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개별적인 공무원 호출을 금지하자
국회의 개별적인 공무원 호출을 금지하자
  • 장태평
  • 승인 2016.09.29 09:17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평칼럼>총리실을 비롯한 많은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간 이후 행정의 비효율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세종시 정부청사에 체류하는 시간을 보면, 장차관들은 반나절쯤, 1급 공무원들은 하루쯤, 국장급 간부들은 이틀정도라고 한다. 과장급이나 직원들도 보통 이틀정도는 외부 출장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길거리에 쏟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다. 출장비도 엄청나다. 모두 서울에 있는 국회와 청와대 등 관련 기관에 불려 다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국과장 얼굴 보기가 쉽지 않고, 장차관 결재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간부들과 담당자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른 기관과의 협조는 더욱 어렵다. 지난해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좋은 사례였다. 관련기관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청와대 등 지휘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많은 애로를 겪었다. 화상회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나, 여러 실무회의와 긴급상황의 지휘를 화상으로 하기는 어렵다. 이 결과 정부 행정은 무너지고 있고, 공무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 그야말로 재앙수준이다.

  지금도 해운산업과 조선산업 등 구조조정 문제와 경기대책 등 현안문제의 해결에서 정부가 계속 뒷북을 치고 있다고 비난받고 있다. 내부 소통도 허덕이고 관련기관간의 협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세종시 덕분이다. 상사가 사무실에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 의사결정도 늦어지고, 직원들의 근무 자세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많은 업무가 전화나 이메일 그리고 심지어 SNS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추진업무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축구나 농구 등 단체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서로 눈빛과 몸짓만 보더라도 의사가 통하듯이 조직이 하는 행정업무도 마찬가지이다. 팀워크가 깨진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합에 나가면 판판이 깨질 팀이라 하겠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불려 다니는 곳이 국회이다. 그래서 국회가 세종시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다. 이미 수도를 옮기는 것은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었고, 옮길 경우 세종시에 가지 않은 정부부처가 많고 예상되는 문제점도 허다하다. 이제 행정부와 국회가 같이 있으려면, 통일밖에 길이 없다.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방안이 있다. 국회에서 공무원을 부르지 않으면 된다. 사실 세종시 이전 초기에 공무원들이 국회에 가급적 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국회에서 개별적으로 공무원을 불러 업무 협의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원칙적으로 공무원을 불러 입법활동을 지원받지 않는다. 국정감사도 없다. 청문회도 실제 관련된 사람들만 제한적으로 부른다. 미국의 경우 입법활동을 위해 의회 내의 입법조사국과 브루킹스연구소 등 연구기관을 활용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현재 보좌인원이 충분히 있다. 각 위원회에 많은 전문위원들도 있다. 더 전문적인 업무의 보좌를 위해 예산정책처 등 소속기관과 국회 예산지원을 받는 연구단체들도 있다. 국회의원의 활동비가 있고, 연구 용역 지원도 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해야지 왜 멀리 세종시의 공무원들을 불러 업무지원을 받는가. 불필요한 현안업무에까지 개입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공무원을 부르는 것은 마치 행정부의 차량을 빌려 타고 행사비를 지불하게 하는 것과 같다. 입법과 예산 등에서 우월적 지위가 있다하여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행정부의 업무가 곤란을 겪을 정도로 업무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잘못된 관행이다.

  제도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이 행정부 공무원을 수시로 불러들이고, 행정부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국회는 입법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행정부는 법률과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며, 대통령제도에서는 행정수반이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므로 국민의 대표성이 있는 책임행정기관이다. 따라서 메르스 사태, 롯데사태, 지진사태라든가, 산업구조조정 등 현안에 대해 질타하고 간섭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행정부의 몫이다.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직 수행능력과 선거에서 제시한 공약들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져서 당선이 된 것이다. 국민의 수권을 받은 행정부이므로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간섭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도 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개혁의 일환으로 국회에서 행정부 공무원을 불러 업무협의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자. 더 욕심을 낸다면, 입법활동의 이해충돌 문제, 입법관련 청문절차, 청렴사항 등을 규율하는 사항을 포함해서 ‘입법활동 절차법’을 제정했으면 좋겠다. 재앙에 이르고 있는 국회로 인한 행정부의 비효율을 축소하기 위해 국회의 과감한 인식전환을 촉구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