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제도-새로운 ‘관경(官經) 유착’의 잉태
사외이사 제도-새로운 ‘관경(官經) 유착’의 잉태
  • 이종범 기자
  • 승인 2016.03.1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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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견제와 감시 기능 '실종'..굳이 지금처럼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

 

10대 그룹 신규 사외이사에 ‘관피아’들이 대거 포진했다. 10대그룹의 올해 신규 사외이사 후보에 장·차관 출신이 22.9%, 공정위·국세청·금융감독당국과 같은 감독기관 출신이 20.8%로 10명 중 4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최근에는 전직 경제 사령탑들이 잇따라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옮기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기획재정부를 이끌었던 박재완 전 장관은 삼성전자로, 그 직전 장관이었던 윤증현 전 장관은 두산인프라코어로 간다고 한다. 장관 뿐 아니라 김석동, 임영록, 허경욱 등 전직 기재부 차관들도 대거 대기업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2001년 이후 전직 기재부 장차관 중  대기업 사외이사는 23명

 
최근 KBS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이후 기획재정부 역대 장·차관들은 모두 41명이다. 이 가운데 겸임이 금지된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형환 산업부 장관 등 현직 관료와 최경환, 장병완 의원 등 국회의원을 제외한 전직 경제 사령탑은 총 32명이다. 32명 중에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경우는 모두 23명이다. 그리고 박재완 전 장관과 윤증현 전 장관처럼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경우까지 포함하면 29명이다. 조사 대상자의 84%에 이른다. 23명 중 7명은 2곳 이상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했고, 4곳에서 사외이사를 한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사외이사제도는 본래 기업의 경영을 감시해 독립적이고 투명한 기업 환경을 만들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대주주나 경영진과 무관한 사람이 사외이사에 와야 이런 취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고위 관료 출신 인사가 오면서 이들이 기업의 경영 감시 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정부나 감독기관의 '로비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실제로 이들은 대기업으로 가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ta Analysis, Retrieval and Transfer System, 약칭: DART)에 공개된 기업들의 이사회 회의록을 모두 살펴본 결과 전직 경제사령탑 출신 사외이사 23명은 총 7백여 차례 이사회에 참석했다. 출석률은 90% 이상으로 꽤 높았다. 보수는 연평균 5,2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이사회 참석 한 번에 교통비 형식으로 적게는 3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을 수령했다. 이와 함께 일부 사외이사는 사무실과 차량, 건강검진 등도 받았다. 기업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안건 찬성률 100%'..전직 경제사령탑이 '재벌거수기'로 전락

 
문제는 이들의 안건 찬성률은 100%였다는 점이다. 기업이 내놓은 안건에 반대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전직 장·차관들이 사외이사로 대기업에 가서, 총수의 정책 결정에 반대해 사퇴하거나 뉴스가 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대기업에 간 전직 장·차관들이 총수를 견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전직 경제사령탑이 '재벌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찬성률 100%’란 수치는 이런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직 경제사령탑은 퇴직 후에도 영향력이 적지 않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지휘하면서 만들었던 인맥과 지식, 경험 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고위급 경제 관료를 얼마나 사외이사로 영입했는 지가 회사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전관예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업은 정치권과 경제부처 등을 상대하는 이른바 '대관(對官) 업무'사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영향력 있는 전직 고위 관료를 영입, 이른바 '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석시켜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1998년 처음 도입됐다. 초창기에만 해도 시민단체 출신 사외이사가 꽤 있었지만 이제는 관료 출신의 힘 있는 사외이사 모시기 경향이 뚜렷하다. 주목할 것은 이들 장,차관급 관료출신 사외이사들이 단 한 번도 사외이사 재직 중에 회사 정책에 반발해서 중도 사퇴를 한다거나 어떤 뉴스를 만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견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 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사외이사 제도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스스로 되돌아봐야

 
미국 100대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의 4분의 3은 경쟁사 CEO를 포함한 재계 인사들이고 관료 출신은 10%에 못 미친다. 경제사령탑 출신들이 다른 사람 눈에 안띄게 사실상 전관예우를 받는 수단으로 전락한 사외이사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 봐야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외이사 선임구조는 기업 총수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 대기업 경영 감시라는 원래 취지에 맞게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도 사외이사 선임 구조를 총수 위주에서 주주 위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공익을 대변하거나 경영을 감시할 인물을 늘려야 한다. 
 
정부와 재계가 스스로 현행 사외이사 문제를 재점검해야 한다. 지금의 사외이사 제도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처럼 돼버렸다. 견제와 감시보다는 정부나 관가와의 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가져가겠다는 신종 '관경(官經)유착' 관계나 다름이 없다. 관피아와 기업의 유착을 막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에서 퇴직공무원이 관련업종 취업 금지 등을 시도했지만 기간이 끝난 후 취업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관피아를 막기 위한 강력한 법은 없는 실정이다. 
 
이제 사외이사 선임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경영진이 스스로 자신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확실한 법으로 관피아를 막아야 할 때가 됐다.현재 경영진의 입맛대로 추천되는 사외이사들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구성원의 추천으로 사외이사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 혹은 직원이 선임하는 사외이사도 일정 비율로 도입해 회사에 찬성만 하는 거수기 사외이사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외이사제의 도입 목적인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굳이 이 제도를 지금처럼 유지해야 하는가도 솔직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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