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업체들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중소업체들에 ‘갑의 횡포’를 부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정권 출범초기에 이들이 ‘갑질’이나 골목상권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고 보면 이들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는 지는 지켜볼 일이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한 중소업체 대표는 30일 “유통재벌들은 새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갑질’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납품 중소기업들과 상생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이런 약속은 그 때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유통기업들은 상생을 겉으로만 외치고 뒷전에서는 예전으로 돌아가 ‘갑의 횡포’를 서슴지 않았다”면서 이번 이들의 상생약속을 반신반의했다.
이들은 이 명박 정권에서는 물론, 취임초기에 ‘중소기업대통령’을 표방한 박근혜 정권 출범초기에는 골목상권침해를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중소기업육성 및 골목상권보호정책이 흐지부지되면서 ‘갑질’관행은 다시 노골화됐고 골목상권 초토화는 더욱 심해져 곳곳에서 인근상인을 비롯한 영세상공인들과 끊임없은 마찰과 갈등을 빚었다.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쳐부로 승격시킬 정도로 역대정권에 비해 가장 강력한 중소기업육성책을 펴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서 대형유통기업들은 고질적인 ‘갑질’관행을 근본적으로 시정할까? 이들은 일단은 문재인 정권초기의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 다시는 갑질을 하지 않겠다고 일단은 맹서했다.
하지만 이들이 역대정권 출범초기에 약속만 하고 시일이 지나면서 다시 불공정거래관행시정 액속을 다시 흐지부지시키는 일이 되풀이 된데 비추어 이번 이들의 상생약속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질지는 의문이라고 소상공인 단체는 지적한다.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 등 6개 유통업계 대표들은 29일 서울 남대문 공정거래조정원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공정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한 10개 항의 거래 관행 개선과 납품업체 및 골목상권 상생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갑질’없는 공정거래로 납품업체들의 거래조건을 최대한 개선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대형 유통업체(프랜차이즈 포함)에 물건을 공급하는 납품업체들은 최저임금,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공급 원가가 오르면 납품 가격도 따라 올릴 수 있는 근거를 계약서에 명시하기로 했다. 또 납품업체의 기존 제품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전환해 납품단가를 낮추어 경영난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일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갑’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체들에 대한 불리한 계약을 하는 일이 없도록 각종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내년 1분기부터 납품업체에 입점업체 선정 기준, 계약 절차, 수수료제도 제도, 상품 배치 기준 등 각종 거래정보를 미리 제공하기로 했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부터 중간상의 개입으로 납품업체의 마진이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밴더(중간유통업자)를 통한 납품을 금지하고 거래 수량이 적힌 문서를 거래 전에 미리 교부해 재고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또한 납품업체에 과다한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를 근절하고, 실제 판매된 물량만 유통업체가 매입한 것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판매분 매입’ 관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김밥 등 상품 특성상 필요한 경우는 해소 방안을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상생협력을 위해 중소협력사와 청년창업가를 상대로 상품개발 및 해외시장 개척 컨설팅을 해주고, 중소기업 전용매장 확대를 통해 판로 확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누리집과 온라인쇼핑몰, 상품판매장을 활용해 전통시장, 맛집, 숙박업소, 관광지, 문화공연 안내 코너를 운영하고, 청년창업 및 가업승계 아카데미 운영, 전통시장 고객유입 확대 활동을 통해 지역상권 활성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유통업계 대표들은 공정위가 지난 8월 발표한 유통 분야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상조 위원장은 “유통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하려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경쟁력이 함께 강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유통에서 발생하는 성과가 둘 간에 합리적으로 분배되는 게 선결과제”라며 “성과가 편향적으로 분배되면 단기적으로 유통업체에 이득이 되겠지만, 납품업체의 경쟁력이 상실돼 유통업체의 동반 몰락을 부르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 경제에 가장 필요한 이념은 상생이고, 특히 유통산업에서 상생의 가치가 구현되어야 한다”며 “유통업계 불공정 관행 해소에 필요한 표준계약서 보급, 법령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갑수 체인스토어협회 회장, 박동운 백화점협회 회장, 이근협 티브이홈쇼핑협회 부회장, 김형준 온라인쇼핑협회 부회장, 조윤성 편의점산업협회 회장, 김도열 면세점협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