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 ‘할마·할빠’가 뿔났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 ‘할마·할빠’가 뿔났다
  • 권의종
  • 승인 2017.09.05 13:44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집마다 '황혼육아' 현실..육아서비스는 이를 담당하는 조부모에 대해 정부지원 이뤄지는 게 타당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우리는 대한민국 ‘할마·할빠’이다. 우리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늘어나면서 붙여준 새 이름이다. 그리 달갑지 않다. 자식 길러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면 끝이라고 여겼는데 늘그막에 손주나 길러야 하는 새로운 미션이 떨어진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자식을  보면서 안 도와줄 수도 없는 처지라 억지로 떠맡긴 했지만 솔직히 힘들고 고달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와 지내는 게 더없는 행복이지만, 몇 년씩 ‘일’로 계속하다 보면 이 보다 더한 극한 직업이 없지 싶다.

당장 육체적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 무릎이나 손목에 부담을 주어 관절염이 심해지고 척추 질환까지 악화 일로다. 수면 장애, 만성 피로, 식욕 저하, 소화 부진 정도는 달고 산다. 양육 방식을 두고 자녀와 이따금씩 벌이는 설전도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다. 심할 때는 우울증까지 걱정될 정도다. 이런 증상을 국립국어원은 ‘손주병’으로 명명했다고 들었다. 친절하기도 하다.

남들은 대수롭게 여길지 모르나 당사자들에겐 고통의 ‘직업병’ 이다. 아이들 돌보느라 병원 갈 시간조차 내기 어렵고 자식들 걱정할까봐 내색도 못한다. 끙끙 앓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늙어서까지 왜 이 고생인가” 한숨과 탄식만 늘어간다.

대접이라도 섭섭잖다면 위로가 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무급 노동이 기본이고 이따금씩 건네 오는 몇 푼의 용돈이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통계를 보니 조부모가 손주를 키워주며 자식들로부터 받는 수고비는 월평균 62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와 있다. 자녀로부터 아무런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노부모만도 전체의 61.4%나 된다는 믿기 힘든 뉴스다.

최저임금이나 주당 근무시간의 준수는 부모자식 간이라 차마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조부모의 양육시간은 평균 주당 42.53시간으로 근로자의 법적 주당 근로시간인 40시간을 넘고 있다. 근로조건 위반이 명백하나 호소할 곳조차 없다.

손자녀 양육을 할마·할빠에게 맡기는 지금의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답답하기 그지 없다. 자녀 양육을 조부모에게 맡기는 가정의 비율이 무려 65.6%나 된다는 보건복지부의 ‘전국보육실태조사’를 허투루 넘겨서는 안된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 황혼육아는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짐이 마땅하다. 

황혼육아는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져야 마땅 

황혼육아가 주는 경제적 기능과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우선 젊은이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정의 첫 번째 과제에 크게 기여한다. 조부모가 손자녀의 양육에 나서는 것은 젊은 부부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집중하기에는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못하거나, 경력 단절로 인해 재취업이 걱정되는 등 순전히 개인적 사정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인적자원이 국민경제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후원함으로써 국가경쟁력 제고에 공헌하고 있는 점 또한 부인하기 힘든 성과다. 황혼육아가 저출산 대책으로 유효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점도 기억되었으면 한다. 조부모가 자녀의 육아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감소를 막아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을 보면 한마디로 실망이다. 육아수당, 남성 육아휴직, 난임시술 지원, 다자녀 가구에 대한 국민임대주택 우대 등 모두가 아이를 낳은 엄마·아빠에게 돌아가는 지원이다. 정작 아이를 기르는 할마·할빠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간 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노인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섭섭하다. 

여성 자녀의 경력단절도 막아주는 일도 황혼육아가 수행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다. 경력단절 여성이 200만 명이 넘는 현실은 자녀 출산 후 마땅히 키울 방법이 없는 데 기인하는 바 크다.

게다가 황혼육아는 일자리를 두고 젊은 층과 충돌하는 일도 아니다. 정년 연장 등으로 고령자의 노동참여 욕구가 커지면서 노인인구와 젊은층이 일자리를 두고 갈등하는 현실에서, 황혼육아는 오히려 젊은이들을 일터로 내보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순기능까지 발휘한다.

개인적 감당이 힘들거나 시장화가 완전하지 못한 시장실패 부분은 정부의 정책 영역

차제에 황혼육아에 대한 정부 지원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를 확실히 따져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부족한 경제지식을 동원해 정리한 내용인지라 이론적 기반이 취약하고 논리 면에서 부족하겠지만, 나이든 사람의 입장을 감안해서 소일삼아 경청을 당부드린다.

일반적으로 가사(家事) 서비스는 무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가 해당 서비스의 수요가 커지게 되면 이를 충족시킬 공급이 생기게 마련이고, 여기에 수익성까지 확보되면 시장이 형성된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은 있으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해당 서비스는 가정 내의 서비스로 그대로 남게 된다. 청소, 세탁, 반찬 만들기 등의 서비스가 전자의 경우라면, 육아 서비스는 후자에 속한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들거나 시장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른바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부분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정책영역에 해당된다. 이런 점에서 육아서비스의 경우 이를 수행하는 경제주체, 즉 조부모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게 타당하다는 게 우리 할마·할빠의 소견이다.

호주에서는 이미 ‘조부모 아이 돌봄 수당’이 지급되고 일본에서도 고령화와 육아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3세대 동거' 지원 방안이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혼육아가 공보육의 정책적 공백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인 만큼 국가 보육시스템이 완비될 때 까지 만이라도 조부모의 양육서비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견해를 듣고 싶다. 부디 긍정적 답변을 기대한다.

대한민국 할마·할빠 일동-.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