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는 지난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월간 말 기자 출신의 블로거이자 사회운동가인 박권일이 함께 쓴 책 이름이다. 저임금노동으로 착취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라 직업시장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20대 ~ 30대를 뜻한다. 이 제목은 그대로 20대의 경제적 상황을 의미하는 사회용어로도 쓰이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비정규직으로 살거나 살 예정인 청년세대를 일컫는 표현이다. 당시 20대는 약 88만원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붙여진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청년들의 경제적 상황을 표현한 용어이자 2005년 발행된 소설인 '천 유로 세대'(밀레우리스티(Milleuristi))를 연상케 한다. 책 발간 이후 책의 판매량 자체도 높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한동안 20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유행했다. 정치권, 언론, 학계에서도 힘겨운 젊은 세대를 나타내는 단어로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의 한 달 소득이 78만원에 불과하다. 청년빈곤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며 ‘88만원세대’는 옛말이 되고 ‘77만원세대’ 출현이 머지 않았다는 전망이 현실화하는 느낌이다. 이들 가구에는 10대 가구주도 있으나 아주 소수이며 대부분 20대 가구주다.
저소득 청년 가구가 증가한 통계상 이유는 개인주의 확산에 따른 1인 가구의 증가를 들 수 있다. 혼자 버는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는 1인 가구가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고, 이들 다수는 저임금 탓에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패션과 디자인 등 예체능 계열 직군에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열정페이’ 악습이 남아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정작 정부의 내년 취업자 수 증가 폭 전망치는 32만 명으로 올해와 동일하다. 예산과 정책을 총동원해도 고용 상황은 잘해야 제자리걸음이거나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청년 일자리다. 15~29세의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해 연간 기준 9.8%에 달했지만, 정부는 내년에 구직 경쟁이 더 심화하면서 실업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25~29세의 주요 구직 연령대 인구가 올해보다 11만 명이나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과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있으나 ‘77만원세대’ 현실화를 막을 수 있을지 아직 불확실하다. 문제는 ‘88만원 세대’도 모자라서 이제는 ‘77만원 세대’가 됐다는 대목이다. 역대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득이 하향평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 비정규직과 저임금 문제는 구직난이 심화되며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탓이다. 정부가 앞으로도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등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청년빈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책 우선순위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밀렸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강조됐던 노동시장 유연화로 청년 세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88만원 세대’ 등장 이후 암울한 청년세대를 나타내는 여러 용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삼포세대다. 삼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를 담는다.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다른 유행어들도 나타났다. 삼포세대 말고도 민달팽이세대(자가 주택 없이 고시원, 전월세를 전전하는 젊은이들), 낙타세대('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말에서 유래/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표현)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2017년 한국 경제를 돌아보면 악화하는 소득 양극화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니계수와 같은 소득분배지표가 두루 나빠졌다. 내년 한국은 1인당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다. 그러나 삶의 질은 2012년 24위에서 2017년 29위로 떨어졌다. 교육과 기대수명 등은 양호한 편인 반면 주거와 소득·고용·건강·삶만족도 등에서 주요국에 비해 미흡했다. 지속성장을 위해 국민 전체 삶의 질을 높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