벌이었지만 민주화투쟁이라는 목표를 향해서는 동지적 관계였다. 따라서 경쟁을 하면서도 항상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두는 정치적 동반자였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서로에게 ‘숙명’과도 같았던 ‘후광’(後廣) 김대중과 ‘거산’(巨山) 김영삼-. 두 ‘거목’(巨木)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면서 한국 현대사의 큰 한 페이지가 넘어가게 됐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바꾸려는 개혁세력과 그 개혁을 제거하려는 반대파들의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해방 후 한국의 현대사를 볼 때도 개혁과 반개혁 세력의 대립이 줄곧 이어져 왔다. 그리고 장기 독재정권에 이어 군사정권, 그리고 새로운 민간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어어져 왔다.
 
YS와 DJ는 누가 뭐래도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었다. 양김씨의 퇴장을 계기로 정쟁으로 날이 새는 한국 정치가 새롭게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고질적인 이념논쟁과 배신과 분열의 정치를 딛고, 대화와 타협, 그리고 진정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언론인/자유기고가(언론학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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