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금융위원장을 했나?"
"내가 이러려고 금융위원장을 했나?"
  • 강민우 기자
  • 승인 2017.12.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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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개혁 약속한 최종구, 제손으로 만든 혁신위권고안에 '발등' 찍혀
                     최종구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 공식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최종구 위원장은 지난 9월 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금융부분 쇄신방안을 발표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이 때 발표한 것이 금융행정혁신위(혁신위)의 발족이다. 학계-언론-소비자-업계 등 13명의 민간전문가들이 나서서 금융당국의 조직역량 강화와 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권고안을 내도록 했다.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금융당국이 먼저 철저히 혁신해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금융당국’으로 변화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 발표 후 3개월이 훨씬 지난 이달 20일 금융당국의 정책 자문기구인 혁신위가 획기적인 혁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음 날 국회정무위원회에서는 최 위원장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혁신위 최종권고안에서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차등과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이 전날 유보 입장을 밝힌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밖에도 키코(KIKO) 사태 등 해결책을 놓고 최 위원장이 자문기구의 행정 혁신 방안에 일부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나서면서 전선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최 위원장의 기자간담회가 끝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특히 "지금은 정의롭고 공정한 문재인 정부임을 명심하길 바란다"며 최 위원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라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박 의원은 이 점을 집중 비판했다.

그는 "혁신위 권고안을 따르겠다면서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며 "이것이야말로 삼성 앞에서 작아지는 금융위이자 삼성 감싸기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키코사태에 대한 전면 재수사 권고를 거부한 최 위윈장에게 "키코 사태를 전면 수사하라는 혁신위의 권고안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금융위원장이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키코 사태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시민단체들도 최 위원장을 즉각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21일 "종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며 "금융위가 보여 준 태도는 왜 우리나라 금융발전을 위해 금융위에 대한 전면적 수술이 불가피한 것인지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물론 금융위가 권고안을 모두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 위원장이 스스로 만든 자문기구의 권고를 하루 만에 뒤집으면서 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정치 논리로 과도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혁신위 권고안을 성실히 수용하겠다고 하면서도 이건희 차명계좌나 키코사태 등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최 위원장이 반대 의견을 내놨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수용할 생각이 별로 없으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물결에 휩쓸려 혁신위 발족을 약속했다가 정작 중요한 개혁과제를 묵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결국 혁신위개혁안이 '기름빼고 따귀 뺀' 맹탕에 그친다면 최 위원장의 대국민약속이 ‘언론플레이’에 그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민간 전문가들이 내놓은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존 금융위의 입장을 바꿀 생각이 별로 없는 것으로 비쳐지는 탓이다. 최위원장은 21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후 "사실 혁신위 권고안이 이 정도까지 나올 줄 몰랐다"며 "권고안 나온 것을 읽어보고 좀 고민이 많이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혁신위가 마련한 금융개혁 방안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실행하는 것은 주저한다는 뜻이다.

크게 보면 지금 금융당국에 관한 국민의 불신은 금융소비자보다 금융회사를 편들고, ‘관치금융’을 행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최 위원장이 "혁신위 권고안이 이 정도까지 나올 줄 몰랐다"고 말한 것을 보면서 스스로 “내가 이러려고 금융위원장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지도 모른다. 그가 혁신위 안대로 개혁을 하면 금융위와 금감원 조직의 손발을 모두 자르고 자신도 황야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음직 하다. 이럴 경우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모피아’와 ‘금피아’ 조직에서 혹시라도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영어의 몸이 돼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한 말이 상기된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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