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세종대왕의 지혜와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론’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세종대왕의 지혜와 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론’
  • 권의종
  • 승인 2017.08.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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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우열로 비교될 수 없어..특정 이론-이념의 틀로 하나의 정답만 강요해선 안 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1442년 세종 24년 임금은 신하들에게 뜬금없는 명령을 내린다.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에게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공적을 조사토록 하라는 지시다. 태조가 1380년에 적을 물리친 상황을 본 노인들을 찾아 상세히 기록해오라는 것이다. 무리한 주문이다. 환갑을 넘기지 힘든 당시의 단명을 감안하면 62년이나 된 과거지사의 목격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종이 고려 장수 시절의 태조 업적을 조사시킨 데에는 숨은 뜻이 있었다. 건국 50년이 흘렀건만 조선은 새로운 국가가 아니고 고려를 뒤엎고 세운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백성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홍보할만한 소재가 마땅치 않은 게 고민이었다. 더 큰 걱정거리도 있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놓고 신하들에게만 알리고 백성들에게 발표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최만리와 같은 대신들의 완강한 반발이 두려웠다.

절체절명의 순간 세종의 총명은 빛을 발한다. 막 탄생한 훈민정음으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서사시를 지어 백성들에게 쉽게 알리고, 한편으로는 훈민정음의 실효성을 실험하여 신하들의 반대를 잠재우려는 플랜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조선 개국의 과정을 다루었기에 신하들도 감히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짓은 일을 반대할 수 없었다. 훈민정음 제작과 건국의 정통성을 동시에 얻는 일거양득의 쾌거였다. 자칫 치킨게임으로 번질 수 있던 위기에서 ‘원치 않는 싸움을 피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세종의 슬기였다. 솔로몬의 지혜에 못지 않다.

‘소득주도성장론’ 놓고 논란 여전..전략논의 차원 넘어 '전투행위'로 국가적 혼란 가중

6백년 가까이 된 고사를 뜬금없이 끄집어 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끝없는 논쟁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 데도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시비가 여전하다. 전략 논의의 차원을 넘어 어느 새 전투 행위에 몰입되는 모양새다. 국가적 혼란만 키운다. 이론적 근거가 빈약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국적불명의 제도라는 유언비어마저 나돈다. 늦었지만 바른 이해를 위한 빠른 알림이 긴요하다.

소득주도성장론(income-led growth approach)은 임금을 주된 소득원으로 하는 가계의 소득을 늘려 경제전체의 수요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요인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공급주도의 시각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공급(혹은 생산)능력 확대가 중요하며, 수요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보다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는 그 다음이라는 견해다. 고전파 경제학의 접근방법이다.

또 다른 시각은 경제성장은 수요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생산물이 공급되어도 시장에 수요가 없으면 성장은 지속불가능하며, 따라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등장한 케인즈 주의 경제학의 접근법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후자에 속한다.

이론은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접근방법이 다를 뿐 우열로 비교될 수 없다. 그때그때의 경제현상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선택의 대상일 뿐이다. 특정의 이론과 이념의 틀로 현실을 왜곡하거나 하나의 정답만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만능의 이론이 존재할 리 없고, 모든 이론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한다. 어느 이론을 선택하느냐의 문제 못지않게, 채택된 이론의 정책효과를 극대화시키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모든 이론엔 순기능-역기능 병존..채택된 이론의 정책효과 극대화가 중요

피터지게 싸울 일도 못되는 것이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감히 말하자면,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은 현실적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이론은 지나간 현상을 검증하여 정리한 내용에 불과할 뿐이며, 이에 비해 경제현상은 변화무쌍하게 달라진다. 과거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는 없다. 경제이론 또한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를 거듭한 결과물이다. 새로운 이론 제시되어 실행되고 그 후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이론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흐름이 반복된다.

게다가 경제이론은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의미의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의 개념이다. 경제현상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무수히 많아 이를 일일이 고려하면 경제법칙의 정립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가지 변수를 검토할 동안 그 이외의 나머지 변수들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조건들이 변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의 경제 분석에 한해 유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넘기 어렵다. 현실의 수많은 변수들을 반영할 수 없어서다.

새로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기존의 지배적 이론이나 검증된 정책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 대공황 당시의 뉴딜정책, 금본위제 포기 등은 기존의 주류 이론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정책이었지만, 대공황 탈출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지 않았던가.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달라..文 정부 경제정책 기조 논란은 이제 그만 멈춰야

논의에도 다 때가 있다. 정책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토론은 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필요한 것이지, 결정된 후에 하게 되면 논쟁으로 변질된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 다수가 이에 동의한 터다. 

대통령이 입술이 부르터져가며 동분서주하는 마당에 '문비어천가'는 못 부를지언정 시비와논란으로 일관하는 것은 곤란하다. 서울을 향해 한참 달리고 있는 고속철도 승객에게 고속버스로 바꿔 타고 상경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 문재인 호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전술적 지혜를 모으는 게 국민 된 도리다.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논의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언론의 부추김도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 그동안 할 만큼 했다. 계속하면 어깃장이 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세종의 지혜를 차분히 구할 때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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