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 '솔로몬의 지혜'
가상화폐와 '솔로몬의 지혜'
  • 홍윤정 기자
  • 승인 2018.01.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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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반대 청원 17만건..청와대, 고통스러워도 국민 반발-충격 줄여야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하소연을 하고 싶어하게 된다. 신문고(申聞鼓)는 1401년(조선 태종 1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다. 영국에서도 국왕에 대한 청원권은 마그나 카르타(1215)에서부터 간접적으로 인정되었고, 1689년 권리장전에서 재확인되었다.

처음에 국왕에 대한 청원은 사적이고 지방차원의 고충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서는 국왕에 대한 서민원(즉 하원)의 청원과 그에 대한 국왕의 응답을 통해 많은 법률이 제정됐다. 의회 자체에 대한 청원권은 권리장전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헌법상의 관행으로 인정되고 있다.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14일 17만명을 돌파했다. 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을 넘어서면 청와대 정책실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규제와 관련한 공식 언급이 나올 전망이다. 앞서 청와대는 청소년 보호법 폐지와 낙태죄 폐지, 주취감형 폐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등 20만명을 넘은 4건에 답변했다.

이번 사태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추진 방침을 표명한 데 따른 반발이 커지면서 시작됐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청와대의 공식 답변 기준인 ‘한달 내 20만명 이상 추천’은 충족할 것 같다. 청와대는 기준을 충족한 청원에 대해 한 달 이내로 책임있는 관계자가 답변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날 올라온 ‘국민을 상대로 내기를 제안하는 투기꾼 금융감독원장 최흥식의 해임을 촉구합니다’는 청원에 대해서도 급속도로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다. 앞서 최 원장은 금감원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간담회에서 “비트코인 버블은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는 발언을 했는데 부적절했다는 비판이다.

한 청원자는 “국민들은 가상화폐로 인해서 여태껏 대한민국에서 가져보지 못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일부 가상화폐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큰돈을 투자해서 잃은 사람들 때문에 정상적은 투자자들까지 불법 투기판에 참여한 사람들도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당신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 국민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며 “당신들은 국민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은 정부가 우리의 꿈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의 잇단 대책에도 강남권을 비롯한 서울 일부 지역과 그 외 지역간 집값 양극화가 극심해지자 급기야 부동산정책 담당자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질시켜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시작됐다. 아직 소수이지만 ‘집값 초양극화’에 성난 민심이 폭발한 셈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서울 강남, 다주택자만 타겟으로 정책을 펴다보니 이보다 경쟁력이 약한 다른 지역과 실수요 계층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더구나 정책효과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고 쏟아부으니 결국 서민만 피해를 보고 있고 이로인해 이같은 사태까지 번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현재 가상화폐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주말 이후 정부가 암호화폐 대응 방안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검토”발언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청와대는 향후 입장 표명의 수위를 놓고 곤혹스러운 처지다. 가상화폐가 투기의혹과 경제활동이라는 동전의 양면같은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쉽사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암호화폐 열풍을 주도하는 20~30대가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란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을 서두르다 급격히 시장이 붕괴하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스란히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럴수록 정부가 상식과 정도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차피 위정자는 민심을 수용하지 않으면 매를 맞는 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부는 시민들에게 고충사항을 시정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청원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많은 국가에서 청원은 실정법상의 권리이다. 국민의 청원권은 현대 각국 헌법에서 대부분 보장한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신문고도 결국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제도였다.

청와대가 비록 힘들고 고되지만 국민을 설득하고 합의를 구하면서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넘기면 이것이 ‘학습효과’로 작용을 해서 다음 번 위기에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투자자들의 반발과 시장의 충격을 줄일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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