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공천, 정치의 가치확립이 절실하다
파행공천, 정치의 가치확립이 절실하다
  • 장태평
  • 승인 2016.04.12 12:09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평칼럼>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공천과정은 국민들에게 큰 분노와 절망을 안겨 주었다. 공천권 행사를 위해 정당이 급조되는가하면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당적을 바꾸는 철새의 사례도 반복되었다. 정치적 비전이나 윤리는 거론되기도 힘들었다. 당내 파벌의 하수인격인 완장 찬 몇 사람들이 마음껏 칼을 휘두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심사기준과 심사절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문제제기와 그 마무리도 제 식구 챙기기로 타협되었다. 민주절차는 숨 쉴 곳이 없었고, 전근대적인 파벌주의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 이 모든 것이 부도덕하기 짝이 없었고, 어느 선진국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다. 정말 부끄러웠다. 조선말엽 국가를 농단했던 정치세력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더 절망적인 것은 모든 것이 정상인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먼저 이번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가 아직 성숙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한 때 여당에서 정책을 주도했던 사람이 야당의 대표가 되어 당을 운영해도, 그 반대가 되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치개혁을 위해 새로운 당을 만든다면서도 이념을 같이 하고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지원을 더 얻기 위해 누구라도 현역의원이 더 필요했다. 전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이라도 끌어 모으기에 바빴다.

  공천하는 기준이 한없이 모호했다.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들이면 당의 색깔과도 상관이 없었다. 유명 체육인, 바둑기사, 교수, 벤처사업가 등이 비례대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훌륭하고 실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정 직능분야의 진정한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유명한 것과 그 분야의 대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청소년대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들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 다만 선거만을 생각한 정략의 결과가 아닐까? 막강한 국회의원을 거수기 정도로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오히려 비례대표 공천 발표 이후 분야에 따라 불만과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더 참담한 현실은 정치 신인들이 공천신청을 여당이나 야당 등 어디에 해야 할지 눈치싸움을 하는 현실이다. 마치 대학 입시생들이 자기의 적성이나 장래 목표와는 상관없이 수능성적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것을 연상케 했다. 정치는 철학의 실천이고, 정당은 정치철학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체이다. 우리 현실은 이것이 실종되어 있다. 가치와 원칙이 없는 정치의 후진성이다.

  이번 불행한 현상의 근저를 살펴보면, 우리 정치가 지나치게 분열되어 소집단화 되고 있다는 것도 보여 주고 있다. 당보다는 당내에서의 파벌이 중요하고, 파벌 속에서도 힘 있는 특정인과의 친소관계가 더 중요하다. 같은 파벌인데도 친밀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희화되고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무슨 철학이 있고, 정강정책이 있겠는가. 여기에 무슨 공의가 있고, 국가가 있겠는가. 참으로 딱하기만 하다. 이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우리 정치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조선시대에 사색 오색 파당으로 갈라져 날이면 날마다 당파싸움으로 국력을 소모한 것과 다르지 않다. 파벌이 많으니 더욱 진흙탕싸움이 된다.

  이 결과 누구와 친하냐가 중요하고, 국가 공동체에 대한 이념이나 정당 공동체에 대한 의식은 생각할 틈도 없다. 이렇게 공동체의 가치가 약하기 때문에 응집력이 부족하고, 큰 정치를 할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이 심화된다. 참으로 불행한 상황이다. 정치는 국민의 공동체인 국가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파벌보다는 당이, 당보다는 국가가 앞선다는 생각이 확고해야 ‘더하기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 사태를 통해 정치윤리가 무너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 이익을 공개적으로까지 챙긴다면 국가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더구나 공직은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 임면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이처럼 사권화되는 것은 매관매직이나 다름이 없는 아주 위험한 사태이다. 제도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이 국가의 미래에 커다란 장애요인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원칙 없는 정치는 국가를 망친다. 지금은 국민통합과 국가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국가위기의 때이다. 가치가 확립된 정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이것이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를 혁신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