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험한 승리’..“합병 적법 판결에도 ‘축배’는 일러”
삼성 ‘위험한 승리’..“합병 적법 판결에도 ‘축배’는 일러”
  • 강민성 기자
  • 승인 2017.10.19 21:22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용 항소심 변수..'합병은 적법·이재용은 유죄' 상이한 민-형사재판 결과 놓고 '형평성' 문제 제기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둘러싼 1심 민사 재판에서 합병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함에 따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형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또 형사재판은 '유죄'로, 민사재판은 삼성의 합병 '적법'으로 언뜻 보면 달라 보이는 듯한 결과를 내놓은 것도 형평성 차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1년 8개월을 끌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무효 소송이 삼성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법원이 합병을 적법하다고 판결하면서 불확실성을 걷어낸 삼성은 한시름을 놓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함종식)는 1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주주들에게 손해를 줬다고 보기 어렵고, 국민연금의 배임 인정이 어렵다"며 합병이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2015년 5월부터 추진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그해 7월 이사회 결의와 주주총회를 거쳐 결정됐다. 당시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은 흡수합병 계약을 맺으면서 합병비율을 1대 0.35으로 정했다.

이 때 옛 삼성물산의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일성신약과 소액주주 등은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물산 측에 소유하고 있던 지분을 매입할 것을 요구했고, 삼성물산 측은 1주당 5만7234원을 제시했으나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작년 2월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판결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변론이 연기됐다.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판결을 분석한 뒤 판단을 내리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이 부회장은 1심에서 뇌물공여 등 일부 유죄가 인정돼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합병에 대한 개별적 청탁을 한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삼성물산에 대한 합병 무효 소송도 다시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날 "합병이 포괄적 승계 작업이라고 해도 경영권 승계가 유일한 목적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며 "법적으로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금지돼 있지 않아 합병에 지배력 강화를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도 그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령에 의해 산정됐고, 기준이 된 주가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행위에 의해 형성됐다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역시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투자위원회의 합병 찬성 의결에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등 배임적 요소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합병 찬반을 결정하는 과정에 보건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는데다 주주총회에서의 찬성표는 내부 결정과는 다른 사안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시각이다.

일성신약은 지난 9월 최종변론을 앞두고 윤병강 회장의 뜻에 따라 준비서면을 제출하지 않았다. 윤 회장은 "이번 갈등을 판결이 아닌 화해나 조정으로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A4 용지 2장 분량의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의 이날 승리가 위험한 ‘반쪽승리’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로 1심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받은 탓이다.

당시 경영권 승계작업의 하나로 지목된 게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었다.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추가 현금출연 없이도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합병 무효 소송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도 이 같은 사정들은 모두 인정했다. 또 삼성 합병으로 얻는 '경영상의 이점'도 중요한 합병 근거로 받아들였다. 당시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세계 유가 하락과 더불어 해외 건설 사업부문에 대한 우려로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레저나 패션, 식음료 등의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추진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봤다.

양사의 합병 공시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상당히 상승하는 등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점도 눈여겨봤다. 이런 근거들을 토대로 재판부는 비록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 해도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만 입힌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한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크게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다.

합병 의결의 효력을 판단할 때 준거가 된 상법·회사법 등 상사법과 합병 비율의 적정성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가 된 자본시장법의 법리도 형사재판과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정당하게 산정됐고 ▲ 그 기준인 주가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로 인해 형성됐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며 ▲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 과정에 불법 행위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합병 목적이 부당하거나 위법하지 않고, 합병 찬성 의결을 무효로 할 만한 흠결이 없으며, 그러한 의결 자체에는 투자손실 초래나 주주가치 훼손 등의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합병은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합병 문제를 다룬 민사재판과 달리 법원이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내린 점이 눈길을 끈다. 형사재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목적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불법행위를 했다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포인트가 다르다"며 "합병이 적법하다고 해서 뇌물 혐의를 무죄로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반대로 합병 과정에서 뇌물을 줬다 해도 합병 자체를 무효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민사 판결이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자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형사 사건 결론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어느 쪽의 유·불리를 단순히 따지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결국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 이뤄지는 재판이라고 하더라도 규율 법률의 이념과 목적, 재판의 쟁점과 법리가 다르므로 서로 간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형사재판은 고의범 처벌, 민사재판 손해배상 소송은 피해 회복, 회사법은 회사의 적정한 운영과 기업의 유지·강화 등을 지배적 이념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각각 법리 적용·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 1년 8개월을 끌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무효 소송이 삼성의 승리로 일단락됐으나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드러내놓고 웃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법원이 합병을 적법하다고 판결했어도 삼성과 이 부회장을 둘러싼 모든 불확실성을 걷어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