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심각한 불황에는 앞선 이유가 있다.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쌓이고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이다. 가계 부채의 증가-자산가격의 폭락-심각한 경기 후퇴, 이 세 가지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분가분의 관계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뭘가. 바로 빚(부채)이다. 빚은 압류를 통해서, 그리고 손실을 순자산이 가장 적은 채무 가계에 집중시킨다. 그래서 자산 가격의 하락을 부추긴다. 빚을 진 가계의 소비 지출은 순자산에 가해진 충격에 민감하다. 빚을 진 가계는 순자산이 격감할 때 소비지출을 급격하게 줄인다. 총수요의 감소는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 결과는 대침체와 같은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진다.
한국경제의 뇌관, 가계부채는 지금 정확히 얼마일까.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1207조원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가계신용은 순수 일반가계의 부채일 뿐이다. 사실상 가계부채이면서 뇌관 중 뇌관인 소규모 자영업자 부채는 빠져 있다. 경기 침체로 이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들이 짊어진 부채의 부실화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소득은 게걸음인데 부채는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70%선을 뛰어넘은 것이 확실시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이 비율이 130%대였다. 이후 미국은 부채 감축을 진행해 이 비율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린 반면 한국은 끌어올리기 바빴다. 가계부채에 의존한 정부 내수부양 정책의 결과로, 2007년 말 795조원이던 가계부채(국제기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1400조원대로 거의 두 배가 되고 말았다.
집단대출이 가계부채 총량을 키우는 데 계속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집단대출이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계약자에 대한 개별 소득심사 없이 중도금이나 잔금을 통상의 주담대보다도 낮은 금리로 일괄해 빌려주는 대출이다. 이것이 통상의 가계부채 통계에서 빠지는 소규모자영업자 부채처럼 가계부채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나온다. 주택경기가 가라앉으며 미분양이 늘고 침체가 지속될 경우 부실화 위험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